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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Mar 04. 2021

봄을 걷는 사람



 길가에 작은 꽃봉오리가 피어있다. 바람에도 해가 들어 따뜻한 기운이 돌고 아무 일 없어도 입가에 살포시 미소를 짓게 된다. 봄이 오는 것이다. 도서관에 가기 위해 올라탄 마을버스에도 전과 다르게 사람들이 제법 웅성댄다. 사람들도 나처럼 봄을 입은 것인가 하고 오랜만에 사람 구경을 해본다. 재잘재잘 조잘조잘. 말소리들이 반갑다. 계절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공간을 나눈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는데 잃어버리니 잊어졌다. 익숙함은 가지는 것에도 잃어버리는 것에도 재빠르다. 공평하지만 어쩐지 그렇지 않은 것만 같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머리도 좌우로 흔들리며 상념은 저 멀리까지 퍼진다. 고관절이 아파 7년이나 다리를 절면서도 연극 무대에 오르고, 산으로 바다로 촐랑대며 쫓아다니고, 끝나지 않을 사랑을 고대하며 상대를 향해 한없이 걸었다. 하지만 절뚝거리는 내 다리처럼 언제나 한쪽과 반쪽은 고통과 외로움, 공허함으로 가득 차 여러 날들을 숨죽여 울었다. 눈을 감고 다녔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것처럼 늘 홀로 서 있었다. 박자가 다른 두 다리를 내려다보며 나조차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삶은 계속된다. 나는 살아있어야 했고, 다시 걷고 뛰고 두 눈을 들어 무엇이든 마주한다. 지금 이렇게 머리를 흔들며 버스를 타고 도서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스스로를 느끼며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물론 인공관절 수술을 하고 다시 정박의 걸음을 걷게 된 후에야 가능한 것이기에 언제 다시 다 소모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피부처럼 벗겨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나를 온전히 느낀다. 나의 시간도 지금 딱, 봄이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길. 버스정류장에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올라타신다. 의자에 앉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기사님이 고마워 잠시 눈길을 둔다. 고개를 돌려 창가에 비친 내 얼굴에도 잠시 눈길을 둔다. 그러다 집에 있는 엄마에게도 눈길을 오랜 둬본다. 하루라도 밖을 나가지 않으면 심심해 미치는 엄마는 주말이면 매일 산에 오르고 천을 따라 걷고 친구들과의 막춤(?)을 즐겼는데, 허리가 아프고 무릎이 쑤셔서 좀체 다니질 못한다. 게다가 마음까지 나이가 들어 살아있을 때보다 살아있고 싶을 때가 많은 날들을 보내고 계신다.      


 그러니 엄마의 시간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엄마가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저릿하다. 엄마도 나처럼 도서관에도 가고 마을버스도 타고 계단도 쉼 없이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오늘같이 좋은 봄을 걸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저 나이 들어가는 어쩔 수 없음으로 생의 활기가 줄어들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음에도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는 고작, 아프니까 어디 다니지 말고 병원에 꼭 가라는 말뿐이다.      


 채소가게에 냉이가 나와 있다. 달래도 옆에서 자기 좀 봐 달라고 생긋거린다. 그래도 나는 냉이가 좋으니까 냉이 하나 사고, 엄마가 좋아하는 토마토도 좀 사서 봄 같은 딸이 집에 간다고 큰소리 해야겠다. 그럼 엄마는 조금이라도 웃겠지, 네가 왜 봄이냐고.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sungbh1/222175394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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