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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Apr 17. 2021

막장 드라마 보는 여자

안 본다.     


 왜 매번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저녁 7시 15분. 엄마가 저녁 드라마 투어(?)를 시작할 때면 으레 뱉는 말이다. 안 본다 안 봐, 드라마가 하나같이 막장이다 막장- 그렇구나, 우리 엄마도 막장은 싫어하는구나, 오랜만에 담소라도 나눠볼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엄마는 단단하게 리모컨을 움켜쥔 채 시선은 오로지 TV로 고정시킨다. 내가 밥을 먹든 말든 이야기를 하든 말든 삐쳐서 집에 간대도 좀체 움직이질 않으신다. 그러다 내가 도대체 저 여자(혹은 남자)는 왜 저러는 거야-라고 한두 마디 뱉을라치면 다 듣지도 않고, 드라마 줄거리를 시작으로 알고 보니 출생의 비밀, 알고 보니 재벌 3세, 알고 보니 화해와 용서와 같은 앞으로 다가올 그들의 미래 예측과 함께 그럼에도 지독해도 너~~~~~~무 지독하다는 본인의 의견 피력까지. 눈은 여전히 TV에 고정한 채 열변을 토하셨다.     


사는 낙이다.     


 굳이 안 본다는 말은 왜 하냐며 푸념을 가장한 무시를 보이는 내게 엄마는 저렇게 슬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 뱉으신다. 드라마 보는 게 하루의 유일한 낙이라는 엄마는 막장이라 욕을 하면서도 볼 수밖에 없는 거였다. 자신을 웃게 하고, 울게 하고, 화나게 하고 신나게 하고 말이라도 편히 하게 만들어 주는 게 딸도 아니고 세상도 아니고 드라마였던 거다. 대꾸할 말을 잃은 나도 조용히 TV에 시선을 둔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막장 드라마는 막장이 아니다. 더한 일들이 세상엔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고 너도나도 한 번씩은 아니, 자주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드라마는 보면서 실컷 욕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겐 눈치껏 지껄여야 하니 차라리 막장 드라마가 숨이라면 숨이요, 낙이라면 낙이다. 인정한다.     


 어느 날은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해 생계에 빨간불이 켜졌고, 어느 날은 호감을 내세우며 추행 아닌 추행을 하는 이의 얼굴을 대놓고 갈길 수가 없어서 내 입술만 꽉 깨물었다. 또 어떤 날은 그저 그런 내가 갑자기 너무 미워 눈을 질끈 감고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용을 썼다.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가끔 사람들을 만나는 평범한 일상의 사이사이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막장들을 겪으며 나는 살고 있는 중이다.       


7시 15분이다.     


 나의 저녁 식사시간. 급하게 좋아하는 것들로 상을 차리고 얼른 TV를 켠다. 늦지도 않고 15분이면 시작하는 드라마의 첫 장면이 너무 반갑다. 세 편을 달아 보고 나면 밤은 깊어져 있고 내 삶의 막장들도 이미 지나간 일들이 되었으므로 나는 조금은 편히 잠들 수 있다. 이불을 반쯤 덮은 채 깜깜한 천장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 엄마 인생, 우리 언니 인생, 그리고 내 인생도 책으로 만들고, 드라마로 찍으면 시청률 대박이겠다… 엄마한테는 그 드라마 본다고 말하지 말아야지… 어제 못 본 건 내일 재방송으로 봐야지.

 




이미지 출처>http://naver.me/xivxxe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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