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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Apr 26. 2021

나를 돌아봐

뭉툭하고 주름진 내 손이 오늘따라 더 못나 보인 건 기분 탓인가.     


 며칠째 손톱 사이사이가 파랗게 물들어 있다. 나도 모르게 머리 염색을 한 걸까. 기억력엔 견과류가 좋다던데 호두와 아몬드를 좀 더 챙겨 먹어야 할까. 그렇게 생각만 하고 흘려보냈다. 어쨌든 세상은 봄이라 꽃은 피고 하늘은 더없이 푸르러 올려다보고 내려다보고 할 것들이 많아 바빴고 넘어서면 오고 넘어서면 또 오는 삶의 고비들로 고군분투하느라 쓰렸다. 바쁘고 쓰린 나날들이 몸도 마음도 지치게 할 때마다 아침은 무거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떠도 쉽사리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오늘도 여전히 몸은 침대보다 더 아래로 꺼져 있었다. 달리기도 글쓰기도 오늘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고 나를 설득했다. 역시 게으름은 이렇게나 선택적이다.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다 그래도 커피는 마시고 싶어 겨우 일어나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쏟아지는 물살을 맞으니 뭐라도 씻겨져 내려가는 기분이다. 샴푸를 하고 트리트먼트를 했다. 자주 가는 미용실 사장님이 개털 중에 개털이라며 쯧쯧 혀를 찬 머릿결을 조금이라도 살려 보고자 바로 씻어내지 않고 윤기까진 바라지 않으니 푸드덕 날리진 않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자니 손가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아주 푸르뎅뎅하게. 요즘 내가 어떤 일들을 했고 무엇을 만지고 다녔기에 손이 이토록 푸르뎅뎅하고 파랄랄라(?) 한 것인지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를 게 생각나지 않아 샤워기 호스만 들이댔다.     


 깨끗하게 씻고 다녀야겠다고 뜬금없이 청결을 다짐하며 씻어내는데 뿌연 욕실 거울에 팔꿈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엔 아주 시커멓게. 반대쪽 팔꿈치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놀라 에에엑- 거리며 물로 거울을 씻어내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정말이지 때 국물이 따로 없었다. 급한 대로 때수건에 비누를 칠해 팍팍 밀어냈다. 거대한 몽고반점처럼 푸른 얼룩들이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친한 동생이 언니 입으라며 주었던 레이온 소재의 옷을 잠옷과 함께 껴입고 며칠을 잤더랬다. 무언가 묻어 나올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는데 마치 문신처럼 몸에 새겨졌다. 이렇게나 크고 진하게 묻어 난 몸을 나는 도대체 이제야 알아본 걸까.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손에 힘을 잔뜩 주고 피부가 벌게지도록, 사실 너무 파래서 내 노란 피부색이라도 찾을 수 있도록 밀고 또 밀었다. 혼자서 등까지 밀려고 용을 쓰다 보니 얼굴만 벌겋게 달아올랐다.     


 입버릇처럼 가장 소중하고 애틋하다며 스스로를 가장 사랑한다 믿었건만, 하늘도 보고 꽃도 보고 오가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바라보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돌보지 못한 거 같아 자꾸만 한숨만 푹푹 쉰다. 이럴 땐 옆에 누구라도 있었다면 하고 괜히 외로움에 기대어 보지만 그건 문제도 해결책도 아니다. 스쳐 지나가듯 말했던 선택적 게으름 때문이다.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단 한 명, 나라는 것을 이상하게도 이렇게 우스운 상황에서 뼈저리게 느낀다. 스스로를 보살피는 일에 게을러지지 말자 자꾸 그러면 아프다. 나만.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ksung011/22070425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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