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na May 02. 2021

퇴근하는 나는 무엇을 할까


사람들이 밑으로 밑으로 걷는다.

     

 퇴근길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모든 힘을 발끝으로 내린 채 터덜터덜 발을 옮기는 모양새다. 그래도 다들 향하는 곳이 있어서인지 무겁지도 않고 힘겹지도 않다. 하늘이 파랗지 않아도 잠시 올려다볼 여유가 있어 저물어가는 세상 풍경을 우두커니 바라보기도 하고 같이 가는 이가 있다면 서로를 위해 박자를 맞추며 수고했다는 눈짓과 몸짓을 건네기도 한다. 모두가 그렇게 하루를 살아냈다는 안도감을 안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우리는 매일 사라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풍경 속에 나도 그들도 서로를 바라보며 그렇게 걷고 있다. 이상하게 걸을 때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일할 때는 돈 벌 궁리를 하느라 바쁘고 혼자 가만히 있을 땐 가만히 있는 게 싫어서 이것이든 저것이든 공백을 메우느라 바쁜데 걸을 땐 이상하게 모든 게 텅 비어버리고 나만을 온전히 바라보게 된다. 날마다 적어 내는 할 일 목록을 오늘은 그래도 몇 개 더 해치웠나, 어제보다 나은 내일은 되었나, 새로운 경험들은 많이 찾아내고 했을까. 이미 알고 있는 답이지만 끄집어내 생각을 해본다. 한번 되새기며 채찍질도 해보고 그래도 아무 탈 없이 보낸 게 어디냐 위로도 해본다.     


 새삼스레 걷는 것 자체에도 집중해본다. 요즘 들어 오른쪽 고관절의 통증이 잦다. 십여 년의 세월쯤은 거뜬히 버텨준다 했는데 고작 4년밖에 안 된 이 시점에 통증이 연속적으로 찾아온다. 정신이 번쩍 든다. 어제의 걸음과 오늘의 걸음, 내일의 걸음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서 한 걸음 한 걸음을 세어본다. 달태기(달리기 권태기)다 뭐다 게으름을 피우고, 가만히 있는 게 제일이라며 아무것도 하기 싫어한 나날들을 반성한다. 다시 걷지 못하는 날들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일부턴 제대로 운동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걸을 수 있는 모든 곳을 가보겠노라 다짐하며 발걸음을 꾹꾹 눌러 걷는다.     


 모퉁이를 돌아 멀리 회색빛을 띤 집을 향해 걷는다. 언제부터 저기가 나의 집이었나 생각해본다. 집이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마지막 껍데기까지 벗어놓을 수 있는 곳이라던데, 살면서 내게 그런 곳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늘 새로운 곳을 꿈꿨다. 어느 날은 작은 시골 마을 흙집을 꿈꾸기도 하고 어느 날은 돈으로 무장한 고층의 도시형 아파트를 꿈꿨다. 사는 것이 문제였으나 사는 곳을 숙제로 삼으며 여기저기로 옮겨 다녔고 결국 8평 원룸까지 왔다. 방이 많을 때는 빈공간들이 주는 고요가 싫어 작고 아담한 곳을 꿈꿨는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훤히 집안 구경 다 할 수 있는 지금의 나의 집이 갑갑하고 텁텁해서 종종 밖으로 향한다. 나는 또 새로운 곳을 꿈꾼다.     


 밥을 먹고 공부라면 공부라 할 수 있는 것들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정을 훌쩍 넘긴다. 잠을 자야 하니 불을 끄고 침대에 모로 눕는다. 천장을 향하면 시커먼 어둠이 퍽- 하고 뭉텅이로 떨어질 것만 같아 꼭 모로만 눕는다. 내일이 좀 더 있다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이 밤이 길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해본다. 똑같은 날들이 아니길 기도도 해본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기에 지겹다고, 이런 내가 지겹다고 굳이 소리 내어 말한다. 그렇게 조금 상념들을 흘려보내고 창틀에 새어 나오는 빛이 침대 모서리를 차갑게 물들이는 것을 눈으로 새기며 그냥 그렇게 잠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돌아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