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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May 06. 2021

고구마, 사랑

속이 쓰리다.   

  

 뭐든 씹고 넘길 수 있는 건 탈 없이 다 먹어왔건만 이젠 속이 쓰려 맛있는 걸 눈앞에 두고도 씹을 수도, 넘길 수도 없을 때가 종종 생기기 시작했다. 요 며칠 내내 이런 상태다. 역류성 식도염인가 싶어 매일 마시던 탄산수를 멀리했지만, 소용이 없고 한나절 일하고 난 후 오후만 되면 속이 쓰리니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테고 범인을 찾아야 했다. 매출 장부의 영향인가(?) 하는 우습지만 근거 있는 추리도 해보았으나 당연히 아니고 매일 마시던 커피는 하루종일 입에 달고 있으니 쓰리려면 하루종일 쓰려야 한다.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달라진 게 없는 내 일상에, 속 쓰림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상하게 가게에서 밥을 먹으려 하면 손님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부러 밥을 먹은 적도 있으나, 한두 번이고 몇 번의 소화불량을 경험한 후론 도시락을 싸다녔다. 도시락이래 봤자 삶은 계란과 샐러드, 아몬드 같은 편의점 식품이거나 집에서 직접 구운 고구마를 싸와서 먹는 식이다. 코코넛 오일로 튀기듯이 구운 고구마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따뜻한 커피와 함께 먹으면 그야말로 당 충전이 제대로 되는 맛이다. 이틀에 한번꼴로 먹으니 주식이라면 주식인데 이런 나의 밥이 속을 쓰리게 할 줄은 몰랐다. 범인은 고구마였다. 어릴 적부터 겨울내내 먹어왔었고 간식으로도 종종 즐겨왔는데 이제와서 이런 이유가 뭐냐고 괜히 고구마를 흘겨보았으나 무슨 소용일까, 문제는 나의 몸 상태지 고구마가 아닌 것을.     


 공복에 먹는 고구마는 아교질과 타닌 성분으로 인해 위산을 과다하게 분비시키고 이로 인해 당연히 속이 쓰리게 된다고 네이버님께서 말해주었다. 변비나 소화흡수에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빠질 수 없는 게 고구마란 녀석으로 맛도 달달 하고 다양한 요리와 재료로 쓰여 남들은 건강을 위해서라도 자주 먹는다는데 나는 이제 한동안 고구마와는 이별해야 한다. 아니면 속이 쓰리지 않을 다른 방도라도 찾아야 한다.     


좋아한다면 그걸로 된 건가, 아닌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코코넛에 튀기듯 구운 고구마를 일하는 중간중간 따뜻한 커피와 함께 충만함을 느끼며 먹고 있다. 그리고 한두 시간 후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아- 이래선 안 된다고, 좋아한다고 무조건 달려들어선 안 된다고 반성한다. 하지만 몸에 좋으라고(적어도 즉석식품은 입에 잘 대지 않고 똥 손이라도 만들어 먹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맛이 있으니까 먹는 건데 몸이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살피고 방식을 고민해서 먹어야 한다니 살짝 피곤하다. 좋아한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안 그래도 사람들 사이사이에서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혹은 전달받지 못해 속이 쓰린데 고구마까지 속을 쓰리게 할 줄이야 하며 괜히 삶의 피로감도 얹어본다. 그래도 아프니까, 아프고 싶지 않다.     


 쪄 먹으려면 찜기나 큰 냄비를 사야 할 테고 살림살이 불어나는 것도 마땅치 않아 감자로 마음을 돌려볼까 했지만 역시나 나는 고구마가 좋다. 역시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다. 마음만으로 안된다면 마음을 조금 줄여도 보고, 감추어도 보고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주는 것으로 마음을 다 채워버려야겠다. 고구마 너란 녀석도 이틀보다는 사흘에 한 번씩만 먹고 커피보다는 미지근한 물과 함께 먹는다든지 굳이 돈 들여 소화효소를 챙겨 먹든지, 그것도 안 되면 백 번이라도 씹어 삼켜야겠다. 그렇게라도 고구마 너를 사랑해야겠다. 나는.    

 

진정 고구마,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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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dodohee17/22221286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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