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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May 23. 2021

큰 운동화를 줄게

그러니까          


 왼쪽 새끼발가락에만 굳은살이 생겨 저릿하게 통증이 오는 것을 알아차린 건 들어 올린 다리를 무심결에 들여다보다 벌겋게 부풀어 오른 발가락을 눈으로 확인하고서였다. 일을 무리해서 많이 하지도, 평소보다 많이 걷지도 않았는데 피곤하긴 했다. 은연중에 다리 쪽에 오는 피로감은 고관절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고 살펴보지 않았고, 아침이 되면 잊히는 통증이어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나의 왼쪽 새끼발가락은 혹처럼 커지고 있었고 엄지발가락에 오는 질환인 무지외반증처럼 새끼발가락에 오는 질환인 소건막류의 초기 단계로 향해가고 있었다. 양발의 균형이 맞지 않아 늘 왼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려 있는 내가 한동안 무겁고 앞코가 좁은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검은 운동화를 주구장창 신고 다녔으니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는 왼쪽 새끼발가락은 찌그러지고 부풀어 올라 골이 날 수밖에. 멀쩡한 검은 운동화를 차마 버릴 수는 없어서 신발장에 고이 모셔놓은 후 앞코가 제일 넓고 크기도 가장 넉넉한 흰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다른 운동화도 신어 봤으나 발가락의 통증이 조금 덜 할 뿐 아프긴 마찬가지여서 오직 흰 운동화만 신을 수 있었고, 흰 운동화는 날이 갈수록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다. 마치 내 마음처럼.      


그러니까           


 큰 언니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게 며칠째인지 가진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다. 뒤늦게 삶에 큰 벽을 만나 헤매고 있는 언니는 기어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맏이라서였는지 기댈 곳 없고 기댈 사람들만 잔뜩 있는 가족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었는지, 많은 나날을 언니는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내느라 힘겨워했다. 고작 네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언니를 엄마처럼 대할 때가 많았고, 그것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지 생각하게 된 건 내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서였다. 당연한 희생처럼 여겨진 그녀의 힘겨움이 어떤 날은 너무 아프고 쓰라려 얼굴조차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타의든 자의든 단단했던 언니가 한순간에 무너진 모습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본다는 건 무력감을 넘어서 불안감 그 자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안부 전화를 핑계로 쓸데없는 농담을 건네는 것뿐이었고 연락이 되지 않을 때마다 혹여나 나쁜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안절부절못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었다. 이사를 간 직후엔 가끔 문자라도 왔는데 최근에는 전화도 문자도 오지 않는다.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그러니까     

 

 나의 왼쪽 새끼발가락이 더는 숨 쉴 구멍조차 없는 막다른 곳에 다다른 것처럼 나의 언니도 숨 쉴 수 없는 곳까지 내몰려 있는 상태인 거다. 깊어지는 발가락의 통증을 느끼며 언니 생각이 깊어진다. 발가락은 다른 운동화로라도 갈아신어 숨을 쉬게 해주면 되지만 언니에겐 다른 운동화가 없나 보다. 내가 사주는 운동화는 매번 앞코가 좁고 크기가 맞지 않은 것들인가보다. 다른 누구라도 언니를 본다면, 언니의 곁에 있다면 크기도 넉넉하고 이왕이면 모양까지 이쁜 것으로 사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운동화를 신고 활짝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해온다면 좋겠다.        


그러니까          


 언니는 아마 잘 지내고 있을 것이고 나의 왼쪽 새끼발가락도 더는 모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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