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na Jul 22. 2021

떠나고 떠나고 떠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다. 가능한 생각도 하지 않고 시선도 어딘가에 두지 않고 싶은데 이런 바람을 조금이라도 내비치면 그럴 거면 숨도 쉬지 말지 왜- 라는 말로 한심한 사람 대하듯 한다. 그래서 그냥 되도록 가만히라도 있고 싶다. 가만히 있는다는 게 돈만 많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은 맞는 이야기이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돈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시간도 확실히 더 많이 확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많아진 만큼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경우가 도처에 넘쳐 나는 상황이 의도적(?)으로 발생한다. 살아는 있는, 겨우 수면 위에서 호흡 중인 몇 안 되는 사람들도 봐야 하고 뭐라도 배우겠다고 이것저것 손댄 것들도 수습해야 하고, 무엇보다 잠도 설칠 만큼 쓸데없이 많이 보는 유튜브 시청이 나의 시간을 흡수하는 지경이라 좀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요즘엔 유튜브가 아니라 더위가 나를 무수면 상태로 만든다) 그럼에도 (안 믿을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아주 간절히 가만히 있고 싶은 것만은 분명하다. 진심이므로 때론 이런 내가 너무 의욕이 없는 사람인 거 같다.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권장하기에도 애매해서 가만히 있는 것 말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물었을 때 둘러댈 수 있는 걸로 그러면서 거짓은 아닌 걸로.     


 

집에 있고 싶다- 라는 문장을 생각해본다. 풋- 하고 웃음이 난다. 겨우 생각해낸 게 집에 가만히 있는 거라는 사실이 어이가 없고 의욕 없어 보이기는 매한가지인 거 같아서. 아니다. 웃을 일은 아니다. 사실 내게 집에 있는다 라는 것은 결의와 결심의 영역이며 어떤 희망과 성취 같은 것이다. 아빠라는 사람이 있었던 10대 시절의 집은 늘 빠져나오고 싶었던 미로이자 암흑이었다. 괴로움과 공포가 짙게 퍼져 있는 그곳이 사람들이 말하는 집은 아니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처음으로 아파트라는 곳으로 탈출하게 되면서 엄마와 언니만 있는, 사람만 있는 곳이 집이 되었다. 한동안은 아빠가 우리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색깔만 다른 공포가 늘 찾아왔지만 (아빠가 사는 곳과 탈출한 아파트가 멀지 않은 한 동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은 다르게 조각되었고 나는 조금씩 집이라는 곳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공포가 사라진 곳에 찾아온 것은 대립과 부유였다. 처음으로 집이라는 곳에 일상을 펼치면서 엄마와 언니와 나는 서로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인지하게 되었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나는 샤워를 할 때면 물이 여기저기 홍수 나듯 넘쳐도 꼭 서서 해야 했다. 그것이 내가 스트레스를 풀고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얻는 방법이다. 물이야 닦으면 되는 거였다. 한데 엄마는 그것을 배려 없는 행동으로만 인식했다. 굳이 앉아서 해도 될 것을 부러 일을 만들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냐는 것이었다. 흘린 물기를 제 손으로 닦지도 않는다고 비난했다. 닦을 시간도 채 주지 않고 강박적으로 걸레질을 하는 엄마를 보며 토할 듯 화가 나고 오기도 생겨 끈질기게 꾸준히 서서 샤워를 했다. 엄마도 끈질기게 닦고 말하고 퍼부어댔으며 그렇게 별거 아닌 일로 서로를 낱낱이 조각냈다. 엄마와 내가 입 터지게 서로를 물어뜯는 동안 큰언니는 조각난 파편처럼 부유하며 말도 잘하지 않았고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았다. 언니의 얼굴보다 닫혀 있는 언니의 방문을 보는 날이 더 많았다. 드라마의 막방처럼 갑자기 화목해지는 걸 바란 건 아니지만 내가 그렸던 그림은 어쩌면 갑자기 화목해지는 것을 뛰어넘는 박제된 행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또 집을 나오고 싶었고 그래서 결혼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결혼과 동시에 자연스레 집을 나오게 되었다. 월세도 전세도 아닌 은행 자본으로 이루어진 나의 매매 아파트는 이제껏 살았던 어느 집보다 넓고 쾌적했으며 물을 쏟아내듯 샤워를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 없는 어쩌면 내가 그리던 화목과 행복의 최상급이었다. 원하던 대부분의 것들이 있었고 원하던 대부분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그 공간에서 나는 많은 시간 고요를 누릴 수 있었고 세상에 스며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김없이 나와 상대방 (엄마와 언니가 그러했고 8년을 넘게 만난 지금의 소울메이트가 그러했다) 사이사이에 다름과 이질감이 찾아들었고 8년을 넘게 매일 보는 얼굴이 어느 날엔 너무 낯설어 자꾸만 위로 치솟는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아야 했다. 잠 못 드는 밤들이 늘어가고 엉켜버린 문제는 풀지 못한 숙제처럼 쌓여만 갔다. 지겹지도 않게 나는 또 뛰쳐나오고 싶었고 정말 또 제 발로 뛰쳐나오게 되었다. (실제로는 걸어 나왔다)


그렇게 유난을 떨고 새롭게 찾아든 8평의 원룸은 숨을 곳이라곤 없는 오로지 생존만을 위한 네모난 상자 같았다. 화장실도 세탁실도 공부하는 책상도 잠을 자는 침대도 한 곳에 모여 자기들을 봐 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모든 역할의 주체가 오롯이 나뿐이었지만 숨 쉬기가 힘들 만큼 갑갑했다. 혼자가 되었다는 기쁨에 취해 평생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은 며칠을 넘기지 못했고 그렇게 또 나는, 또 그리고 거의 매일, 답답해하고 외로워하며 기도한다. 어서 빨리 이곳을 탈출하게 해 달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채우면 어때-라고 묻는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만큼 생활과 일상의 사물들 모두를 치워버리는 건 어때-라고 나만 나에게 묻는다. 모르겠다. 어쨌든 가만히 있는 것 다음으로 집에 있고 싶다. 밖은 정말이지 내 것이 하나도 없고 계속 떠나고 떠나오는 사람만 있고 그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자꾸 떨어져 있으라 해서 떨어지다 보니 안과 밖도 사라지고 나조차 사라질 지경이다. 집에 있고 싶다. 집에 가만히 있고 싶다.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고요와 평화가 간절하다. 그런 나의 집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는지. 꾸역꾸역 떠나보면 나는 또 그때야 알게 될까. 어쨌든 나는 또 한 번의 도망을 희망하며 다음번엔 그래도 방이 따로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생산적인 생각을 해본다. (과연 생산적인가)




이미지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554857616567539934/

작가의 이전글 여름이 오고 장마도 오고 그리고 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