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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Aug 12. 2021

very happy birthday

얼마 전 생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 기대도 없이 생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기대도 없었다- 라는 것은 생일엔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가장 행복하게 보내겠다는 마음 따위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념일 같은 것은 그저 비싼 밥 한 번 더 먹는 것에 불과하다는 게 평소 지론인 나지만 생일만큼은 큰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 여기저기 여러 번 언급했으나 어릴 땐 생일이 방학이라 파티는 고사하고 친구들 얼굴 보기도 힘들었고 몇 번의 방학은 병원에 입원해 있느라 기쁨의 눈물보다 고통의 눈물을 흘리는 날들이 많았다. 커서는 파티까지는 아니라도 가족과 친구들의 소소하고 진심 어린 축하가 있었으나 다 커서 무슨 생일파티냐며 모두가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 날들로 치부하는 게 나도 좀 멋져 보여서 마음과는 다르게 생일은 그냥 생일이지- 하며 되지도 않은 허세를 부리느라 진을 뺐다. 하지만 마음으론 매번 조금 울적했다.      

     

올해만큼은 달랐다.           


 살아보니 생일이라고 특별한 게 없었다. 해가 두 개 뜨는 것도 아니고 내 주변으로만 빛이 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착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기계적인 생일축하 문자나 연락도 싫다기보다 어쩐지 무덤덤해졌다. 그래서 쉬지도 않고 책방에 나가 일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인터넷 검색이나 전화통화를 하며 특별하지 않게 보냈다. 그 특별하지 않음이 오히려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줘서일까. 어느 날보다 잔잔한 내가 마음에 들면서 일상에 집중할 수 있었다.      


 36년 전, 내가 태어났고 성격은 좋으나 성질이 나쁘게 자랐으며(...음?) 약아지려면 제대로 약았어야 했으나 덩치와 다르게 마음이 작아서 적당히 손해 보고 적당히 남들에게 피해 줬으며, 그래도 진정성만큼은 있어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남들에게 줄 때나 받을 때나 언제나 마음을 다했다. 대견할 만큼 마음을 다했다. 정말이다. 어쨌든 그 결과가 지금의 나이고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쩐지 또 마음에 든다.       

  

 신기하게도 이런 마음들이 내가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선물로 무엇이 받고 싶냐 누군가 내게 물으면 이상하게 받고 싶은 게 없었다. 선물보다 마음에 방점이 찍혀서 주는 사람 마음이지 싶은 것도 있었고, 자고로 선물은 깜짝 놀라야 제맛이라는 이벤트에 대한 은근한 환상도 있었으며 정말로 굳이 가지고 싶거나 받고 싶은 게 없었다. 물욕이 없어서가 아니라 물욕이 너무 커서랄까. 받고 싶은 건 남들이 쉽게 선물로 줄 수 없는 상상 그 이상이었으므로.(굳이 밝히고 싶진 않다 하하하) 남들만 나한테 물었지 내가 나에게 물어본 적은 없었는데 그 물음이 서른여섯 살, 처음 하게 되다니 뭔가 더 기념비적이다.(아- 정말 의미부여 하나는 끝내는 주게 잘하는 타입)         

 

나는 나에게 무엇을 선물하고 싶을까.          


 책이야 항상 주는 선물이고 돈도 많지는 않지만 늘 줄 수밖에 없고, 사고 싶은 것을 적어놓은 목록을 살짝 들췄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다. 이면지와 펜을 찾아 들고 책상 앞에 앉는다. 낙서만 하게 될 것 같아서 다시 컴퓨터 메모장을 연다.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써본다. 생각한다. 고민한다. 사랑이라고도 써보고 마음이라고도 써보고 책, 돈, 여행, 집 같은 단어들도 숨김없이 나열해본다. 그러다 지운다.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도 낙서인가- 하며 자판만 어지럽게 두들기다 갑자기 툭- 하고 <힘>이라고 쓴다. 마치 어디 숨어 있었던 것처럼 입과 손이 동시에 쓴다.     

      

 힘을 가지고 싶고 힘을 주고 싶다고 쓴다. 알맞게 맞아떨어진 느낌이다. 좋다고 생각된다. 웃음이 난다. 휴대폰이 울린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상품권과 책 선물이다. 카톡이 카톡카톡 거린다. 생존 신고만 하던 친구들도 오랜만에 연락이다. 반갑다. 정말 예기치 못하게 책방으로도 찾아와 급습으로 선물들을 주고 간다. 마음속에도 <힘>이라는 단어가 꽉꽉 들어찬다.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날이었다. 그랬다.  





<이미지출처> https://m.blog.naver.com/shin1028/222447237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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