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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Aug 14. 2021

나무 밑으로 가야 한다.

 비 온 뒤 나무 밑을 걸으면 그래서 바람이 불면, 나무가 운다 후두둑- 하고 운다. 나무는 하늘이 우는 동안은 참다가 하늘이 다 울고 난 뒤 운다. 혼자선 울지 못하고 누군가 나 같은 사람이 찾아들면 그때 온몸으로 운다. 나는 그런 나무 밑에서 갑작스럽고 낭패스러운 기분을 느끼는 게 좋다. 물론 매번 좋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같이 비가 지루하게 내리고 어쨌든 잎들도 쳐질 대로 쳐지고 나는 나대로 걸어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꽉 차오르면, 나무를 보러 가기엔 좋은 날이다. 생각해보면 나무는 참 착하다. 아니다. 사실 나무는 우는 것도 착한 것도 아니다. 우는 것도 착한 것도 저 멀리에 있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뿐이다. 그냥 있는 건데 나 혼자만 아니다.          


  나쁜 생각을 한다. 내가 나쁜 생각을 나쁜 생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실 스스로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쁜 것의 주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나는 그 모호함이 무섭고 내가 무서워할 동안 사람들은 슬퍼만 하기 때문이다. 원초적인 것만 남고 설명할 수 있는 게 사라진다는 건 모든 것을 압도한다. 압도 당한다는 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고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은 좋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쁘다. 하지만 말로만 그렇게 뱉고 속으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종종 나쁜 생각만 한다. 나쁜 것을 생각할때면 오히려 쓸데없이 깊어지지 않고 명료해진다. 명료한 내가 좋다.


 사물들을 생각한다. 내 눈앞에 가만히 소리 없이 있는 그것들을 멍하니 보고 있는 게 좋다. 보고 있다는 행위만 남게 해줘서 좋다. 내 마음대로 이해하고 오해하고 결론지을 수 있게 해주는 상태가 좋다. 말하자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는 뜻이다.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은 어째서 늘 마음대로 했을 때만 느껴지는 감정인지 모르겠다. 지금이 된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살뜰히 줄을 선다. 그것도 두 발로는 못 서고 깽깽이로 선다. 비켜서고 뒤에 서는 건 더 자주다. 그렇게 나를 끊임없이 검열한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아니, 마음먹는 일 같은 게 없다. 자꾸만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데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나에겐 남아 있는 말이 없다.


비가 그쳤다.


 나무만 피해서 걷는다. 앞서가는 사람이 자꾸 나무 밑으로만 걷는다. 그렇게 하면 아주 재미있을텐데- 하고 알려주려다 입을 다문다. 어쩌면 나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나무 밑에 숨어 있다가 나오라고 그냥 둔다. 그리고 그 사람보다 걸음을 빨리해 걷는다. 이상하게 바라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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