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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Nov 08. 2021

이상해 상상해 명상해

자랑스러운 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싫고, 어떨 땐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뱉는 건, 그저 슬픔이었다. 도대체 무얼 용서해야 한다는 건가- 그건 나도 모를 때가 많았지만 내가 나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누군가 자신이 너무 좋다고 말하면 겉으로는 좋겠네- 하고 말았으나 속으로는 그럴 리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미워할 수 없으니 사랑하는 척하는 거라고 마음대로 나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생산성이란 말을 감정에 갖다 붙이기에 무리가 있으나 나를 미워하는 일은 내가 생각해도 생산성이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에 가까운 일이었으므로 무척이나 생산적이게 살고 싶은 나는 나를 좋아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따위의 문장을 글로 쓰거나 말로 한다고 저절로 나아진다면 좋겠으나 오히려 거짓말이라는 확신만 차오를 것 같고, 적어도 불쾌하고 울적한 기분을 떨쳐낼 수 있는, 그래서 평온한 감정 속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자는 생각을 하며 나는 갑자기 <명상>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명상이란 무릇, 울창한 숲 가운데 편편한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온 우주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부처의 자세를 상상하기 쉬우나 (물론 나만) 일부러 산에 가기도 싫고 만약 그렇게 하더라도 아마 10초도 안 되어 잡생각에 빠질 것이 뻔하므로 그런 형식은 버리기로 했다. 요가를 가볼까도 생각했으나 명상은 고사하고 동작이 나오지 않으면 짜증 지수가 올라 나를 질타할 경우의 수가 확률적으로 높음을 알기에 그것도 목록에서 빼버린다. 이래서 빼고, 저래서 빠지고 남는 것은 무언가.      


밤이 오면 세상이 어두워진다는 게 무서워 엄마 품을 떠나지 못한 꼬맹이 시절의 난, 잠들기 전 꼭 상상했더랬다.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거나 좋아하는 남자와 사귀거나, 장래 희망란에 적힌 선생님이나 성악가, 만화방 주인 같은 어른이 된 모습을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그리다 보면 어느새 무서움은 사라지고 잠에 빠졌다. 텅 비어 버린 목록을 보며 그때를 떠올린 건, 먹고 살기 바쁘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시간조차 부족한 도시인으로서 어쩌면 나에게 가장 적합한 명상방법이 아닐까 하는 묘하게 설득력 있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겨울이 오려고 바람이 창을 때리는 밤. 모든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조금 기다리다 보면 밤의 그림자가 천장에 무늬를 펼치는 게 눈에 들어오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서늘한 마음을 조금의 온기로 채운다. 몇 번의 호흡을 얕게 한 후, 두 눈을 가볍게 감고 꼬맹이였던 나를 떠올리며 천천히 마음을 펼친다. 어제는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상상을 했다.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져 마음의 온도가 올라갔다. 오늘 아침 눈을 뜨기 전, 타국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솰라솰라 거리는 나를 상상했다. 내가 우스웠으나 마음의 온도가 또 한 번 올라감을 느끼며 나는 안도한다.    

  

이런 게 명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래서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면 알려줘도 좋다. 그동안은 이렇게 꿈꾸고 상상하며 잠시 현실에서 비켜서 있겠다. 아직 이렇게 비켜서는 것만이 나를 미워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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