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체스토리 한 컷 툰
말하지 않아도, 얼굴만 보면 알 수 있는 사이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지, 기분이 어떤지, 마음속에 할 말이 쌓여 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느껴지는 관계 말입니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오래된 친구이든… 그런 사람이 한 명쯤은 다들 있지 않을까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것저것 걱정거리와 생각거리를 한가득 안은 채, 평소처럼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나 왔어~”
별다른 티를 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고 믿었지요.
그런데 돌아온 말은 이랬습니다.
“왔어요. 왜, 무슨 일 있어?”
순간 멈칫했습니다.
아내는 어디서 나의 복잡한 머릿속을 읽어낸 걸까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가족, 연인,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표정과 말투, 걸음걸이, 작은 숨소리까지도 기억 속에 차곡차곡 담아두는가 봅니다.
보채는 아이의 얼굴만 보고도 어디가 불편한지 단번에 알아채는 부모처럼, 세월이 흘러 자식이 성인이 된 뒤에도 “무슨 일 있지?” 하고 먼저 묻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건 특별한 능력이라기보다, 오래 쌓인 관심과 애정의 결과일 것입니다.
상대의 작은 변화에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것.
그것이 아마 ‘가까운 사이’의 증거가 아닐까요.
아무 말하지 않아도 나의 상태와 심경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훨씬 큰 위로입니다.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신호이니까요.
물론 사람마다 어떤 상황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표정과 말투는 다 다릅니다.
그걸 알아채는 일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곁에 머무르며 관심을 기울였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오히려 반대일지도 모릅니다.
위로든, 조언이든, 그저 시시한 하루 이야기이든…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꺼내어 나누는 시간 속에서 관계는 더 단단해집니다. 말은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이니까요.
저녁상을 사이에 두고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걱정과 생각들이 조금씩 옅어집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도, 함께 나누는 순간 이미 절반은 가벼워졌다는 것을.
아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
그리고 그 마음을 다시 말로 건네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인연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충분히 견딜 만한 날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