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이면 아직 어린 거겠지?
슬프게 모포를 개면서 식당에서 떡국이나 먹으며 시작했던 2017년은 골방에서의 푸념으로 끝이 난다. 그래도 군대에서 새해를 끝내지 않는 게 어디냐. 쓸쓸하고 좁은 원룸이지만 등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덩케르크와 패터슨, 원더와 메탈리카,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와 비틀즈 4인조가 있으니 그나마 좋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이 넓은 서울을 가로질러 부모님 집으로 가야겠지. 하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으니 큰일이다. 이렇게 정신이 없다.
통째로 군대에 바쳤던 2016년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지만 올해는 다르다. 물론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그러고 보니 9월 6일 휘황 찬란 전역모를 쓰고 나온 뒤로부터는 여유라는 걸 찾기가 어려웠다. 제대하고 곧바로 내려간 부산에서 맨 처음 한 일은 사우나에 가는 거였는데 그때가 가장 할 일 없고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김없이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의 잔소리에도 네 알겠습니다 그러려니 하면서 넘겼던 행복한 시절이었지. 이후 나는 곧바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전역 버프라는 게 있다고 한다. 복학한 첫 학기에는 성적도 잘 나오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암튼 뭐든 삶에 찌든 사회인들보단 더 나은 수치를 보여준다는 거다. 내게 그 버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있었더라면 음악과 글에 다 갖다 박은 건 확실하다. 군대에서도 물론 치열하게 들었지만 정보의 양에서부터가 차이가 났다. 스티커 메모로 들어야 할 앨범 줄줄이 적어놓고 하염없이 들어야 했던 미친놈이 나였다. 설상가상 이제는 글도 써야 했다. 물론 갇혀있던 상황에서 절박하게 듣던 거랑은 많은 차이가 있었지만.... 암튼 상황이 그래서 사진도 찍게 되었고 공부도 해야 됐으며 영화도 엄청나게 많이 봤고 음악도 들었고 글도 썼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난 3개월 돌이켜보면 합정 홍대 이태원 합정 홍대 이태원 그리고 맥주밖에 생각이 안 난다.
항상 난 제대하기 전 내가 살아가야 할 사회를 생각하면 기쁘다기보다는 우울하기만 했다. 이상의 모습들은 모두 내가 상상했고 이미 그려놓은 상태였으며,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나름 그에 맞춰서 대비한다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했던 거였지만 세상은 역시 빡빡하고 쉽지 않았다. 재차 출연하는 아버지께선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불만을 가지지 마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도 투정 부리고 싶을 때가 있는 거라고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기댈 데가 별로 없었다.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잘 될 거야라는 말은 식상하지만 한 치 앞도 못 보는 미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보상이 되어준다. 그러나 가끔은 기대고 싶기도 했고 투정 부리고 싶기도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기도 했고. 그래서 남들 얘기 들어주는 게 좋았다. 사람들 고민을 들어주면서 공감하고 또 내 얘기도 조금 해주고. 나도 솔직하고 내 이야기를 꺼내놓고 싶지만 그런 걸 별로 궁금해하지 않으니 음악이나 열심히 듣고 영화나 열심히 보고 쓰는 수밖에. 그래도 사진을 배워서 참 다행이다. 그 와중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위를 못 둘러보는 거지.
아무 생각 없었던 군대에서의 9개월은 싹 사라지고 그 이후 3개월만이 2017년인 것 같다. 이번 한 해는 그래서 더욱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2018년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열심히 알바하고 열심히 글 쓰고 그러다 보면 기대고 싶은 일도 생기고 힘들 때도 있겠고 보람찬 일도 있겠지. 앗 그런데 비참하고 안쓰럽게 살지는 말자. 바빠서 안쓰럽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적당히 우울하기도 하고 나는 왜 이럴까 푸념도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 축내기도 좀 많이 하자. 의미 없는 공상도 마법 같은 일상이 되어갈 수 있잖아. 좀 더 솔직해지고 내 마음도 많이 보여주기로 하자. 누가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2018년은 그런 식으로 좀 더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 스물다섯이면 아직 어린 축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