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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an 16. 2018

은하선 하차, 거대한 사회적 폭력

소수는 결국 지게 된다는 슬픈 현실 자각이랄까.


< 까칠남녀 >가 LGBT 특집을 방영하고 나서 멍청한 보수 우익 기독교 단체가 공영방송국 로비에 드러눕고 깽판지는 것까지는 단순 해프닝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은하선의 강제 하차는 실망스럽다. LGBT 특집으로 일어난 일련의 일들 (이걸 '사태'라고 표현하는 것도 웃긴다.)을 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고 적당히 무마하자는 분위기가 읽힌다. 그릇된 관념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깽판을 치면 소수는 결국 지게 된다는 슬픈 현실 자각이랄까.


워딩이 세서 논란이 있던 은하선이긴 했다. 그러나 '성인 콘텐츠를 합법화하자', '데이트에서 남자가 돈 내는 게 매춘'이라는 발언을 해놓고도 '돈 많이 주니 어쩔 수 없다'며 프로그램 뒷담이나 까던 정영진에 대한 기사는 거의 없다. '강간 문화' 은하선의 발언은 집중포화를 맞았다. 하지도 않은 말로 '참외로 자위를 하는' 여자가 되기도 했고, 자위를 좋아한다고 말한 게 보수적인 성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성적 행위를 유희화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가 한 발언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 까칠남녀 > 프로그램의 논란에서 은하선에 대한 잣대가 유독 가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바이섹슈얼임을 커밍아웃하고 LGBT 특집 편이 나가자 EBS 앞을 점거한 시위대는 손쉽게 타겟을 변경했다.  



인터넷 댓글과 오프라인 시위하는 사람들의 발언은 거의 똑같다. 애써 적기도 유치한 에이즈 얘기가 나오고, 아이들 보는 공영 프로그램을 더럽혔다는 얘기가 나온다. TV 프로그램 한 회로 한 사람이 바이섹슈얼이 되거나 레즈비언이 된다면 그만큼 코미디가 없다. 성경 얘기가 등장하고 애들 교육이 등장하고... 그러면서 거대한 사회적 폭력이 생겨난다. 이런 멍청한 구시대적 논리가 그 자리에 머무르면 괜찮은데 이상하게 은하선이라는 한 개인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가혹한 테러가 이어진다. 바이섹슈얼에다가, 워딩도 거슬리고, 때마침 성인용품 샵도 운영한다. 쉽게 힘을 합쳐 뭉개버릴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아마 제작진의 하차 결정은 은하선이 EBS PD의 번호라는 타이틀로 퀴어문화축제 후원 전화번호를 올리면서 논란을 자초한 데도 있을 것이다. 설령 그가 정말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라 하더라도 경솔했다. 환불계좌 환불 절차를 알려줬다고 해도, 장난이었다고 해도 제대로 된 사과도 없었고 올바른 행동은 결코 아니었다. 미디어도 이익 집단이라는 점에서 시위대가 로비에서 깽판을 치는 현 상황을 좌시할 순 없을 테다. 


그렇지만 작금의 상황은 뭔가 슬프다. 이번 일로 은하선이 하차한다면, 성소수자들은 역시 불쾌한 존재들이며 TV에서 당당히 정체성 밝히는 것조차 교육적으로도 안되고, 사회적으로도 안되고, 조용히 숨죽여 살아라는 걸 보여준 사례 아닌가? 그런 권력의 프레임에 졌다는 뜻 아닌가? '공공장소에서 성적인 발언을 제재해야 한다'는 등의 헛소리를 하는 집단이 승리한 것이다. 하물며 기독교 방송국이라는 CBS조차도 <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에 성소수자 활동가의 강연을 다시 공개했는데 말이다. 



최근의 혐오는 방송국 앞의 꼰대들처럼 고전적이기도 하지만 넷상에선 교묘하기도 하다. 마치 '내 인생에 상관없으니 건드리지 마라'는 투로 나오면 나도 인권을 존중하는 것 같고, 꼬투리 잡히면 그들의 열폭으로 몰아가면 되니 쉽다. 대중의 무관심 속에 결국 힘 얻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쪽은 과격한 말을 쏟아내는 분들일 뿐이다. 거기에 맞춰 조금 공격적인 스탠스를 취하면 나치라는 호칭이 딸려온다. '왜 친절하게 알려줄 생각을 안 하냐?', '이래서 안된다'는 비아냥이 벌써 눈 앞에 선하다. 들을 자세가 아예 없는데 말해봐야 뭐하나. 얼마나 대단한 권력이라고 사람이 자유로울 권리까지 억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한동대학교는 페미니즘 강의를 열었다는 이유로 학생조사위원회를 열었고 < 까칠남녀 >는 성소수자 특집을 했다는 이유로 종로에서나 볼 법한 편견과 혐오의 시선을 한데 뒤집어썼다. 그 후속 대처도 결국 굴복 아닌가. 대체 사람들은 '공정하고, 정확하며, 편향되지 않고, 친절하게' 젠더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기대하면서 뭘 바라는 걸까? 그 논리는 사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그릇된 자세일지도 모른다. 종교의 이름으로 거리낌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저들을 앞에 세워두고 뒤에서 낄낄거리는 모습. 


은하선의 하차를 보고도 대한민국이 혐오 없는 역차별 국가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난 그들이 정말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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