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이라는 비현실적인 단어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현지 시각으로 3월 5일 유튜브에 공개된 애플의 스마트 스피커 홈팟(Homepod) 광고 영상은 하루 만에 480만의 조회수를 올렸다. < 존 말코비치 되기 >와 < 그녀(Her) >의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가 감독을 맡은 이 4분짜리 영상에서, 만원 전철 퇴근길을 거쳐 도착한 주인공의 비좁은 방은 '헤이 시리, 음악 좀 틀어줘' 한마디로 리듬에 따라 벽을 확장하고 늘어트리며, 무한한 상상의 법칙을 따라 생성되는 장치들로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한다. 그 신비로운 일상을 지휘하며 앤더슨 팩(Anderson. Paak)의 'Till it's over'에 맞춰 우아한 몸짓으로 춤을 추는 아티스트가 지금부터 소개할 탈리아 데브렛 바넷 (Tahliah Debrett Barnett), FKA 트윅스(FKA Twigs)다.
국내에서의 그는 < 트와일라잇 >의 로버트 패틴슨이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버리고 선택했던 연인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이런 가십에 오르내릴 레벨의 아티스트가 아니다. 17세 나이에 카일리 미노그와 제시 제이의 백댄서로 커리어를 시작한 트윅스는 뛰어난 댄서이며, 2014년 정규 앨범 < LP1 >으로 평단의 만장일치 찬사를 이끌어낸 재능 있는 아티스트고, 전 세계 패션을 선도하며 시각적 충격을 안기는 모델이다. 홈팟의 영상에서도, '힙한' 음악이 나오는 클럽 혹은 바에서도,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광고에서도 FKA 트윅스를 볼 수 있었다.
자메이카 이민자 아버지의 딸로 영국에서 태어난 트윅스는 가난한 가정환경과 인종 차별을 견디며 쉽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춤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던 그에게 친구들은 관절 꺾이는 소리가 난다며'트윅스(Twigs)'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유명 아티스트들의 백댄서로 출발한 그는 제시 제이의 히트곡 'Price tag'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주류 시장에 얼굴을 비춤과 동시에 독특하지 않은, 본인만의 색을 서서히 보여주기 시작했다. 2012년 영국의 패션 매거진 i-D의 커버 모델 촬영에선 앞머리로 알파벳 'Love'를 만들었고, 온라인 음악 공유 사이트 밴드캠프(Bandcamp)에 몽환적이고 낯선 트립합에 관능적인 목소리를 더한 첫 음악적 결과물 < EP1 >을 공개했다.
FKA 트윅스의 독보적인 개성은 음악과 영상을 결합한 뮤직비디오로 만개한다. 멕시코 외딴 마을의 버려진 공간과 하얀 의상의 대비를 보여준 'Hide'가 우아한 미(美)를 보여준다면,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얼굴을 기괴하게 왜곡하는 'Water me'와 강렬한 흑백 대비 속에서 섹시한 육체적 구속과 반짝이는 몸의 황홀경을 보여준 'Papi pacify'는 도무지 잊히지 않는 기억을 남긴다.
영국의 유명 평론지 < 스핀(Spin) >의 '적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음악은 아니다'는 찬사와 더불어 2014년을 대표하는 앨범으로 자리매김한 < LP1 >에서 그는 더욱 과감해졌다. 'Two weeks'에선 스스로를 고대 속 여왕과 인어로 묘사하며 황홀경을 펼쳤고, 절규하는 사형수의 집행실을 배경으로 한 'Video girl'에선 고독과 광기를 오가는 절정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후속 EP < M3LL155X >의 15분짜리 단편 영화로, 현대의 비디오 아트와 사이버펑크, 색다른 비유와 날카로운 묘사를 총집합한 이 영상에 < 빌보드 > 지는 '입을 떡 벌리게 만든다(Jaw-dropping)'는 극찬을 선사했다.
새 시대의 데카당스와 고혹, 우아를 총망라하는 트윅스의 재능은 보다 많은 이들과 조우하며 팽창하는 중이다. 2015년 모델이자 댄서 카너 플렉스(Karner Flex)와 함께 의류 매장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초현실적이고 섹시한 광고 영상을 찍었고, 지난해에는 나이키(Nike)와 함께 원시적인 분장과 일사불란한 무대의 미학을 동시에 보여준 'do you believe in more' 홍보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트윅스의 정규 앨범에 참여했던 아르카(Arca)와 샘파(Sampha), 에밀 헤이니(Emile Haynie)와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는 2016~2017년을 규정하는 멋진 작품으로 음악계의 신선한 한 축을 형성했다.
애플 광고는 아주 일부였을 뿐이다. 범상치 않음을 넘어 외계의 것이 아닐까 의심케 되는 FKA 트윅스의 재능은 그가 메이저에 등단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대적할 자가 보이지 않는다. 애플 홈팟이 광고처럼 정말 마법 같은 제품일지는 모르겠지만, FKA 트윅스의 매혹적인 춤 선은 마법이라는 비현실적인 단어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분명 우리가 주목해야 할, 새 시대의 아티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