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재능으로 가장 높은 곳에 서다
'난 이제 춤추지 않아. 돈다발이 춤을 추지(I don't dance now, I make money moves) '
2017년을 뒤흔들어놓았던 신인이 2018년 상반기 음악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히트 싱글 'Bodak yellow'로 1998년 로린 힐 이후 20년 만에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 HOT 100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뉴욕 브롱스(Bronx) 출신 여성 랩퍼 카디 비(Cardi B)가 바로 그 주인공.
4월 6일 발매한 첫 정규 앨범 < Invasion of Privacy >는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했으며, 일주일 만에 100만 스트리밍을 달성하며 여성 아티스트 최고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 내에 13곡을 진입시키며 거대한 팝스타 비욘세(Beyonce)의 기록까지 뛰어넘었다.
대중음악 역사에 여성 랩퍼는 많았고 그중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카디 비만큼 단시간에 아이콘 격으로 위상을 끌어올린 이는 흔치 않다. 각종 음악 / 패션지의 메인 모델로, 광고 모델로 바쁜 나날을 보내며 유명 토크쇼와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현 대중문화의 블루칩이 된 카디 비. 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기구한 인생사,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노력파
거친 유년기는 래퍼들의 기본 소양처럼 여겨지지만, 삶의 가장 어두운 지점부터 출발해 산전수전 다 겪은 카디 비의 인생역전 스토리만큼 흥미로운 과거는 드물다. 뉴욕 라틴계 혼혈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갱단의 일원으로 유년기를 보냈고 20대가 되고 나선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스트립 클럽에서 댄서로 일했다. 가진 것 없는 비참한 신세였지만 그는 꿋꿋이 학업을 마쳤고, 댄서 활동 와중 본격적인 음악인의 길을 설계하며 억척스럽게 미래를 그려나갔다.
이러한 성장 스토리는 카디 비의 거침없는 메시지에 당위를 부여한다. '6개월 만에 믹스테입 두 장을 냈지, 어떤 X이 나만큼 일해?(Dropped two mixtapes in six months, what bitch working as hard as me?)', '빈민가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대문이 달린 집에서 살지(I used to live in the P's, now it's a crib with a gate)'같은 익숙한 자기 과시도 절실하게 전달하는 이야기의 힘이다.
단단한 랩 실력 / 거침없는 언행과 당당한 태도
아래로부터 올라온 카디 비의 언행은 거침이 없다. 특유의 까칠한 말투로 걸쭉한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의견을 개진하는 인스타그램 동영상으로 수백만 조회수를 올리고, 공식 석상에서 '랩 퀸보다는 엔터테이너가 좋다', '스트리퍼 얘기를 자꾸 꺼내는 건 날 깎아내리려는 의도', '난 천사가 아니다.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 등 거칠면서도 진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누군가를 흉보는 노이즈 마케팅이 아닌, 든든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자연스러운 캐릭터다.
더불어 그는 미디어를 활용할 줄도 안다. TV 토크쇼에 출연해 '역사를 쓸 것'이라며 아슬아슬한 수위의 말을 이어나가거나 현 힙합 씬 최고의 그룹 미고스(Migos)의 오프셋(Offset)과의 약혼 관계를 공적 석상에서 적극적 애정 공세를 펼치며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하이라이트는 지난주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Coachella) 무대. < Invasion of Privacy > 발매에 맞춰 자신의 임신 사실을 공개했던 터였지만, 만삭의 몸을 이끌고 무대로 뛰어드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카디 비 다웠다'.
다양한 분야 아우르는 재능, 원 히트 원더를 거부하다.
'Bodak Yellow'가 대성공을 거뒀지만 한 곡으로는 부족한 터. 놀랍게도 카디 비는 신곡 발매마다 점점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소 어설픈 부분도 있었지만 카리스마로 끝까지 밀어붙였던 게 전작의 매력이었다면, 후속 싱글 'Bartier Cardi'에선 여유를 더해 매끈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팝스타 브루노 마스(Bruno Mars)와의 콜라보로 너른 역량도 과시. 1980년대 뉴잭 스윙을 재현한 'Finesse' 리믹스 버전에서 우수한 퍼포먼스로 최신 트랩 스타일을 넘어 타 장르에서도 본연의 몫을 해낼 수 있단 걸 증명했다.
정규 앨범 역시 다채롭다. 미고스와 함께한 'Drip'을 필두로 'Money bag', 'She bad'와 같은 중후한 트랩 비트 곡들이 'Bodak yellow'의 공식을 재확인시키고, 최근 재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라틴 풍 멜로디가 흐르는 'I like it'으로 대세를 따르기도 하며, 알앤비의 신성 켈라니(Kehlani), 시저(SZA)의 참여를 통해 팝의 감각 역시 확보한다. 'Be careful'로 섬세한 연애 감정을 노래하기도 하며 'Best life'에선 삶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원 히트 원더에 머무를 일 없는 탁월한 재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