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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y 03. 2018

자넬 모네, 한계를 부수는 미래의 아티스트

신보 < Dirty Computer >로 21세기 전설에 또 한걸음.

한계 없는 아티스트를 꼽자면 단 한 명 자넬 모네(Janelle Monae)다. 이 1985년생 아티스트는 단 두 장의 앨범으로 2010년대 가장 혁신적인 음악을 만들었고, 영화 < 문라이트 >와 < 히든 피겨스 >에선 모두의 뇌리에 잊히지 않을 열연을 선보였다. 훌륭한 댄서이자 가수, 래퍼, 디자이너임은 물론 단단한 신념으로 다양성을 역설하는 사회운동가까지 섭렵한 새 시대의 아티스트, 세 번째 정규 앨범 < Dirty Computer >로 오랜만에 음악계 컴백한 자넬 모네가 21세기를 대표하고 있다.
 


2010년 자넬 모네의 데뷔 앨범 < The ArchAndroid >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미래 도시 형태의 왕관을 쓰고 있는 앨범 커버부터가 비범했고, 전체 작품을 지휘하는 뛰어난 실력과 거대한 세계관은 25세 신예의 작품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공상과학영화의 거장 프리츠 랑(Fritz Lang)의 1927년작 < 메트로폴리스 >에서 영감을 얻은 스토리는 1960년대 사이키델릭과 펑크(Funk) 리듬으로 정교하게 설계됐다.

여기에 아프로-아메리칸들의 20세기 문화 양식 ‘아프로 퓨처리즘(Afrofuturism)’과 미래 로봇 문명의 딜레마까지 모조리 섭렵했으니 어찌 비범한 재능이 아니겠는가. 가상의 미래 낙원 ‘메트로폴리스’를 수호하는 안드로이드 ‘신디 메이웨더(Cindi Mayweather)’ 7부작의 세 번째 위치를 막 선보였던 자넬 모네의 루키 시절 별명이 ‘전설’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말 다했다.


2013년의 소포모어작 < The Electric Lady >는 한 술 더 뜬 걸작이었다. 총 열아홉 곡으로 두 가지 수트(Suite : 막)를 선보이는 앨범은 아트 록과 힙합, 고전 펑크(Funk) 리듬과 로큰롤, R&B를 모조리 빨아들이며 변화무쌍한 아티스트의 도래를 알렸다. 프린스(Prince)와 에리카 바두(Erykah Badu) 같은 전설과 함께 본연의 색채를 진화하면서, 당당한 여성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담기 시작한 것도 이 앨범의 성과였다. 각종 매체로부터의 찬사와 동시에 ‘Dance apocalyptic’, ‘Q.U.E.E.N’ 같은 히트 싱글 또한 탄생했다.

5년 만의 정규 앨범 < Dirty Computer > 역시 만만찮은 작품이다. 벌써부터 자넬 모네의 우상이자 2016년 세상을 떠난 전설 프린스(Prince)의 재림이라는 평이 나온다. 1960년대 비틀즈 예술의 호적수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천재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 ‘Make me feel’의 리듬에 기여한 프린스, 넵튠스부터 지금까지 팝 시장의 검증된 프로듀서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등이 참여한 앨범은 역시 폭넓은 장르 폭과 군더더기 없는 프로듀싱, 개성 있는 보컬-랩과 독창적인 아우라를 통해 벌써부터 올 해의 앨범 한 자리를 예약했다. 정규 앨범 세 장을 명반의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 흔치 않다.



자넬 모네는 훌륭한 가수일 뿐 아니라 다방면으로 뛰어난 엔터테이너기도 하다. 웬만한 댄서 못지않게 춤을 추고 라이브에서도 항상 수준급의 무대를 선보인다. 패션 센스도 뛰어난데, 데뷔 앨범부터 선보인 매끈한 턱시도와 주름진 셔츠 복장은 18세기 유럽의 패션과 19세기 댄디즘(Dandyism)을 녹여낸 그만의 캐릭터를 확립하며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은 것이 그 예다.

이후의 필모그래피는 음악 마니아들을 넘어 범대중적인 영역에서 자넬 모네의 얼굴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17 아카데미 어워즈 작품상의 영예를 누린 < 문라이트 >에서 어린 주인공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테레사’로, 같은 해 3월 개봉한 < 히든 피겨스 >의 주연 ‘메리 잭슨’으로 분한 것. 아프로-아메리칸 커뮤니티의 열악한 현실과 1960년대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우주 공학계에 공헌한 여성들의 전기를 그린 의미 있는 두 작품에서 완벽한 연기를 통해 당당한 캐릭터를 확립했다. 이런 ‘비주얼 어택’은 한 편의 SF 디스토피아 단편 영화로 그려낸 < Dirty Computer > 앨범 전체 뮤직비디오에서 정점을 찍으니, 48분짜리 영상을 놓치지 말 것.


2010년 데뷔 앨범 < The ArchAndroid > 발매와 동시에 가진 인터뷰에서 자넬 모네는 그 자신을 안드로이드로 묘사한 이유를 밝히며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안드로이드는 우리 사회의 ‘다른 사람들’을 뜻하죠. 저는 여성으로, 현시대의 아프로-아메리칸으로도, 다양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요. 그들을 이상하다거나, 다르다고 부른다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죠. 전 언제나 그 경계를 무너트리려 합니다.”(2010 Janelle Monae’s android power < Chicago Tribune >)


차별받는 소수의 편을 대표하는 자넬 모네의 투쟁은 그의 음악 사상과 영화 배역, 그리고 뮤직비디오와 패션 등 그의 예술 세계를 형성하는 기틀이다. < Dirty Computer > 앨범의 콘셉트 역시 마찬가지. 인간의 삶을 ‘업로드, 다운로드, 전송, 삭제’하는 컴퓨터에 비유하여, 그 속의 바이러스와 사소한 버그를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소수자들로 치환한 개념부터 다수의 억압과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 그 아래의 따뜻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유리 천장을 부수려 하는 여성들에 대한 찬가 ‘Q.U.E.E.N’으로부터 힘없는 어린아이를 따스하게 안아준 < 문라이트 >의 테레사, 편견에 맞서 역사적 성취를 남긴 < 히든 피겨스 >의 메리 잭슨으로 이어진 연대의 메시지는 새 앨범 전체에서 재확인된다. ‘난 언제나 중심에서 왼쪽에 속해있지 / 나는 메이저에서 들을 수 있는 마이너 노트’라 선언하는 ‘I like that’과 여성 성기 모양의 과감한 바지 패션으로 당당한 페미니즘을 설파하는 ‘Pynk’의 뮤직비디오는 단연 압권이다.


이쯤되면 미래로부터 날아온 '안드로이드 아티스트'라 해도 믿지 않을까 싶을 정도. 이미 팝 매거진 < 롤링 스톤 >은 "자유로운 미래주의자의 펑크(Funk) 마스터피스"라며 새 앨범을 격찬했다. 범접하기 어려운 재능으로 미래로의 길을 개척하는 자넬 모네, 보다 많은 이들이 그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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