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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y 04. 2018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 YG의 오디션

< 믹스나인 > 데뷔 무산, 오만한 대형 기획사와 미디어의 횡포


사실 JTBC 오디션 프로그램 < 믹스나인 >의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방영 전 제작발표회에서 최종 우승 팀에 대한 계획을 물었을 때, YG 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누가 뽑힐지도 결정이 안 됐기 때문이다. 우승 팀이 결정되면, 소속사 분들과 상담을 해야 한다."는 모호한 대답만을 남긴 바 있다. (2017.10.17 "‘믹스나인’ 제작발표회, YG 양현석 “문제 있는 아이돌 시장에 필요한 프로그램” 스포츠경향). 


당시에는 거대 기획사의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근거한 자신감이었겠지만, 프로그램 종영 후 4개월 만에 우승자들의 데뷔 계획이 공식 무산되면서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셈이 됐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데뷔 경험이 있으나 주목받지 못하고 잊힌 아이돌, 소속사 사정으로 데뷔하지 못한 연습생들에게 재기 기회를 준다는 의의는 달콤했으나 그뿐이었다. 방영 시작 후 < 믹스나인 >이 주목받은 것은 양현석 대표의 막말과 갑질, 그리고 YG 엔터테인먼트라는 간판만 믿은 안이한 기획이었다. 1화부터 양현석 대표는 전국 곳곳의 중소 기획사를 시찰하며, 각 대표들이 자신 있게 선보이는 연습생들의 무대를 관람한 후 '가능성 있다'라고 판단되는 이들만을 밴에 탑승시켰다. CL, 승리 등의 심사위원이 있었지만 가장 핵심은 '양현석의 마음에 드는가'였다. '왜 내 맘에 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라는 발언도 나왔다.


오만한 내려보기는 독설로 이어졌다. 그룹 코코소리의 멤버 소리를 심사하면서 '이 나이 되도록 뭐했나', '되는 일은 없는데 하는 일은 많은 것 같다'는 인격 모독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고, 3회 어떤 참가자에게는 '말부터 가르쳐야겠구나'는 폭언을 일삼았다. 이후 그의 말이 화제가 되고 갑론을박이 펼쳐지자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대중은 YG 엔터테인먼트가 과연 진심으로 '참가자들을 위한 기획'을 가졌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 모든 참가자들은 불공정한 계약을 감수하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했다. 공정위 감사 결과에 따르면 YG 엔터테인먼트는 대금 지급과 수익만 배분하면 전속계약이나 계약서 상의 의무를 이행할 어떤 책임도 없었을 뿐 아니라, 출연자를 하차시키기로 결정해도 해당 소속사에만 통보하면 됐다. (2018 05 02 공정위, ‘더유닛‘·‘믹스나인‘ 불공정 계약 적발 스타투데이)


그렇게 해서라도 이 서바이벌에 출연한 멤버들이 주목받았다면 넘어갈 수도 있었다. 170명에 달하는 참가자들이 있었으나 그들을 담을 시간은 부족했고 몇몇 선택된 연습생들만이 주목받을 수 있었다. 남녀 성대결 구조는 그렇잖아도 불공평한 구조를 더욱 불공평하게 만들었다. 1%에도 미치지 못한 시청률은 종영까지 0점대 후반을 겉돌았다. 포털 검색창이나 SNS 화제를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그렇게 프로그램이 끝났고, '인기 없는 오디션' 우승자들에게 '4개월 활동기간 + 해외 공연'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자 YG 엔터테인먼트는 각 소속사들에게 3년의 계약 기간을 제시했다고 한다. 당장을 기약하기도 힘든데 3년 동안 권리를 넘기라는 발상이 참으로 뻔뻔하다. 



연습생들과 전직 아이돌 멤버들은 '소년 소녀를 구해달라'는 호소 그 이상의 절박한 마음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기존 기획 방안이 있음에도, 혹은 이미 소수의 인지도를 획득하였음에도 자본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쳤던 중소 기획사들 역시 거대 미디어와 오디션 프로그램에 어쩔 수 없이 차출당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건 '아쉽게도 화제가 되지 못했다'는 변명뿐이다. 


최소한 그 과정이라도 아름다웠다면 모를까 < 믹스나인 >은 폭언과 독설로 얼룩졌으며 공정하지도 않았던 경연장이었다. KBS의 경쟁 프로그램 < 더유닛 >도 비록 참가자들을 가수 비의 컴백 무대 백댄서로 썼고, 미숙한 진행에 발목을 잡혔지만 적어도 '선배 군단'의 애정은 있었으며 오는 17일 걸 그룹 유니티의 론칭을 앞두고 있다.


< 믹스나인 >의 실패는 그 달콤한 선례들만 취하고자 했던 대규모 기획사의 무지와 오만함이 만든 결과다. 수년간의 노력을 나태로 단정 짓고, 철저한 을로 깔보았으며 공정하지 못한 판에서 경쟁만을 강요했다. 그 후 인기가 없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말만 남기고 발을 뺐다. 미디어와 대기업 '갑질'이라 봐도 무방하다. 갈 길 잃은 연습생들과 중소 기획사,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화려한 무대를 꿈꾸며 연습실에서 땀 흘리고 있을 이들의 허탈함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YG 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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