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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내내 군대에 있었다.

안녕 2016

by 김도헌

한 차례 우스운 해프닝을 겪고 들어간 두 번째 입대 때문에 생일, 크리스마스, 신년을 훈련소 기상나팔로 맞았다.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대책 없는 믿음이 후반기 그리고 지금의 자대까지 이끌었다. 나는 그런 거 절대 안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교가 되었다. 이렇게 별 일 아니었다면 왜 그렇게 집에 가라 했는지 그 군의관이 참 밉다. 내 3개월...


쉬우면 쉬웠지 딱히 어려움은 없다. 모든 일은 까먹지만 않고 제 때 이야기만 잘 하면 어떻게 큰일 나진 않는다. 시키는 것 이상을 하지 않으면 되고 딴짓도 적당히 하려면 할 수 있다. 복 받았다. 그래서 이렇게 연말 결산 글도 쓰고 있는 거겠지. 누가 군에서 이렇게 글 쓸, 음악 들을 시간이 생길 거라 생각이나 했던가. 하나라도 더 담고 가려고 몇 날 며칠 심지어 훈련소 가는 차 안에서도 블로그에 연말 결산을 올리던 게 좀 허무해진다.


제일 괴로운 건 열등감이다. 사회 있을 때는 그럭저럭 나도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실망할 틈도 없이 갈 길 가기에만 바빴다. 이젠 좋으나 싫으나 기다릴 수밖에 없고 보이는 것들은 하나같이 멋지기만 하다. 어떤 글을 읽어도, 어떤 사진을 봐도, 하다 못해 SNS의 소식만 봐도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다. 그들의 생산적인 결과에 비하면 군대에서의 내 것들은 발악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래서 뭔가 떳떳이 내놓을 수가 없다. 망설여지고, 어렵기만 해서 사람들이 덜 보는 그런 공간들만 찾아다녔다. 좀 결과가 나오면 몰라도 주말 오전 몇 시간 안에 (그마저도 쉬지 않아야) 그럴 듯 구색이라도 맞춰지는 지금 상황에선 자신 있기가 어렵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지낸다면야 휴식 같고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처음엔 있었는데 가면 갈수록 벌어지는 차이가 무섭게 다가온다. 저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나름 행복하다고 자부하며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들만 하다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2016년이다.


지금 치열하지 않으면 영원히 늘어질 것 같아 끊임없이 긴장의 끈을 높이고 산더미 같은 볼펜과 노트를 소비한다. 뭐가 될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안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의미 없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싶진 않다. 여전히 나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소수지만 글 봐주는 사람도 있다. 후임이 브런치를 타고 들어와서 대단하다고 했을 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관종의 특징이라 해도 좋다.


내년엔 전역을 한다. 벌써부터 날짜 세냐고 뭐라고들 하지만 시간이 너무나도 빠르다.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초조하고 뭐라도 하나 더 듣고 뭐라도 더 하나 쓰려고 키보드가 부서져라 두들기고 있다.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이다. 2016년엔 그렇게 많은 것을 배웠다. 군대에서의 깨달음이라 더 의미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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