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세월에 더욱 깊은 메시지로 돌아온 후속작
영화는 1탄의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했던 언더마이너를 막기 위해 출동하는 인크레더블 가족으로부터 출발한다. 바로 얼마 전 신드롬의 야욕으로부터 도시를 구했음은 물론이요, 언더마이너의 거대 드릴로부터 시청의 붕괴를 막아냈음에도 경찰 당국과 시민 사회는 슈퍼 히어로들의 '난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들 가족을 모텔방으로 밀어 넣는다. 여전히 법제상으로 슈퍼히어로 행위가 위법인 탓이다. 전편에서 과거의 영광 대신 소중한 가족의 가치를 깨달았던 인크레더블 패밀리들은 편견에 의해 다시금 슈퍼 파워를 그리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위기의 슈퍼히어로들에게 거대 재벌 윈스턴 데버(밥 우든커크 분)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동생 에블린(캐서린 키너)의 천재적인 발명품을 화려한 세일즈 전략으로 상용화하여 부자가 된 그는 슈퍼히어로들의 TV 주제가를 모두 외울 정도의 광팬이며 진심으로 그들을 동경하며 돕고자 한다. 이들 남매의 전략은 범죄 도시에서의 영웅 활약상을 여론에 집중 조명하여 사회적 분위기를 반전하고 초능력 금지 법안을 폐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적임자로는 '미스터 인크레더블' 밥이나 '프로존' 루시우스가 아닌, 과거 '파괴 실적'이 가장 적었던 헬렌 '엘라스티걸'이 선정된다.
<인크레더블 2>의 주요 시선은 '역지사지'의 태도다. 1편의 밥이 신드롬의 비밀스러운 지령을 출장으로 속여 출퇴근을 했다면, 2편의 밥은 헬렌의 활약으로 법안이 폐지되는 날을 기다리며 정말로 출장 가버린 아내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게 된다. 평소 가사에 대해 전혀 지식도 없고 노하우도 없던 밥이지만 흔쾌히 제안을 수락하는데, 사춘기 소녀 바이올렛의 까칠함과 대쉬의 수학 숙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아기 잭잭을 돌보는 것은 상상초월로 까다롭다.
아버지 밥은 일평생 그가 해왔던 방식 - 부수기 -를 통해 상황을 타개하려 하지만 공감 없는 막무가내식 해결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딸이 마음에 두고 있던 토니의 기억을 아주 지워버리며 한창 예민할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긁어놓고, 아들의 숙제를 도와주면서 '왜 수학이 이렇게 바뀐 거야'라는 등 새 교육 방식을 따라가지 못한다. 익숙지 않은 집안일과 가사 노동에 지쳐가던 밥이 바이올렛에게 위로받는 것은 비로소 그가 강압적인 태도 대신, 자신의 서툼을 솔직히 인정하고 딸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나서다.
이와 같은 각각의 시선은 데버 남매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인크레더블의 광팬이었다 흑심을 품은 전작의 악당 신드롬에게 과거는 지우고 싶은 상처지만, 윈스턴은 어린 시절 슈퍼히어로들의 활약상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한다. 그가 슈퍼히어로 금지 법안을 폐지하려는 이유는 바로 그 법안 때문에 아버지를 강도에게 잃었기 때문이다. 윈스턴은 디지털 최첨단 과학 기술 시대의 수혜자임에도 빛나는 지난날을 잊지 못해 현실과 적응하지 못하는 많은 슈퍼히어로들의 힘을 믿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악당 '스크린슬레이버'의 흑막 에블린은 반대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슈퍼히어로만을 믿고 있었던 안이함에서 왔다고 인식하여 초능력자들에 대한 분노를 키워왔다. 스크린슬레이버는 현대 사회 누구나가 갖고 있는 스크린을 이용해 상대를 조종하며 슈퍼히어로들의 초능력으로 인해 무사안일주의가 판치고 인간 본연의 힘이 사라질 것을 경고함과 동시에 과학 기술로 인해 점차 퇴보해가는 인간의 나태함을 공격한다. 사상은 과거를 향하지만 현대 과학을 활용하는 셈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최첨단 그래픽 기술로 매끈하게 빚어진 애니메이션에서 기술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에블린과 헬렌이 상당수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뛰어난 발명가지만 대중 앞에 나서는 윈스턴에 가려진 에블린, '미세스 인크레더블'이라는 이름 아래 엘라스티걸을 봉인하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던 헬렌은 서로의 삶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를 타개해나가는 방법은 꽤 다른데, 에블린이 끝까지 흑막 뒤에서 히어로들을 조종해 공멸을 유도한다면 헬렌은 엘라스티걸로의 위상과 인크레더블 패밀리의 어머니 둘 다를 놓치지 않는다. 이는 동생의 정체에 침통해하면서도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 윈스턴과도 대조되는 모습이다.
무기력하게 제압당하는 어른들을 구하는 아이들의 대활약이 한층 더 강화된 것도 성장 영화로의 요소를 충족한다. 헤어 밴드로 얼굴을 드러낸 바이올렛에게서 전작의 소심함은 사라져 있고, 천방지축 사고뭉치였던 대쉬는 성숙한 꼬마 영웅의 면모를 보인다. 특히 갓난아기인 줄 알았던 잭잭이 가늠할 수 없는 슈퍼 파워를 갖고 있는데, 이를 적재적소에 컨트롤하며 항상 잭잭을 봐주느라 한 명은 빠져있었던 인크레더블 패밀리가 비로소 완전한 슈퍼히어로 그룹으로 완성되는 광경 또한 인상 깊다.
<인크레더블> 개봉 후 15년 동안 분명 세상은 변했다. 더 이상 슈퍼히어로들은 남자들만 전면에 나서지 않고 누군가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 세상은 간편해진 대신 정신과 육체적 빈곤을 동반했고 이를 공격하는 스크린슬레이버의 태도는 초능력 영웅들의 전성기인 2018년 문화계를 은근히 저격하는 듯하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도 변하지 않아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부합하지 않을지라도 대규모 재난을 초자연적으로 막아내는 슈퍼히어로들에게서 사람들은 부조리한 세상을 잊고 희망을 갖는다. 그 존재를 가능케하는 것은 화려했던 과거가 아닌, 서로의 가장 최후 보루가 되어주는 영원한 내편인 가족이다. 시대를 앞서간 전작만큼 화끈하고 독특하며 보다 성숙해진 인크레더블 패밀리의 귀환이 더없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