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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an 15. 2017

모아나

21세기 동화 작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모아나는 호기심 많고 자주적이다. 말과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고 용기 있게 도전할 줄 안다. 족장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겁고 대양이 선택한 운명이 왜 자신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바다가 선택한 운명을 따라 나아간다. 이런 모아나에게 '여자라서 안된다'라거나 '너는 할 수 없다'는 식의 핀잔은 거의 없다. '다 잊어버릴래'하던 주인공이 '어디든 멀리 가볼래'라 노래하는 건 꽤 큰 이미지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새 시대의 디즈니 프린세스에게 이 정도는 기본!





우리가 디즈니 영화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세상이 당장 바뀐 건 아니다. 폴리네시안 공주가 등장해도 여전히 인종, 성별은 평등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이며 2016년은 페미니즘과 새로운 흑백갈등이 고개를 든 해였다. 영화 그 자체도 비백인 캐릭터 묘사에 있어 숱한 지적을 받는다. 디즈니는 새삼 우리가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동화 속 진정한 사랑에 질문을 던진 < 겨울왕국 >, 지배층 논리에 역차별을 더한 < 주토피아 >,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모험의 < 모아나 >까지. 어? 이런 교훈 찾기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바로 고전 동화를 재해석하던 월트 디즈니의 황금기 아닌가. < 백설공주 >부터 < 피노키오 >, < 덤보 >와 < 밤비 >, < 신데렐라 >... 시간이 지나고서는 < 포카혼타스 >, < 뮬란 >, < 타잔 >까지. 디즈니는 끊임없이 과거의 구전 혹은 가까운 근대의 새로운 동화를 만들어내며 전 세계 아동들에게 교훈을 설파했다. 암흑기를 지나 < 라푼젤 >의 살짝 비틀기가 부활을 알리고 의도치 않았던 < 겨울왕국 >의 대성공이 겹쳐지면서 ( < 겨울왕국 >에 월드와이드 12억 불 수익을 기대한 관계자는 없었다.) 21세기 디즈니에게는 새로운 임무가 생겼다. 전성기 그대로, 새 시대의 동화를 창조하는 것. 


세상이 많이 변한 만큼 그 내용도 사뭇 달라야 한다. 옛날 옛날엔 아름다운 공주님이 잘생긴 왕자님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지만 요즘 공주님들은 남자가 필요 없다. < 겨울왕국 >은 그 모든 것에 앞서는 자매애를 보여줬으며 < 모아나 >에는 아예 러브스토리 자체를 뺐다. 인종, 외모, 체형 구분은 있는 게 더 이상하고 각자도생의 '다름' 가치를 널리 퍼트려야 한다. 21세기 동화책의 주제는 순종, 노력, 행운이 아니다. 맞서고, 당당하고, 차별 없는 세상 구현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스크린으로 펼쳐지는 월트 디즈니의 세계관이다.


혁신이라 여겨졌던 이 스토리라인도 익숙해진 셈. 그래서 더욱 새 시대의 동화책은 휘황찬란한 기술력에 집중한다. 오직 CG로만 빚어낸 광활한 바다의 풍경은 경탄 그 자체며 캐릭터 묘사는 < 겨울왕국 >조차도 예전처럼 느껴질 정도로 세밀하다. 로맨스도 없어서 모험 그 자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각각 사건이 잘 연계되어있고 붕 뜨는 전개 없이 계속 일관된 도전 정신, 강한 내면의 의지를 강조한다. 스코어 또한 명불허전으로, 주인공 모아나의 대표곡 'How Far I'll Go'가 선사하는 청량함은 'Let It Go' 그 이상이기도 하다. 


Auli'i Cravalho - How Far I'll Go (From "Moana")


< 모아나 > 자체가 아주 새롭고 혁신적이진 않더라도 평론가들의 극찬과 관객들의 높은 만족도가 나오는 건 그 자체로 뛰어난 완성도 덕택이다. 더 이상 상식선을 넘는, 새로운 세상을 선도하는 메시지를 담지 않아도 모두가 만족하는 즐거운 이야기와 놀라운 눈요기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은 것. 그러나 한 편 불만스럽기도 하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역사 속 동화 작가들이 그러했듯, 시대의 사고방식을 담아내고 다채로운 화면과 폭넓은 소재를 선택하지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한계가 보인다. 어린 소녀 모아나의 모험은 위험천만하고 환상적이라도 작품 자체로는 전혀 놀랍지 않은 '르네상스의 연장선'으로 그치고 만다. 새 시대의 작가들 -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게서 찾은 흠이라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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