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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Oct 29. 2018

18.10.26

고향 가는 길이 즐겁지 않다.


한 달 전부터 아침마다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오전 7시 15분, 혹은 7시 20분.
잠결에 문득, 새벽 강둑을 달리다 문득,
잠을 깨우는 메이저리그 라디오 중계 속 문득.
알람 소리와는 다른 아침의 긴소리를 받을 때도 있었고,
못 받을 때도 있었다.

몇 달째 병원에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께선
자꾸만 빠른 연결 2번과 5번을 잘못 누르셨다.
병간호하는 할머니의 익숙한 목소리 대신
잠 덜 깬 굵은 소리가 당황하시던 그는
이내 밥은 먹었는지, 건강 잘 챙기는지,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지로 머쓱한 대화를 마치곤 했다.

이 기묘한 아침의 부름에 할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해 그렇다고 염려하셨다.
그렇다기엔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또렷했다.
내가 미국을 혼자 갔다 온 것도,
새 학기가 시작된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어머니도 할머니도 모두 내 설명을 듣고 마음을 놓았다.
뭐든 괜찮아졌다는 희미한 신호였으니.

그렇게 모두가 안도할 때 즈음부터
그도 더 번호를 잘못 누르지 않게 되었다.



가끔 그가  많이 2 대신 5번을 눌러주기를 상상했다.
잘못  전화는 뭔가가  되어간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믿으며 조금이나마  되겠지.

근거 없는 믿음을 가져 봤었다.
또다시 10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싶진 않았다.

 이후로 잘못  전화는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제 내겐 전화를 잘못 걸어줄 할아버지가 없다.

그리고  사실이 문득,

집요하게 오래도록 나를 괴롭힐 것이다.
마치 잘못 걸려온  수십 통의 전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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