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 속 가부장제의 서사. 저런 아버지가 되고 싶진 않다.
홍탁집의 백종원은 독특한 존재다. <골목식당> 방송 취지대로라면 골목상권의 활성화를 위한 가게 컨설팅에 그치면 되는데, 유독 홍탁집에선 전문가의 입장이 사라진다. 그가 아들에게 가하는 비판은 전문적 영역 혹은 방송의 부분이라기보단 마치 우리 사회 아버지의 훈계 혹은 역정에 가깝다. 고생하는 어머니와 철없는 아들, 그 속에 부재한 아버지 자리에 백종원이 들어선다.
‘방송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다’, ‘어머니가 불쌍해서 그렇다’라는 발언은 자영업자 대 프랜차이즈 전문가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정으로 문제를 끌고 간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시간을 묻고 숙제를 준다. 그리고 그 과제에 ‘깊은 뜻’을 파악하지 못한 아들은 디데이 날 호되게 혼이 난다.
물론 홍탁집 모자는 프로그램 속 다른 식당과 분명히 구분되는 케이스다. 요식업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하나도 없는 아들 때문에 대부분 노동이 어머니에게 집중된다. 그런데 이 집이 장사가 안되는 이유는 아들이 무능해서도 아니고 어머니가 요리를 못해서도 아니다. 닭볶음탕은 훌륭하고 홍어삼합은 재료 공수 과정에 문제가 있지만 나쁜 음식은 아니다. <골목식당>의 논리대로라면 ‘번잡한 메뉴판’과 ‘상권의 한계’가 문제다.
백종원은 유독 이 집에 대해 ‘장사 솔루션’이 아니라 ‘인생 솔루션’을 전개한다. 그는 요리와 가게 운영보다 바른 인간이 되는 법, 근면한 인간이 되는 법을 열심히 설파하는데, 타 가게에서 메뉴 가짓수를 조절하고 음식량을 조절하는 등 실무적 업종 측면의 조언을 건네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못난 아들을 훈계하는 아버지 백종원, 그 옆에서 고개를 숙이며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어머니,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들. 문득 나는 그들이 가부장제 아래의 어떤 흔한 훈계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광경은 나에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왠지 모르게 괴로운 마음에 다시 보기 클립을 꺼버렸다.
백종원의 태도가 잘못이라 말하고 싶진 않다. 홍탁집 아들의 게으름을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미디어가 전시하는 그 수직적 질서와 엄격한 분위기에, 잠시 숨이 턱 막혔을 뿐이다. 이젠 홍어삼합을 즐길 때마다 쿰쿰한 홍어 향과 더불어 <골목식당>의 갑갑한 그 장면이 떠오르게 되면 어떡하나. 저런 아버지가 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