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벨벳은 루키가 아니다.
파격을 브랜드화시킨 SM은 2016년 SMSTATION 플랫폼으로 이를 확대 재생산했다. 이제 아티스트들은 부담 큰 모험이나 새로운 시도, 일탈, 노선 변경을 할 필요가 없다. '현상 유지',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간혹 초심을 찾아가며', '만족을 주는 것'. 이런 코드로 샤이니는 그들의 근간인 1980년대 뉴 잭 스윙을 따라갔고, NCT는 SMP를 다시 실험하며 소녀시대와 그 솔로는 태티서로 만든 팝 R&B를 따라간다.
레드벨벳도 그렇게 하겠다는 뜻을 'Russian Roulette'에서 살짝 내비친 바 있다. 데뷔 때부터 팀의 상징이었던 콘셉트 나누기는 < The Velvet >까지만 하겠다. 둘 다 합쳐서, 보여주던 대로, 하던 대로, 사랑받던 대로 잘 보여줘야지... 단순한 구조에 섬찟한 상징의 뮤직비디오로 - 그러나 약간의 미련도 남아있던 - 성공한 이 싱글로 레드 벨벳이 가야 할 길도 정해진 셈이 되었다. 인공적 21세기 동화 속 이야기와 소녀 시리즈, 일탈과 현실을 오가지만 팝 기류에 가장 가까운 멜로디.
이런 '자체 클리셰'들을 탈피하려는 전략인지 'Rookie'는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는 법을 택했다. '해피니스~'로부터 출발한, 발랄하고 행복한 소녀들의 고민을 담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과거였다면 굉장히 신선한 시도였겠으나 이미 SM은 소녀시대의 'I got a boy', 에프엑스, 그리고 레드 벨벳의 데뷔곡 '행복'을 통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팬들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듯한' 트랙의 내성을 만들어왔다. '가사가 많아서 힘들다'는 아이린의 말처럼, 이렇게 쉴 틈 없이 하이 톤의 발랄한 랩을 불러야 했던 적은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친구 내게 달려와서 팔짱 끼고 웃어주니 좋고' 시절 '행복(Happiness)' 이후 거의 처음이다. 전작 'Russian Roulette'가 랩이라고는 없는 미니멀리즘 노래였기에 더욱 비교되는 지점. 어? 그러고 보니 노래 제목도 'Rookie'다. 또 그러고 보니 이 팀은 SM '루키즈'로 활동한 바 있다.
대신에 'Dumb dumb'의 뮤직비디오부터 밀던 기계 같은 인공 감은 리얼 세션을 적극 활용한 인간 감으로 많이 상쇄됐다. 언뜻 퍼렐 윌리엄스의 'Happy'도 연상되는 이 구조는 혼 세션과 박수, 펑크 (Funk) 기타 리듬의 비트를 기초로 하는데, 곡 초반에 짤막하게 흘러나오는 프로듀싱 팀 The Col leagues가 주로 힙합을 바탕으로 하는 블랙-아메리칸 듀오라는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간 곡을 쓰는 데는 SM 송 캠프 바탕의 북유럽 작곡가들을 일관되게 기용하면서 프로듀서들 또한 런던 노이즈, 안드레아스 오버그 등 일렉트로닉-북유럽 감성으로 채워 넣던 과거와 비교하면 확실히 주목할 만한 변화기도 하다. 이 역시 '행복'으로의 회귀라는 데 빼박 캔트 증거가 되는데 이 곡의 프로듀서로 N.E.R.D의 채드 스미스가 주목받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장황하게 여러 말을 했지만 결국 반복되는 건 처음이다. 지루해졌다 싶으니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는 전략. 그런데 그 처음이 4년 전이고 '좋은 멜로디에 집중한' 덕에 많이 희석된 SM의 노골적 실험 정신을 들춘다는 데서 있는 아이디어를 다시 갖다 쓰는 건 굉장히 새로워 보일 법한 전략일 수 있다. 유행이 돌고 돌아 60년대 빈티지가 하이엔드가 되듯. 'Mickey'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루키 루키' 속에서도 완전히 곡이 붕 뜨는 걸 막는 안정적인 멜로디 라인이 있기에 버틸 수 있다. 슬기의 꿀보이스가 신의 한 수. 원래 레드 벨벳 이미지가 그리 심각하거나 진지한,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출발한 것도 아니긴 했다.
그러나 '있던 걸 가져다 쓴다'는 건 치명적인 결함이다. 레드 벨벳은 더 이상 'Rookie'가 아닌 4년 차 걸그룹이고, 이미 수많은 과거의 유산을 끌어다 쓴 기틀을 만든 그룹이다. 언제나 혁신적일 수는 없지만, 최근 SM의 음악 전략이 새로움을 만들어낸다기보단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필요 부분을 발췌해서 콜라주 해놓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다. 'Automatic', '7월 7일'의 섬세함도 갖추고 싶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꿈은 일부 수록곡('Little little')들에 맡겨놓기로 했고, 레드 벨벳이라는 팀은 통통 튀고 행복을 찾아가는 21세기 인공지능-빨간 모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재생산만으로도 씬을 앞서나갈 수 있지만, 그만큼 성취가 따라온다고 말하긴 어려운 요즘의 SM이다. 레드 벨벳뿐 아니라 모든 SM 아티스트들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이제 이들에게 뭔가를 더 기대할 수 있을까? 다채로워진 과거 문법이 혁신과 참신함의 영역을 넘볼 수 있을까? 슈퍼 루키가 되고 싶은 레드 벨벳은 이미 보여준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