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헌 Mar 01. 2017

러블리즈 WOW

러블리즈는 아련한 2차원


2차원 사랑이라니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발상이니! 


데스티니로 촉발된 러블리즈의 3부작을 세 단어로 요약하자면 '사랑, 소름, 뽕(...)'이 되겠다. 태양계 운동으로 닿을 수 없는 사랑의 아련함을 설명하더니 'wow'는 '사랑은 이상한 2차원'이라며 짝사랑의 안절부절을 풀어냈다. 일상 소재의 뭔 소린가 싶다가 뒤통수 치는 전략인데 가사 하나만 보면 만만한 수준은 아니다. 가사 쓰는 전간디 씨가 헤매던 러블리즈에게 미스터리 소녀 러브라는 유일무이 콘셉트를 안겨준 것이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니 'wow'의 모든 장치 또한 전작처럼 의도된 것이다. 가볍게 주제를 환기시키는 'wow'인트로가 지나면 '한쪽 눈은 감았지만 윙크는 아니라고요!'의 짧은 파트가 등장하는데, 이 몇 초 안 되는 구간은 우리에게 오만가지 상상을 다 하게 만든다.


 "너랑 가까워지고 싶어! 비현실적이고 싶어! 그래서 너한테 윙크한 거야! 근데 오해하진 마 흥... 눈에 뭐가 들어간 거니까! 다가오지 마 아직 준비가 안됐어 넘 설렌단 말이야 나도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설명할 수가 없...어..으아아ㅏㅏㅏㅏ"


 한쪽 눈으로 보는 세상은 가까운 게 선명해져 거리감이 줄어들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3차원의 세 가지 축 중 하나가 사라져 평면으로 사라져 버리는 셈인데, 짝사랑하는 그 애와 대책 없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준비되지 않은 소녀들에겐 수줍은 일이다. 내가 널 좋아한다는 걸 너도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나는 2차원 세계의 종이 인형처럼 수줍고 먼 존재라 너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은 것. 


여기서 부족한 설명은 후렴부 '사랑은 2차원'으로 바로 힌트를 준다. 2차원은 한 평면 상 직선 관계다. 멀어지거나 가까워지거나 둘 중 하나인 세상. 이 간단한 구조가 계속되고 마지막 브릿지를 통해 한 장 한 장 접어 차원을 넘어가고 싶은, 뮤직비디오처럼 평면을 넘어 3차원 세계로 넘어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은은한 전체 아우라를 마무리짓는다. 귀여운 '쟤 이뻐' '얘 이뻐'는 덤.


이 곡이 'Destiny'보다 비범한 건 가사를 줄이고 구조를 단순화한 덕이다. 전작은 시작부터 답을 주고 그 해설이 구구절절인지라 집중력 면에서 취약했고 정해진 해석의 틀이 있었다. 'WOW'는 보다 자유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명쾌한 해답 대신 대명제 2차원 정도만 넌지시 준다. 때문에 우리는 이 뽕짝스러운, 3분이 조금 넘는 평이한 구조의 노래를 계속 찾아 듣고 반복 재생하며 분석하게 된다. 




흔해 빠진 청순 걸 그룹 시장 틈에서 이들은 미스터리와 거대한 함의, 비유를 통한 감정선 극대화로 돌파구를 찾았다. 사실 이 전략은 1990년대 과거의 문법에 손을 빌리기도 했고 듣는 데 노력을 요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뒤에 있는 윤상 아저씨와 작곡 팀 원피스(1 Piece)가 어느 정도의 바탕은 만들어준다. 하지만 좀 더 세련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뽕을 고집하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다. 1980년대 펑크(Funk)로 출발해서 정직한 신스팝으로 엮은 바탕은 좋은데 멜로디 라인이 너무 구식이다. 아무리 의미 있는 콘셉트 전환이니 뭐니 해도 'Destiny'가 큰 힘써보지 못한 건 너무도 옛것이라 오히려 의심스러웠던 '너는 내 데스티니~'의 충격 때문이었다. 'WOW!' 역시 선전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아마 이는 '윤상의 새로운 페르소나'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러블리즈는 독특한 세계관으로도 보다 멀리 알려지지 못하고, 좀 더 비범할 수 있는 기회를 자꾸 놓쳐버리게 된다. 'WOW'가 어쩐지 슬프게 들리는 건 이 노래 가사가 무관심한 대중에게 다가가려 하는 러블리즈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특별한 2차원 세계, 근데 사람들은 쟤가 이쁘고 얘가 이쁘고... 너의 손을 나도. 잡아보고 싶은데. 쟤 이뻐? 얘 이뻐? 난 안 이뻐?

매거진의 이전글 레드 벨벳 'Rooki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