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데이의 추억
수능 끝나고 종로 어딘가에서 논술 치러 올라온 친구와 밥을 먹었다. 당시 서울이라 하면 종로 인사동 어딘가 쯤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리에선 걸스데이의 '나를 잊지 마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감탄했다. '서울은 걸스데이 노래도 나오는구나! 걸스데이도 이제 거리에서 노래 나올 정도는 됐구나!(...)'.
걸스데이는 '갸우뚱'이라는 시대를 앞서갔다고 (믿고 싶은) 데뷔 곡 때문에 시작부터 꼬였고 이후 하는 것마다 망했다. 2010년 데뷔한 그룹이 1년을 거의 쉬었고 나미의 '빙글빙글'을 샘플링(?)한 '반짝반짝'으로부터 그나마 회생의 기회가 생겼다. 당시 마이너 한 걸 그룹을 발굴(...)해내던 나와 그 친구에게 걸스데이는 떴으면 좋겠는데 가망은 없는 그런 류의 걸 그룹이었다.
귀엽고 아련하고 뭐 그런 기타 등등으로 성공하길 바랬던 염원은 결국 4인조 걸스데이가 되고 멜빵 춤 '기대해'가 대박을 치면서 끝나버렸다. 그땐 걸스데이가 성공하든 말든 마음부터가 빠르게 식어버린 뒤였다. 원래 수능 끝난 고3과 전역한 남자들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한 때 삶의 이유라 생각했던 걸 그룹을 잊어버린다. 걸스데이의 첫 정규 앨범 리뷰를 쓰면서도 그랬던 것 같다. 그냥 내가 많이 알고 있으니, 좋아해서 어느 정도는 커리어를 따라갈 수 있으니 선택한 결과였던 것 같다. 그게 내가 처음 '공식적'으로 쓴 앨범 리뷰 중 하나였으니, 내용도 뭐 그저 그랬지.
'Something'으로 정점에 오르고 난 후 이후 더 예쁘고 더 멋진 걸 그룹들이 등장하면서 걸스데이는 구시대(...) 그룹이 되나 싶었지만 '달링' 등으로 꾸준히 인기는 유지했다. '링마벨'이 또 극악의 퀄리티를 보여주면서 망하자 혜리는 연기에 눈을 떴고 나머지 멤버들은 좀 쉬고 싶어 보였다. 걸스데이가 다시 이슈화된 건 그분(...)의 망 때문이었다. 이후 1년 8개월 만에 걸스데이가 돌아온다는 뉴스를 봤을 때 '너무 늦은 건 아닌가...'싶기도 했다. 그때 어느 정도는 느낌이 왔던 것 같다. '여자 대통령'이라는 싼 티 나는 콘셉트라니... 그리고 그게 또 성공했다니...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예상대로 'I'll be yours'는 해왔던 것들을 이리저리 잘 엮어서 현대품으로 가공한 노래라 금세 티가 났다. 차트 성적도 신통치가 않다. 하지만 별 미련은 없을 것이다. 이미 걸스데이는 인기의 정점을 찍어본 그룹이다. 유지만 해도 손해 볼 장사는 아니다. 그런데 7년 차 걸 그룹이 이렇게 빨리 추억 속으로 사라질 법하다고 생각하면 좀 슬프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걸스데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지르고 걸스데이 앨범을 사 본적도 공방을 뛴 적도 없지만 마음속으로 응원은 열심히 했던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잘 됐으면 좋겠다 싶었다. 힘들게 성공한 만큼 더 이상의 모험을 바라는 것도 무리일 수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 지금은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걸 그룹이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그룹이 이렇게 냉대받으니 좀 그렇다.
그럼 노래를 잘 골랐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