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거라 2018년.
“극도로 예민한 사람만이
아주 차갑고 냉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단단한 껍질로 자신을 둘러싸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그 껍질은 총알도 뚫지 못한 만큼 단단해진다.”
- ‘괴테 전기’, 체 게바라’ -
2017년을 마무리하며 ‘2018년은 좀 더 멋지게 살고 싶다’라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2018년은 멋지게 사셨나요? 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다른 느낌은 있다. 2017년의 마지막 3개월은 제대 후 적응 기간으로 어색하고 열심히 하는 척 했던 시기였음이 확실해졌다. 2018년은 2017년보단 나았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의 기운을 받아 달필이 되었다거나 성적을 잘 받았다거나 해서 나았다는 게 아니다. 삶의 질이 괜찮아졌다는 뜻이다. 대책 없이 뭔가 저질러 두고 수습하느라 바빴던 게 작년이라면 올해부턴 그다음을 내다볼 수 있게 됐다. 나름 저축을 했고 뭔가를 부지런히 샀으며 좁은 원룸은 뉴욕의 베트멍 매장처럼 옷이 쌓여만 갔다. 귀찮아서 아무거나 먹었지만, 끼니를 거르진 않았다. 뉴욕은 아니라도 샌프란시스코와 포틀랜드는 가봤다.
한 학기 휴학한 건 좋은 결정이었다. 음악의 길을 따른다고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음원 회사를 선택했다면 큰일 날뻔했다. 디지털 팀 맨 구석 컴퓨터로 많은 것들을 배웠다. 많이 뒤처져있었고 근시안이었는데 어떤 일로 먹고살면서 재미도 챙길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배워둔 게 좋았다. 극도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가는 과정은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서부극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총 대신 아이폰을 들고 다녔을 뿐.
점차 기계적인 하루하루를 살게 됐다. 머릿속에 일과를 그려두고 그대로 따르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어디든 적어두고 어디든 기록하고 어디서든 알림을 받아서 끊임없이 각인되는 과정이 좋았다. 그래서 휴일이 없었다. 노는 날도 없었다. 연중무휴였다. 서울 각지에 위치한 스타벅스 지점과 앤트러사이트 연희동 지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떠돌다가 밥 먹고 떠돌면서 음악 듣고. 하루에 만 걸음이나 걷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던 적도 많다. 하긴 12월 31일에도 한 시간 걸려 도착한 카페에서 이런 글이나 쓰고 있으니 정상은 아니다. 설날이나 추석이나 공휴일이나 무슨 날이나 똑같았다. 미국에서도 좀 비슷할 뻔했다. 포틀랜드 마지막 날에 한국 시차에 맞춰 무슨 글을 넘겼던 기억이 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야구 보고 관광객 모드로 다녔던 그 이틀이 가장 아무것도 안 하고 놀러 다녔던 거의 유일한 날인 것 같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마음속 한쪽에서 두려움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토록 비판했던 평범한 누군가의 심정이 다가왔다. <카우보이의 노래> 마지막 에피소드 속 마차처럼 삶은 멈추지 않았다. ‘관성에서 벗어나기’가 주된 과제였다. 남들과 달라야 해! 같은 강박 정도는 아니었지만, 누군가 한 말을 반복하고 누구나 언급할 수 있는 걸 주장하는 게 싫었다.
원래도 딱히 좋아하는 게 없었는데 지금은 더 심해졌다.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찾아냈다. 최대한 둔감한 척 쓰려 했는데도 다시 읽어보니 온도 차가 꽤 많이 나는 경우가 많다. 고집이 생긴 걸까. 난 다르다는 압박에 짓눌린 걸까. 예민을 과잉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나는 오히려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려 했다.
가끔 2018년의 한국에서 나는 이방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좋다고 하면 되는데 뭐 그렇게 말이 많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고 나만 잘 챙기면 되는데 왜 남까지 생각하냐. 당장 취직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헛수고를 하느냐. 이런 식의 질문과 주장을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소수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소수가 아니라 주류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주류도 아니고 대안도 아니고. 그 중간에서 이리저리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데 잘 모르겠고. 뭐 그랬던 2018년이었다.
20대 삶이 갈수록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과 행복 지수, 수많은 힐링 베스트셀러들이 불쌍한 20대 담론을 강요한다. 그 스트레스를 혐오로 해소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나도 지금 20대가 정말 힘든 세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의 2018년은 재미없긴 했지만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우리 집은 부유하지 않다. 국가장학금 없었으면 학교를 때려치웠을 것이다. 당연히 2년 후 취업이 걱정된다. 잘 논 것도 아니다. 가끔 글에 대한 압박에 속이 좋지 않고 머리도 아프다. 무의식적으로 잘못한 일이 많고 그걸 나중에 깨닫게 되면 아주 괴롭다. 그렇다고 힘들거나 죽고 싶진 않았다. 남을 깎아내리고 혐오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지도 않다. 사회는 자꾸 20대가 힘든 게 그런 소수자들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아마 평생 힘들 것이다.
스무살 이후로 나는 항상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적어도 후대에 이름이 자주 언급될 정도를 소박하게 바랬다(미친). 그러나 2018년은 좀 달랐다. 대단한 사람은 자기가 대단하고 싶어서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 기계적으로 살아나갈 뿐이다. 평가는 타인의 몫이다.
나는 대단하지 않다.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다. 대단한 ~~님으로 구분되는 것이 싫다. 그런 의사소통이 가끔 괴로웠다. 그저 주위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연히 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 커피를 시키며 눈이 마주친 사람, 떨어트린 볼펜을 주워 준 사람, 음식점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 공연장에서 소소한 불만을 얘기하던 사람이고 싶다. 권위로 대해지는 게 싫다.
그런 사람이 음악을 듣고 가끔 글을 쓰고,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읽어보니 재미있더라. 사람이 지루한 것만 고치면 좋겠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좋은 글쟁이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2019년을 넘어 평생의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