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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Feb 15. 2019

검정치마의 <THIRSTY>는 정말 얄궂다.

검게 물든 심장이 입 밖으로 막 나와요.

조휴일에게 더 기대할 건 없어 보였다. 이방인으로의 긴 방황 끝에 달콤하고 낭만적인 로맨스를 노래하던 < TEAM BABY >는 인디 록스타의 기성 선언처럼 들렸고 반항을 포기하는 듯했다. 이렇게 달콤한 말들로 모두를 안심시켜 둔 그는 이제 '검게 물든 심장이 입 밖으로 막 나와요'라며 허기진 욕망의 속내를 끄집어낸다. 황폐한 사랑, 발랄한 그로테스크의 비극이다.

'사랑 3부작'의 두 번째 < THIRSTY >의 세계는 위태롭고 공허하게 꿈틀댄다. 부정한 욕망과 제어할 수 없는 정사 뒤의 외로움으로 몸부림을 친다.


메마른 인트로와 짙은 안개의 갈망을 병치하는 '틀린질문' 뒤에 등장하는 인물은 레스터 번햄으로, 중년의 위기 속 아내를 두고 딸의 친구를 탐한 영화 < 아메리칸 뷰티 >의 주인공이다. 북아일랜드 펑크 밴드 애쉬(Ash)를 연상케 하는 난폭한 기타 노이즈가 질척한 정분을 부추기며 커다란 구멍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라는 비극을 자꾸만 각인한다.

앨범의 기괴함은 역설로부터 온다. < 201 >을 연상케 할 정도로 사운드는 생기가 넘치는데 그 메시지는 허무한 하룻밤과 고독하게 헝클어진 애정이다.


나른한 전작처럼 출발하는 '섬'을 보자. 중간 발랄한 전자음으로 변신을 암시하더니 뜻 모를 읊조림과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경쾌한 모던 록으로 태세를 전환하고 무아지경의 기타 솔로로 절정에 치닫는다. 조휴일의 미덕은 본래 발칙이었다.


검정치마(The Black Skirts) - 섬 (Queen of Diamonds)


조휴일은 정처 없는 발걸음의 이 사내를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뒀다. 이국의 화려한 춤사위와 음악으로 눈과 귀를 멀게 하는 'Bollywood'의 축제는 새벽 길거리의 붉은 네온사인을 닮았다.


'Fling; fig from france'와 닮은 슈게이징 'Put me on drugs'가 선사하는 무아지경의 쾌락을 즐기던 주인공은 '하와이 검은 모래'로 순진한 반려자에게 '내 지은 죄가 너무 무겁네요'라 조용히 흐느낀다. 그마저도 스탠더드 리듬으로 진행되는 곡 후반부 관능의 색소폰이 추가되니 욕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걸 암시한다.

로맨틱한 '맑고 묽게'로 배덕한 관계를 이죽거리며 고백하는 남자는 결국 검은 노이즈의 안개로 뿌옇게 칠해진 '그늘은 그림자로'에서 '이제 우리 다시 나란히 누울 순 없겠지'라며 엉엉 울고 만다. 상처만 남고 황망하게 비어버린 영혼은 최후의 순간에도 '피와 갈증'을 갈구한다.


전작에서 '사랑이 전부'라며 '우리 둘만 남아있다'를 노래하던 그가 '줄은 처음부터 없었네 / 나를 기다릴 줄 알았던 사람은 너 하나였는데 / 이제 난 혼자 남았네'라며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은 처절한 비극의 < THIRSTY >가 선사하는 가장 강력한 카타르시스다.

< TEAM BABY >에서 무난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하던 조휴일은 < THIRSTY >로 사랑이라는 단어 아래의 모멸과 검은 욕망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다. 고결함 아래 꿈틀대는 지독한 외로움과 욕정이라는 이름의 괴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끄집어내 쾌활하고 건조하게 노래하는 모습에서 그가 의도한 '그로테스크'를 목격한다.

아마 그 흉측함이 낯설지 않은 건 그의 파격이 누구에게나 있는 비밀, 부정하려 하나 숨길 수 없는 일상의 검은 한 페이지인 탓일 테다. 천박하고 더럽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를 빌려야만 설명할 수 있는 순간과 감정이 있다.


아, 정말이지, 얄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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