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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Aug 27. 2020

이센스 'The Anecdote' 5년 후

5주년을 맞이한 이방인의 목소리


5년 전을 돌이켜보면 한국 힙합은 양적으로 팽창해나가고 있었으나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래퍼들을 방송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싸늘한 시선으로 출발한 엠넷의 < 쇼미더머니 >는 예상과 달리 빠르게 힙합 신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 일리네어 레코즈, 스윙스 등은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던 ‘힙합 슈퍼스타’의 칭호를 거머쥐었고, 아티스트들은 엔터테인먼트의 달콤한 유혹과 방송 권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지조의 두 갈래 길에 섰다.


후자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으나 대개는 전자가 승리했다. 200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 “수백 배로 증대된 시장에서 힙합 앨범의 판매고는 팔백억에 달해”(화나, ‘그날이 오면’ 중)라 염원하던 래퍼들은 미디어의 수혜 아래 힙합을 유행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들 역시 열악한 환경에서 가사를 쓰고 텅 빈 공연장에서 랩을 뱉으며 치열하게 내일을 향해 싸워가던 이들이었다. 진정성의 가치, 음악에 대한 열의의 잣대 모두 모호하게 적용됐다.



그때쯤 이센스는 오래 몸담았던 소속사 아메바컬처로부터 독립해 솔로 앨범을 준비했다. 그는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2000년대 초부터 활동을 시작한 경력자이자 언더그라운드의 기대주를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슈퍼 루키였고, 동료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ic)과 함께한 슈프림팀(Supreme Team) 활동을 통해 잠시나마 언더그라운드 출신 대중음악 스타로 인기도 끌었다. 그러나 그는 2013년 ‘컨트롤 대란’이라 불리는 거대한 논쟁 속 ‘메이저 래퍼가 신의 4분의 3을 채웠네. 한국 힙합은 반죽음.”이라 선언하며 홀연히 주류를 떠났다.


비스츠 앤 네이티브스, 바나(BANA)가 만들어지고 < The Anecdote >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흘러나왔다. ‘I’m good’ 등 선공개 싱글부터 “한국의 < Illmatic >”이라는 딥플로우 및 관계자들의 극찬까지 앨범은 발매 전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으로 예고되었다. ‘힙합 신 혹은 랩 게임에서 벗어난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아티스트의 고백은 앞서 ‘컨트롤 디스전’으로 불거진 메이저와 마이너의 충돌, 빠르게 상업화되어가는 시장에 상처 받은 팬들의 심리를 정확히 겨냥했다.



< The Anecdote >는 정말로 이방인의 기록이었다. 덴마크 프로듀서 다니엘 ‘오비’ 클라인(Daniel ‘Obi’ Klein)이 담당한 1990년대 이스트코스트 스타일의 비트 위에 창작가의 단편을 가감 없이 거칠게 고백해나갔다.  이미 랩으로는 적수가 없었지만 이 앨범에서 이센스의 랩은 특히 야수와 같았다. 단호하면서도 유연하게 본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풀어냈다. ’Writer’s block’의 고통부터 ‘삐끗’과 ‘Tick tock’의 비판 의식, ‘A-g-e’의 철학까지 앨범은 이센스, 인간 강민호의 일화를 통해 견고한 서사를 형성했다.


특히 ‘The anecdote’의 회고로부터 ‘Back in time’의 성장기를 연결해 정체성을 결정짓는 이센스의 문법은 새로운 유형의 거리두기였다. ‘The anecdote’를 지배하는 비애와 향수가 그때까지 비주류, 언더그라운드를 지배하는 감정이었다면 ‘Back in time’의 담담한 고백은 주류가 아니더라도, 독립의 길을 걷더라도 단단한 자아로 결론지어질 수 있다는 묘한 자신감이 담겨있었다. 이 자전적인 회고야말로 앨범의 가장 주요한 저항의 메시지, 세상에 치켜든 가운뎃손가락이었다.


여기에 한국 가요 역사상 최초의 ‘옥중 앨범’이라는 타이틀이 앨범을 수작에서 명반으로 끌어올렸다. 2014년 말 발매 예정이었던 작품은 이센스가 두 번째 대마초 흡연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으며 이듬해인 2015년 8월 27일 뒤늦게 공개됐다. 아티스트의 사회적 패배는 독립, 저항, 관조, 비관 등 연전연패하던 언더그라운드의 감정을 증폭한 제일의 요소였다. 앨범에 쏟아진 찬사와 상업적 성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는 아티스트의 현실은 미디어 아래 주목받고 그 세를 키워가던 힙합 신의 이면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센스의 메시지는 뭇 대중을 관통하는 보편의 경험이 아니었지만 빠른 주류화와 상업화에 반하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교시 같은 작품이 됐다. 그의 저항은 “양분 없는 황량한 땅”에 비료를 뿌리고 나름의 건강한 땅을 확보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렇게 확보한 영역에서 젊은 아티스트들은 더욱 과격하고 진솔한 메시지를 풀어놓았고 베테랑들은 자극을 통해 본인을 돌아볼 수 있었다. < The Anecdote >는 < 쇼미더머니 >와 엔터테인먼트와 균형을 이루는 일종의 대안 공간이자 구심점이 되었다. 이방인의 언어, 실패의 언어로도 성공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 The Anecdote >를 돌아보며 현재의 시장을 바라본다. 방송과 뉴미디어의 지원 아래 성공한 래퍼들과 아티스트들은 더 이상 상업성이라는 굴레에 자신의 음악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양적으로 성장한 한국 힙합 신은 대중의 관심과 구매력을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채널을 형성해 목소리를 더욱 키우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던져 담대한 질문을 던지고 흐름을 바꿀만한 결정적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수작은 많으나 명작은 드물다.


유행은 잠시지만 이름을 남기려면 기성에 덤벼야 한다. 이센스 ‘일화’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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