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센스의 컴백, 사전 리스닝 파티에서의 묘한 경험.
이방인은 모습을 드러내길 꺼렸다. 그룹을 떠나고 회사를 등지며 공동체에 굴복하지 않겠다 선언한 이센스는 2015년 <The Anecdote> 발매 후 긴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문화와 아티스트, 자본 논리와 연예인 놀이에 관한 굴곡지고 비틀린 견해를 열 개의 트랙에 꽉꽉 눌러 담아 게워냈기에 폭식의 시간은 필수였다. 세상은 <이방인>을 기다리며 호평과 극찬을 쏟아냈으며 어떤 이들은 그 기다림의 시간을 유희의 기호로 소비하기도 했다.
이방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4년 후의 지금이다. 그 시기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오직 이센스 본인과 그 지인들, 그리고 잠시 후 발매될 앨범 <이방인>만이 알 것이다.
선공개 싱글 ‘그 XX 아들같이’와 ‘MTLA’에서 받은 약간의 힌트는 여전한 방황의 논지와 체념의 시각, 음산한 조소였다. 그를 재단하는 시선은 많았으나 그를 이해하는 손길은 여전히 드물었다. 달라진 것 없는 삶에서 이센스는 여전히 ‘이방인’을 꿈꾸는 듯 보였다.
이방인의 모습을 최초 확인할 수 있는 리스닝 파티가 21일 저녁에 열렸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고급 호텔, 카드 키를 찍어야 올라갈 수 있는 꼭대기 층엔 사전 초대받은 사람들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4년 전 마포구 한적한 카페에서 열렸던 <The Anecdote> 쇼케이스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나른한 주말 저녁엔 공짜 칵테일과 공짜 간식이 있었고 음악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안부를 나눴다. 어디에도 반바지 반팔에 화이트삭스 모자를 눌러쓴 내가 앉을자리는 없었다.
커다란 빌딩을 올려다보며 분노를 담던 래퍼의 신보가 그 건물 꼭대기에서 울려 퍼지는 장면은 꽤 묘했다. <이방인>은 역시 비타협적이었고 독했으나 그 속엔 일종의 승리 선언이 있었다.
무의식의 사회 규범을 벗어난 나 같은 인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사회를 난도질하며 연예 산업의 거짓과 기믹을 비틀면서도 그것 자체를 기믹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렸다. 그래서 리스닝 파티 장소가 꼭대기였던 걸지도 모른다.
작품을 거칠게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너희가 원하는 나의 모습,
어느 정도 보여줄게.
단, 저것들과는 다르게.
사실 난 변하지 않았어. 여전히 똑같아.
세상이 날 바라보는 건 꽤 많이 변했더라고.
작품 속 이센스는 내면을 향했던 시선을 밖으로 돌린 듯했다. 집단 속 소수자의 이유 있는 푸념과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그렇게 하얀 스크린 위로 올라가는 메시지를 쫓다 불현듯 창밖을 내다봤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홍대 거리가 습기 찬 공기 아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방인의 기록을 환영하는 고급 호텔의 가장 높은 층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내 모습도 어렴풋이 비쳤다. 이게 흔히 말하는 ‘체제 전복’인 건가. 흥미로우면서도 혼란스러웠다.
<이방인>의 모든 노래가 끝난 후 작품의 주인은 긴장과 흥분이 적당히 섞인 모습으로 초대받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이 같아졌다. 나른한 주말 저녁엔 공짜 칵테일과 공짜 간식이 있었고 음악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안부를 나눴다. 어디에도 반바지 반팔에 화이트삭스 모자를 눌러쓴 내가 앉을자리는 없었다.
이센스는 <이방인>으로 건물을 올리고 싶었던 걸까. 실존의 장소에서 멀어져 고독을 노래하던 래퍼는 <이방인>에서 익숙한 사회 질서, 사고방식을 거부하며 강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순된 구조와 거짓 웃음의 도움 없이도 명작의 칭호를 획득했다는 자신감이다. 그래서 <이방인>에는 자본과 성공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일반적인 발화보다 악 받쳐 내가 하고 만다는 감정에 가깝다.
한국같이 아무 양분 없는 땅에는
건물을 올리기가 너무 좋다.
- 김심야 인터뷰, IZM -
어쨌든 위태로이 홀로 남겨졌던 이센스는 나름의 건물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방인>은 예약 판매 3일 만에 2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며 2019년 한국 힙합 최다 판매량 앨범이 됐다. 서교동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빌딩 맨 위에서 자신의 사상을 공개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가 됐다.
파티가 끝난 후 <이방인>의 주인공은 자리를 채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악수할 기회가 있었다. 약간의 긴장 어린 즐거운 표정의 이센스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조금 어색한 그의 모습에서 이상하게도 왜인지 모를 안도를 느꼈다. 만약 그가 너무 능숙했다면 건물 위 호화로운 풍경 속 찜찜한 괴리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이방인>의 분노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는 소수인가. 아니면 이방인의 곱지 못한 시선을 넓은 아량으로 품어야 하는 또 다른 주류 속 한 명인가. 평론가라는 직책의 무게에 따르면 응당 후자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런 뻔뻔한 자신감을 가질 수 없는 사람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거칠고 소외된 시선, 소수의 반동과 혁명에 확성기를 대는 것이 막연한 꿈이다. 그건 아주 멀고도 험한 길이다. 제도화된 미래의 배불뚝이 내가 <이방인>을 다시 들으며 지난날의 환상을 그리워하는 최악의 그림도 가능하지 않을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시간 동안 나는 수십, 수백 번의 상승과 하강을 상상했다. 그리고 이제 30분만 기다리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어제 함께 브이자를 그리고 웃었던 이방인의 기록을 언어로 옮기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