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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Sep 18. 2020

태민 Never Gonna Dance Again

인정투쟁의 장


앨범 발매를 앞두고 < W >와의 인터뷰를 가진 태민은 “나라는 사람 자체를 아예 속부터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문장으로 근본적 변화의 욕구를 내비쳤다. ‘다시는 춤추지 않으리’라 예고된 제목은 도발적이었고 선공개 싱글 ‘2 KIDS’의 처연한 무드는 ‘시간을 견디며 잊혀져야 할 너와 나’라는 단절과 망각으로 마무리되었다. ‘좋은 음악’, ‘훌륭한 솔로 커리어’ 너머에 도달하고 싶은 열망이 감지된다.


태민의 ‘춤추지 않겠다’는 선언은 아무리 희미할지언정 관절 구석구석에 연결되어있던 하얀 실을 끊어내겠다는 의지다.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유연하게 완급 조절을 펼치는 노래와 춤 모두 온전히 본인의 뜻대로 움직이고 노래하며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한 편의 영화를 콘셉트 삼아 앨범을 기획하고 ‘Criminal’의 뮤직비디오 감독을 직접 섭외하며 BDSM, 젠더리스 디렉팅을 과감히 주도하는 등 태민은 크레디트 곳곳에 본인의 이름을 새기고자 했다. 


야망의 크기를 담듯 < MOVE >와 < WANT >의 절제된 소리 역시 증폭되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코난 그레이의 ‘Maniac’, 위켄드의 ‘Can’t feel my face’가 연상되는 1980년대 무드의 ‘Criminal’은 ‘우아한 손짓 은근한 눈빛’(‘Move’)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망쳐줘’라 갈구하는 태민의 목소리와 퍼포먼스를 긴박하게 요동치는 베이스와 매끄러운 진행을 통해 절정으로 밀고 간다. 지난 타이틀곡처럼 은근하지는 않으나 본격적인 극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타이틀로 제격이다.


TAEMIN 태민 'Criminal' MV


‘Criminal’의 도발 후 1막을 구성하는 여덟 노래들은 효과적인 미장센과 카메라 워킹, 특수 효과로 감독의 지배에 적극 헌신한다. 트랩 비트 위 ‘일식’의 멜로디 라인은 비장한 SMP 스타일이지만 키드 밀리의 퇴폐적인 랩과 태민의 가녀린 줄타기 속 지루할 틈이 많지 않다. 발걸음 소리와 함께 무거운 건반 연주로 시작하는 ‘Strangers’, 우아한 탱고 댄서로 분한 ‘해몽’을 배치하며 격렬한 앞 두 트랙의 숨을 죽인 다음 꿈, 몽환, 각성의 대주제를 이어 연결하는 배치 역시 치밀하다.


앨범은 양면적 자아를 토로하는 번안곡 ‘Famous’를 분기점으로 콘셉츄얼한 전반부와 진솔한 본인의 모습을 찾아가는 잔잔한 후반부로 구분된다. 아이린 슬기의 ‘놀이’가 연상되는 냉정한 모노톤의 댄스 곡과 우울하게 침잠하는 ‘Clockwork’가 분열과 후회의 정서를 소개하면 레트로 무드의 ‘Just me and you’와 ‘Nemo’에 도달한다. 전자는 테임 임팔라의 ‘One more year’에서 들었던 테이프 감는 효과음을 활용한 PBR&B 스타일이고 후자는 박문치가 프로듀싱한 1990년대 풍 알앤비다. 다만 날카로운 앨범 무드를 부드럽게 매만지는 역할, 태민의 팔방미인 보컬 스타일을 강조하는 역할 모두 충실하나 흑백의 전체 톤과는 인상이 사뭇 다르다. 


후반부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이 작품의 음악 요소들이 아티스트의 의지만큼 과감하진 않다는 점이다. 위켄드를 위시하여 라우브, 바지, 코난 그레이 등 팝의 신예 싱어송라이터들의 무드를 바탕으로 런던 노이즈, 언더독스 등 케이팝 신에서 이미 익숙한 팀들이 주조한 트랙들은 곡 자체만으로 기성을 타파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반항하는 태민이 하나하나 이름을 부르고 지휘하면서부터 곡은 새 생명을 얻어 유기적으로 맞물려 들어간다. ‘Criminal’의 묶인 손목과 ‘Nemo’의 가녀림, ‘2 KIDS’의 회한과 ‘Famous’의 갈등 등 곳곳에서 충돌하고 고뇌하는 다양한 재료들을 온전한 본인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지휘하며 특별하게 만든다. 


이로서 태민의 서사가 재능 있는 솔로 퍼포먼스를 넘어 본인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 재편된다. 그는 보여주기 식 콘셉트, 그룹의 일원으로 평범하게 소비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런 춤은 이제 그만 추겠다는 것이다. 물론 작품은 비록 아직 불완전하고 온전한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갈등하며 내가 제일 잘 아는 내 모습과 이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겠다는 뜻이 곳곳에 이글거린다. < Never Gonna Dance Again > 트릴로지의 첫 작품에서 케이팝 시스템 속 회사와 아티스트의 안정된 역할을 뒤집고자 하는 한 개인의 인정투쟁을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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