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헌 Mar 16. 2019

네버랜드를 떠나며,
잭슨은 인간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 논란을 다룬 다큐멘터리 <네버랜드를 떠나며>


한동안 마이클 잭슨의 노래에 손이 가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만든 ‘80년대 에센셜’ 플레이리스트에서 ‘빌리 진’을 삭제하고, 유튜브 추천 영상에 ‘Rock with you’ 뮤직비디오가 뜨면 손가락을 들어 옆으로 넘겨버렸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많이 들어 두자’는 생각으로 몇 곡 찾아 듣다가도 이내 다른 노래를 찾게 된다.



다큐멘터리 <네버랜드를 떠나며(Leaving Neverland)>를 접한 후 생긴 변화다. 지난 1월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어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현지 시각 3월 4일 미국 HBO와 영국 채널4를 통해 안방으로도 생중계된 이 영화는 ‘팝의 황제’에게 집요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제임스 세이프척, 웨이드 롭슨의 증언을 담았다.

아이 시절 마이클을 만나 그의 대저택 ‘네버랜드 랜치’에 머물렀던 이들은 집요하고 치밀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진행된 성추행의 고통을 담담히 털어놓는다. 마이클은 본인의 행동을 ‘사랑’이라 설명했고 아이들 역시 그 일련의 행위를 사랑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세이프척과 롭슨을 제외하고도 많은 15세 미만 백인 소년들이 마이클에 의해 길들여졌고(그루밍), 그들은 성추행이라는 행위를 인지하기 전에 성추행의 피해자가 됐다.

당연히 마이클의 유족들은 이 사실을 부인하며 HBO를 고소했고, 증언자 세이프척과 롭슨을 ‘고인에게 공적 린치를 가했다’며 비판했다. 전 세계 팬들 역시 마이클의 결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네버랜드를 떠나며> 이후의 세계는 결코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을 위대한 음악가이자 위대한 인간으로 칭송했던 시절 말이다.



대중문화를 다루는 이들에게 마이클 잭슨은 영웅이다. 1964년 형제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의 9살짜리 리드 보컬로 데뷔한 그는 향후 30여 년 간 범접할 수 없는 업적을 쌓아 올렸다. 문워크 댄스, ‘스릴러’의 뮤직비디오, ‘힐 더 월드(Heal the world)’의 세계 평화, 아프로 아메리칸의 지위 상승 모두가 마이클 잭슨이라는 브랜드 아래 놓여 있다.

음악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그 위대함이 배가된다. 마이클 잭슨의 커리어를 모르고 대중음악을 논한다는 건 자격 미달일 뿐 아니라 직무 태만이다. 그는 당연히 대단한 뮤지션이고 칭송받아 마땅한 업적을 세웠다.

<네버랜드를 떠나며>는 이런 마이클의 유산을 폄하하지 않기에 잔인하다. 영화는 피해자들의 담담한 증언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고 또 믿어온 ‘팝의 전설’을 해체하고, 우리가 마주하지 않았던 이면을 자꾸만 끄집어낸다. 1993년 소년 조던 챈들러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당했을 때 한화 300억으로 합의를 보고, 2003년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과 살기(Living With Michael Jackson)>에서 ‘아이들과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라 말한 마이클의 모습을 말이다.

대중은 천진한 마이클 잭슨을 ‘순수한 영혼의 천재’로 인식했다. 이미 우리는 거대한 네버랜드 랜치에서 수많은 소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은 침대에서 밤을 보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마이클 잭슨이었기에 이런 행위는 ‘아이들의 동심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자신의 힘을 통해 아이들의 꿈을 도우려는’ 선한 의도로 믿어져 왔다. 영화는 그 믿음에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어린 시절이 없었다. 스타를 만들겠다는 아버지 조 잭슨의 ‘훈련’은 네 달째 마이클이 감내하기엔 너무도 고된 일이었다. 말이 좋아 훈련이지 사실상 학대였고 폭력이었다. 마이클은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벨트로 구타를 당했다. 때문에 그는 경험하지 못한 어린 시절에 집착했고 네버랜드 랜치를 거대한 어린이 테마 파크로 꾸민 다음 수많은 소년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금까지 이런 마이클 잭슨의 행동을 애정과 동심으로 이해해온 우리의 믿음에 균열을 가했다. 영국 맨체스터 축구 박물관은 마이클 잭슨 동상을 철거했고, 미 방송사 폭스(FOX)는 간판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마이클 잭슨 에피소드를 삭제했다. 영국 BBC 라디오 2 채널은 2월 23일 이후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송출하지 않고 있으며,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등 다양한 국가 라디오 방송 역시 뒤를 따랐다. 인기 스타 드레이크도 마이클 잭슨의 보컬이 들어간 노래 ‘Don’t matter to me’를 2019 공연 셋 리스트에서 삭제했다.



마이클 잭슨은 마법의 주문을 외웠고,
<네버랜드를 떠나며>는 이를 깨트렸다.
- 뉴욕타임스 -


마이클 잭슨의 업적은 폄하될 수 없다. 아동 성추행 혐의가 사실이라 해도 그가 대중문화의 흐름을 바꿔놓은 위대한 음악가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마이클 잭슨은 신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혼탁한 인간 세계에 고통스러워하던 순수한 영혼, 평화와 아이들을 사랑하던 자상한 영웅으로 기억한다.
 
<네버랜드를 떠나며> 이후 좀체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들을 마음이 나지 않았던 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알려하지 않았던, 음악의 빛으로 그림자를 가려왔던 지난날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는 팝의 황제고 위대한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무결한 존재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혼란스럽고 슬프지만 인정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 영화 전성시대 : <보헤미안 랩소디>를 이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