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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un 10. 2019

성공적인 랑데부,
베이스먼트 잭스

6월 8일 헨즈 클럽, 베이스먼트 잭스 디제이 셋 스케치


베이스먼트 잭스는 꽤 많이 한국을 찾았다. 첫 내한이 2007년 강남의 클럽 매스(Mass)에서였으니 어느덧 10년도 훌쩍 넘은 과거다. 이후 리츠 칼튼 호텔 1층에 존재했던 에덴(Eden)에 방문하는 등 클럽 DJ 셋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들의 공연은 2009년 지산 록 페스티벌, 2012년 서울 슈퍼소닉 페스티벌과 2015년 서울 재즈 페스티벌 같은 거대한 무대로 집중됐다. 그리고 6월 9일 새벽, 한국 공연으로는 4년 만이자 클럽 공연으로는 9년 만에 홍대 헨즈(The Henz Club)로 돌아온 베이스먼트 잭스를 만났다.

원래 취재 목적의 공연은 마냥 즐길 수 없다. 아티스트의 라이브 컨디션과 그날 퍼포먼스는 물론, 공연 도중의 여러 포인트와 관객 호응 등 신경 쓸 부분이 많다. 베이스먼트 잭스처럼 큰 무대와 소규모 클럽 공연을 병행하는 팀의 경우는 라이브 셋과 DJ 셋의 차별점과 특색, 그 날의 컨디션까지 다양하게 관찰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다수의 페스티벌을 통해 멋진 DJ 셋,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바 있는 이 베테랑 팀을 보러 가는 길엔 그런 우려 따윈 없었다. 흥겹고, 신나고, 즐거운 시간만을 기대했을 뿐이다.


하이파이브도 할 수 있었는데. 주저하지 말자.


DJ FFAN과 코난(Conan)의 웜업(Warm-up) 셋이 끝날 때쯤 수수한 차림의 사이먼 래트클리프(Simon Ratcliffe)와 화려한 전통 문양 티셔츠를 입은 펠릭스 벅스턴(Felix Buxton)이 자리에 섰다. '당신 그대로 존재해줘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이 영어와 한국어 번역으로 어지럽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내 클럽을 가득 메운 팬들은 한목소리로 오프닝 멜로디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 하울의 움직이는 성 > OST '인생의 회전목마'의 하우스 버전이었다.

베이스먼트 잭스의 메들리는 좁은 홍대 앞 클럽에 세계를 풀어놓았다. 1990년대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라틴펑크(Funk)가 흘러나오는 빈티지한 클럽, 광활한 평지의 레이브 파티, 도회적인 테크노 클럽이 차례대로 흘러나왔다. 끊김 없는 애시드 하우스와 정글의 베이스와 드럼 그루브 위 'Rendez-vu'의 희미한 기타 리프가 기시감의 흥을 돋웠고, 최근 발표한 톰 스타(Tom Starr)와 크라이더(Kryder)의 리믹스 버전 'Bingo bango'가 라틴 브라스의 정열을 가져왔다.

이들은 정글 위주의 셋이 이어질 때는 '정글로 들어와', 그루브 전환 시에는 '우리는 하나다' 등 번역 투 한글 문장을 재생하며 소소한 센스로 즐거움을 더했다. 정글 다음으로 정밀한 테크노와 애시드 하우스를 배치하며 장내를 무아지경에 빠트리는 것 역시 고수의 내공이었다. 사이먼과 펠릭스는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를 원시적인 퍼커션 리듬과 함께 버무려 합창을 유도한 다음, 드디어 '따라 부를 수 있는' 대표곡 'Where's your head at'을 재생했다. 그야말로 뛰고 놀고, 소리 지르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이 남았다.


'Everybody get into the Rave!'


웨얼-즈 유얼 헤드 앗 웰 죨 헷 앗


선동의 메시지 아래 듀오는 고전적 하우스, 애시드 하우스, 펑크(Funk), 디스코, 정글, 테크노, 힙합을 마구 분출했다. 앞서 언급한 차일디시 감비노도 그렇고, 휘트니 휴스턴의 'I wanna dance with somebody'의 보컬 파트만 따서 애시드 하우스 비트와 섞은 것도 근사했다. 그 와중 귀에 익은 베이스 리듬이 들려왔다. 변형 없는 오리지널이었다. 페기 구의 'Starry night'을 베이스먼트 잭스가 플레이하다니. 경박한 표현이지만, 이 순간 격하게 차올랐던 '국뽕'을 부정하지 않겠다.

모두가 손을 높이 들고 'Do your thing'을 외친 이후, 더욱 거친 레이브 파티 튠이 마지막 에너지까지 모두 뽑아내겠다는 듯 온몸을 강타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래 기다린 'Romeo'와 'Raindrops'와 함께 사이먼과 펠릭스가 팬들에게 마무리의 인사를 건넸다. 낭만적이던 '인생의 회전목마'와 수미상관을 맞추려는 듯 마무리 트랙 역시 주디 콜린스의 'Over the rainbow'였다. 그렇게 그들은 헨즈 클럽을 잠시나마 < 오즈의 마법사 > 속 아름다운 오즈의 나라로 바꿔놓은 후, '감사합니다' 인사와 함께 마법의 일렉트로닉 세상으로 사라져 갔다.


나도 셀카 찍을걸.


올해는 베이스먼트 잭스가 영민한 데뷔작 < Remedy >를 발표한 지 정확히 2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일까. 얇은 펜스 하나를 두고 시선을 맞추던 그들의 모습에서 기시감과 미시감을 동시에 느꼈다. 익숙한 기시감은 나의 사춘기 시절 '내적 흥분'을 가라앉혀 준 그들의 마법 같은 리듬을 다시 한번 듣고 있다는 흥분에서 왔고, 낯선 미시감의 경우는 분명 페스티벌 무대로 접한 팀임에도 가까이서 보는 그들의 모습이 꽤 달랐다는 데서 왔다.

물론 이 두 감정의 융합이 그야말로 짜릿한 하룻밤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베이스먼트 잭스와의 이번 '랑데부'는 만족, 대만족이었다. 6월의 어지러운 주말 홍대의 밤, 그 거리에서 나는 과거의 꿈과 현재의 추억을 음악으로 목격하고 경험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왔더라면.


사이먼과 펠릭스. 분위기를 주도한 건 펠릭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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