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Old Town Road’
카우보이 래퍼가 음악 시장을 점령했다. 4월 13일 이래로 현재까지 빌보드 싱글차트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노래 'Old town road'의 주인공, 1999년생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다. 현재 정상에 올라있는 버전은 유명 컨트리 가수이자 팝스타 마일리 사일러스의 아버지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e Cyrus)와의 리믹스로, 4월 20일 1억 4300만 회의 역다 최다 스트리밍 횟수 기록을 세우며 지금까지 장기 집권을 이어나가고 있다.
릴 나스 엑스는 '준비된 신인'이다. 그런데 그 준비 과정은 음악보다 SNS 활동이었다. 그는 페이스북과 바인(Vine)에 짧은 영상을 올리고, 래퍼 니키 미나즈의 트위터 팬 계정을 운영하던 인터넷 스타였다. 2018년 12월 음원 공유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에 'Old town road'를 업로드하기 전까지, 릴 나스 엑스는 소셜 미디어를 능숙히 다루고 인터넷 문화를 잘 이해하는 수많은 '인싸' 중 한 사람이었다. 원래 그가 유명했던 것은 래퍼 니키 미나즈의 트위터 팬 계정을 운영하면서였고, 여기서도 니키 미나즈의 영상을 이용해 '밈'을 제작하는 것이 그의 장기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5초짜리 영상 애플리케이션 틱톡(TikTok)이 있었다.
텔레비전 및 유튜브 광고로 대중에게 익숙한 틱톡은 중국의 바이트댄스(ByteDance)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사용자들은 15초 가량의 배경 음악 위 다양한 효과와 필터가 들어간 영상을 찍어 공개하고 공유한다. 중국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틱톡은 2017년 미국의 유사한 플랫폼 뮤지컬리(musical.ly)를 인수하며 거대한 규모로 다시 태어났다. 틱톡의 2018년 광고 수입은 약 1조 6500억원, 기업 가치는 85조원 이상으로 세계 최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기업)에 해당한다.
이 15초 동안 사람들은 춤을 추고 립싱크를 하는 것은 물론, 상상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공간과 상황에서 정해진 노래를 따라 본인만의 고유한 퍼포먼스를 업로드한다. 틱톡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이른바 '밈(Meme)'이라 불리는 인터넷 상 유행이 기존 SNS -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 대신 틱톡을 통해 확산,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영상의 배경이 되는 음악과 음악 산업, 차트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스타를 낳고 있다.
릴 나스 엑스는 이미 틱톡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그는 형제 듀오 래 스레머드(Rae Sremmurd)의 'Black beatles'가 마케팅 전략에 맞춰 모든 '마네킹 챌린지(#mannequinchallenge)를 점령했고, 이내 시장의 스테디셀러로 등극하는 것을 목격했다. 'Hotline bling'의 밈 장인, 드레이크의 'In my feelings'가 틱톡 '인마이필링스 챌린지(#inmyfeelingschallenge)' 유행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를 점령하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무명의 래퍼 아이러브프라이데이(iLOVEFRiDAY)의 포르노 배우 디스곡, 'Mia Khalifa'가 틱톡에서 '히트 오어 미스 챌린지(#HitorMissChallenge)'로 유명해져 스포티파이 바이럴 차트(Viral Chart) 정상에 오른 것도 숙지한 상태였다. 릴 나스 엑스는 밈을 의도한 가사를 썼고 신곡을 공개하고 난 후에는 본인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자신의 노래를 밈으로 만들어 확산, 배포했다.
그가 'Old town road'를 틱톡에 등록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이햐 챌린지(#yeehawchallenge)'라는 이름의 유행이 생겼다. 차분한 복장의 사용자들이 가볍게 몸을 흔들다, 힙합 비트에 맞춰 카우보이 복장을 입고 춤을 추는 영상이 급속히 퍼져나갔다. 카우보이에 주목하는 '이햐' 담론은 2018년 말부터 미국 사회에 알음알음 만들어지던 밈이었지만, 릴 나스 엑스의 등장은 이 유행에 불을 붙여 엄청난 확산을 불렀고 새 시대의 놀이 문화를 만들었다. 2018년 12월 빌보드 싱글 차트 83위에 오르고 나자 모두가 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며, 차트 정상으로의 길을 안내했다.
스마트폰이 보편 보급되고 여러 디지털 플랫폼이 일상화 된 2010년대 들어 이와 같은 '바이럴(Viral : 소비자 소문을 활용하는 마케팅 용어)' 곡들이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필라델피아 출신 DJ 바우어의 'Harlem shake'는 평범한 일상을 거친 파티로 전환하는 영상 놀이가 유행하며 빌보드 1위에 올랐다.우리에게 친숙한 '강남스타일'도 '말춤'의 대대적인 유행과 SNS 인증, 정해진 장소에서 단체로 춤을 추는 플래시몹(Flash Mob)을 통해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릴 나스 엑스의 성공은 유튜브, 스냅챗 등을 거쳐 이제 틱톡이 '밈'을 만들어내는 제일의 소셜 미디어가 되었음을 상징하는 순간이다. 올해 1월에는 아동 교육용 애플리케이션 스마트스터디의 브랜드 핑크퐁의 동요 '상어 가족'이 빌보드 싱글 차트 32위에 오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인기의 비결도 역시 틱톡을 중심으로 촉발된 '베이비 샤크 챌린지(#babysharkchallenge)'였다. 6월 11일 기준으로 '상어 가족'의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총 28억회를 넘는다.
틱톡과 바이럴의 영향력은 지금까지 대중음악의 역사 속 영상, 소비자의 소통과는 사뭇 다르다. '보는 음악'의 시대는 이미 40여년 전 1980년 케이블 채널 MTV의 개국과 함께 시작됐다. 그러나 그 시기의 음악 소비자들은 음반사와 방송사로부터 수직적으로 콘텐츠를 제공받는 입장이었다.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의 유행과 비주얼 충격이 쏟아졌고, 대중은 이를 영화와 VHS 비디오 등으로 접했을 뿐 창작자와 산업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이에 반해 바이럴 시대의 소비자들은 능동적이다. 그들에게 음악은 디지털 시대의 놀이 문화에 유용한 재료이자, 자신을 표현코자 하는 기호로 존재한다. 듣고 보는 것을 넘어 활용하고 따라하며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히트하는 음악의 기준은 이제 심미적 해석을 따르지 않는다. 취향을 너르게 만족시킬 수 있는 안정성과 확장 용이 간결의 보편성, 개인 콘텐츠 제작에 유용한 확장성을 갖춘 음악이 이 시대의 히트곡이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빌보드 차트를 훑다 보면 릴 나스 엑스와 같은 생소한 아티스트들이 높은 순위에 올라있는 것을 자주 발견한다. '왜 이 곡 순위가 이렇게 높지?'라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이제는 음악 내부적 요소보다 외부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곡에만 좌우되지 않는 새 시대의 음악 소비는 오랜 시간 공고했던 빌보드 차트의 권위를 허물고 전문가들에게 새로운 이해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젊은 창작가들이 소비자 입장에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 홍보, 히트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