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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un 26. 2019

2019년은 록 페스티벌 종말의 해?

펜타포트, 지산, 부산. 한국을 대표하는 장수 페스티벌들을 둘러싼 구설수


2019년은 ‘록 페스티벌의 종말’의 해가 될 것인가.


몇 년 전부터 음악 팬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돌던 이야기긴 하다. 힙합과 EDM에 밀려 록은 주류 시장에서 내려왔고, 대형 일렉트로닉 페스티벌과 도심 속 다양한 장르의 음악 페스티벌은 록의 공간을 급속히 대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예전만 못한 헤드라이너의 무게감과 지지부진한 운영도 불안을 부추겼다. 그럼에도 페스티벌 수는 늘어갔고, 유명한 대형 축제가 멈추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모두가 진지하게 ‘록페’의 종말을 논하고 있다. 페스티벌이 본격 시작하는 7월 말이 되기도 전부터 거센 비판과 논란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주최사 선정 과정의 잡음부터 의아한 아티스트 섭외, 터무니없는 티켓 가격과 공지 및 소통의 부재가 연일 기대치를 낮추고 있다. 중소 규모의 페스티벌도 아닌,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록 페스티벌이라 할 수 있는 펜타포트, 지산, 부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부터 살펴보자. 인천관광공사는 올해 3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과 공연기획사 예스컴(YESCom)과의 계약 기간이 끝나자 공개 입찰을 통해 경기일보를 운영사로 지정했다. 그런데 두 달 후 입찰 절차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후문이 드러났다. 공모에 참여한 서울의 한 회사가 공모 과정에서 관광공사가 특정 회사에 편의를 제공했고, 또 다른 회사는 독점적으로 확보한 아티스트들을 허락 없이 출연진으로 기재했다며 인천지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협상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지만 아티스트 섭외와 라인업 공지 역시 실망스럽다. 투 도어 시네마 클럽과 위저, 스틸하트 등 한국에 다수 방문한 아티스트들이 다시 무대를 선다. 본래 주관사였던 예스컴이 일본의 유명 밴드 크로스페이스, 엘르가든, 베비메탈을 섭외 중이었다는 사실에 비하면 더욱 초라하고 성의 없는 섭외다. 인천시가 3.1절 100주년을 이유로 일본 밴드 섭외를 거절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국내 라인업과 해외 라인업 공지를 따로 하고 소셜 미디어 계정 공지를 늦게 하는 등 소통의 면에서도 낙제점이다.



2009년 경기도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에서 열렸던 지산 록 페스티벌은 지금도 록 페스티벌의 대명사로 꼽힌다. 대기업 CJ ENM과 지산 리조트 측의 이견으로 밸리 록과 지산 록으로 갈라진 이후 지산에서의 페스티벌은 몇 년 간 명맥이 끊겼는데, 올해 다시금 지산 락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부활을 알렸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기획과 운영 방식은 과연 이들이 페스티벌 문화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갖추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1일권 16만 원의 비싼 가격의 블라인드 티켓을 공지하고도 현재 라인업에 올라온 해외 아티스트는 호주 밴드 킹 기자드 & 더 리저드 위저드(King Gizzard & The Lizard Wizard) 뿐이다. 이후 3일로 예정된 일정을 2일로 축소하더니, 6월 24일에는 블라인드 티켓 구매자들이 무색하게 30% 할인을 공지했다. 타임 테이블 공개는 7월 8일인데 최종 헤드라이너 공지는 7월 15일로, 페스티벌 출연 가수보다 공연 일정이 더 빠르다.



마지막은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이다. 부산광역시에서 무료로 운영해왔던 이 페스티벌은 올해 20주년을 맞이하여 유료화를 선언했다. 첫 헤드라이너로 일렉트로닉 듀오 케미컬 브라더스와 솔로 로커 코트니 바넷을 섭외했고,  뉴 메탈 밴드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을 데려오며 록 팬들의 엄청난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주최 측은 느닷없이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섭외 취소를 알렸다. 프로모터를 사칭하는 국제 사기 집단에게 속아 허위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후 부산록페 측은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첫 유료 페스티벌 운영의 어려움과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의 글을 업로드하며 응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6월 18일, 그들이 공개한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대체 아티스트는 국내 5인조 댄스 그룹 지오디였다. 주최 측은 ‘뮤직 페스티벌이 다소 낯선 부산지역 관람객들을 위해 대중성을 고려한 라인업을 준비했다’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음악 팬들에게 이런 결정은 올해부터 유료화되는 페스티벌 흥행을 위해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훼손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지오디. 어떤 의미로든 역사에 길이 남을 결정이다.


2019 섬머소닉 페스티벌


한국 음악 페스티벌의 혼란은 오래전부터 지적된 문제다. 먼저 장기적 기획의 부재를 손꼽을 수 있다. 1970년부터 시작한 영국의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 1997년부터 지금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록 페스티벌 ‘후지 록 페스티벌’ 등 해외의 음악 페스티벌은 긴 역사와 장기적 기획을 자랑한다. 반면 한국에선 10년 이상 지속된 페스티벌 자체가 드물다. 그마저도 펜타포트와 지산처럼 주관사 변경으로 혼란을 겪고, 부산 록 페스티벌처럼 하루아침에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페스티벌만의 철학과 특색이 실종되고 수익 위주의 운영을 펼칠 수밖에 없다. 자연히 고정된 공연 개최 공간과 일정, 안정적인 아티스트 섭외가 어렵다. 7월 27일과 28일 이틀만 해도 5개의 페스티벌이 겹친다. 싸이의 ‘흠뻑쇼’,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개최되는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 대구에서 개최되는 ‘2019 대구 포크페스티벌’, 지산 락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페스티벌 마니아들은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벌’과 ‘섬머소닉 페스티벌 음악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통해 국내 록 페스티벌을 예측한다. 이 두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아티스트들을 그대로 데려와 세우는 것이 대형 록 페스티벌부터 중소 음악 공연까지 일반화된 관행이다. 그 섭외 과정 역시 페스티벌의 철학이나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개런티 싸움이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던 아티스트들이 서울로, 인천으로, 부산의 무대로 갈라져 공연을 펼친다. 팬들만 손해다.

대형 록 페스티벌의 몰락은 철학보다 수익을 우선으로 움직여온 페스티벌 시장의 민낯이다. 숱한 경고와 우려의 목소리에도 고민 없이 관성대로 움직이던 관계자들의 무능, 장기적 기획 없이 노하우를 전수할 수 없는 단기 기획의 한계가 공연 시작도 전에 마니아들의 실망을 부르고 있다. 록 페스티벌이 망하는 건 록이 망해서가 아니다. 록을 모르고 음악에 관심 없는 게으름, 그리고 아무도 관심을 쏟지 않는 제도 그 자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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