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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ul 04. 2019

음악의 오늘, 글래스톤베리 2019

상징적인 여섯 순간으로 알아보는 2019 대중음악 르포


영국 남부 도시 서머셋에서 펼쳐지는 글래스톤베리 현대 공연 예술 페스티벌 (Glastonbury Festival of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줄여서 글래스톤베리는 세계 최대의 음악 공연으로 손꼽힌다. 1970년 지역 워시 팜(Worthy Farm) 농장주 마이클 이비스가 ‘필튼 페스티벌(Pilton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개최한 글라스톤베리는 매년 평균 15만 명 이상의 음악 팬들을 동원하는 거대 페스티벌이자, 출연자들이 대부분 수익금을 기부하는 비영리 페스티벌로 올해까지 48회 개최된 장수 공연이다. 


특히 현지 시각 6월 26일부터 6월 30일까지 개최된 이번 ‘글래스톤베리 2019’는 오늘날 대중음악의 다채로운 면모와 변화의 순간을 생생히 포착해냈다. 현재에 살아 숨 쉬는 과거 아티스트들과 미래를 이끌 새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뽐낸 이번 글라스톤베리, 그중 인상적인 여섯 장면을 선정해 현재 팝 시장의 시류를 분석해 봤다.


다채로운 장르, 한국 아티스트들의 모습도.



글래스톤베리 2019에는 한국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2014년과 2015년 연속으로 글래스톤베리의 초청을 받아 무대에 섰던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은 올해도 스테이지 중 하나인 ‘푸시 팔루어(Pussy Parlure)’ 무대에 섰다. 토요일에는 실버 헤이스(Silver Hayes) 무대에 디제이 페기 구(Peggy Gou)가 등장했다. 올해 영국의 유명 레코드사 XL과 계약을 체결한 페기 구는 세계 일렉트로닉 씬에서 가장 핫한 신예 중 하나다.


한국 아티스트들 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 다양한 장르로 무장한 아티스트들이 다채로운 공연을 펼쳤다. 스페인의 전통 음악 플라멩코를 팝에 접목한 신예 로살리아(Rosalia), 자메이카가 낳은 세계적인 댄스홀(Dancehall) 래퍼 션 폴(Sean Paul) 등이 ‘글로벌 페스티벌’에 힘을 보탰다.


씬을 이끌 신예 여성 팝 아티스트들의 약진


"Love Yourself"를 설파한 리조(Lizzo)
노르웨이 소녀 시그리드, 그의 공연에 감명받은 소녀 팬


2019년은 신예 여성 팝 아티스트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한 해다. 대표곡 ‘2002’로 국내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앤 마리, 노르웨이가 낳은 두 싱어송라이터 시그리드(Sigrid)와 오로라(Aurora)는 물론 다양한 뮤지션들이 꾸밈없고 개성 있는 퍼포먼스로 기성 팝 문화에 새로운 흐름을 주입하는 중이다. 이번 글래스톤베리는 그 신인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페스티벌이었다.


과감한 누드 앨범 커버를 선보인 미국 아티스트 리조(Lizzo)는 ‘오늘 밤 집에 돌아가서 거울을 보고 이렇게 소리쳐보세요, “사랑해, 넌 아름다워, 넌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요.’라 말하며 감동을 안겼다. 시그리드의 공연 중 감격한 소녀 팬이 오열하며 'Strangers'를 따라 부르는 장면은 올해 글래스톤베리를 상징하는 순간 중 하나였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2001년생 소녀 빌리 아일리시의 무대도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였다. 한국에서도 인기인 ‘bad guy’와 ‘bury a friend’ 등 히트곡을 이어가던 그는 대표곡 ‘Ocean eyes’를 부르기 전 팬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저를 촬영하는 건 좋아요.
하지만 스마트폰 스크린으로 저를 보지 마시고, 직접 눈으로 무대를 봐주세요.
우리는 지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함께하고 있잖아요.


Billie Eilish - bury a friend (Glastonbury 2019)


Lizzo - Juice (Glastonbury 2019)


Sigrid - Strangers (Glastonbury 2019)


마일리 사일러스, 빌리 레이 사이러스, 릴 나스 엑스



가죽 모자와 짙은 스모키 화장으로 무장한 팝스타, 마일리 사이러스는 메탈 밴드 메탈리카(Metallica)와 록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노래를 커버하며 록 스타의 페르소나를 발현했다. 얼마 전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드라마 블랙 미러(Black Mirror) 시즌 5에서 밝은 팝스타 ‘애슐리 오’를 연기한 것과는 전혀 다른, 퇴폐적인 매력을 뽐냈다.


마일리 사이러스의 이런 변신은 그의 아버지가 한 시대를 풍미한 컨트리 가수 빌리 레이 사이러스(Billy Rae Cyrus)인 덕이다. 빌리 레이 사이러스는 빌보드 싱글 차트 13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래퍼 릴 나스 엑스의  노래 ‘Old town road’에 참여하여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마일리의 대표곡 ‘Party in the U.S.A’에 이어 무대에 등장한 릴 나스 엑스는 사이러스 부녀와 함께 ‘Old town road’를 열창했다.


Miley Cyrus - Party In The USA/Old Town Road/Panini (feat. Billy Ray Cyrus & Lil Nas X)


현재진행형 레전드, 감격 귀환한 카일리 미노그



레트로 붐을 타고 지금도 여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레전드들의 무대도 글래스톤베리를 빛냈다. 1980년대를 호령한 자넷 잭슨은 전성기 히트곡 ‘Rhythm nation’에 맞춰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990년대 성공을 거둔 스웨덴 싱어송라이터 네네 체리와 오아시스 갤러거 형제의 동생 리암 갤러거, 지난해 다시금 메인스트림의 주목을 받은 랩 그룹 우 탱 클랜도 음악 팬들의 추억을 되살렸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무대는 호주가 자랑하는 팝스타 카일리 미노그의 첫 글래스톤베리 공연이었다. 2005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그 해 출연을 취소해야 했던 카일리는 14년이 지난 올해 마침내 무대에 서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밴드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 1996년 히트곡 ‘Where the wild roses grow’를 함께한 닉 케이브가 특별 출연해 ‘남반구 여왕’의 글라스톤베리 입성을 함께 환영했다. 


Kylie Minogue - Spinning Around (Glastonbury 2019)


록은 죽지 않는다! 시대의 중재자가 된 킬러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현대 공연 예술’을 표방하지만 음악 팬들 사이에서는 록 페스티벌로 인식되는 경향이 짙다. 올해도 다양한 장르 속 많은 록 밴드들이 등장해 글래스톤베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2019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밴드 더 큐어(The Cure) 같은 베테랑 밴드들은 물론 현세대 팬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는 테임 임팔라, 투 도어 시네마 클럽, 뱀파이어 위켄드 등이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인상적인 순간은 2001년 결성된 미국 밴드 킬러스(The Killers)의 무대였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록 밴드로 특히 영국에서 큰 인기를 누린 킬러스는 글라스톤베리에서 영국의 레전드 팝 듀오 펫 샵 보이즈, 국민 밴드 더 스미스(The Smiths)의 기타리스트 조니 마와 함께 공연하며 바람직한 신구의 조화를 선보였다. 2000년대 초 데뷔한 밴드들이 베테랑이 되어, 록의 과거와 현재를 조율하는 ‘중재자’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한 퍼포먼스였다. 


The Killers - This Charming Man (feat. Johnny Marr) (Glastonbury 2019)


헤드라이너 스톰지, 2019년 영국은 그를 원한다. 



국내에는 덜 알려져 있지만 영국에서도 힙합의 인기가 대단하다. 특히 2000년대 초 영국 고유의 전자 음악과 빈민층의 정서를 더해 탄생한 랩 음악, 그라임(Grime)이 열풍이다. 2017년 브릿 어워드 신인상을 시작으로 이듬해 앨범상과 남성 솔로 아티스트를 석권한 스톰지(Stormzy)가 글래스톤베리 최초의 영국 출신 흑인 남성 솔로 아티스트 헤드라이너로 금요일 무대에 선 장면은, 2019년 영국이 어떤 음악을 원하는지를 상징한 순간이었다.


스톰지는 세계적인 미술가 뱅크시(Banksy)가 디자인한, 영국 국기가 그려진 방검복을 입고 무대를 펼쳤다. 최근 영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 횡행하는 칼부림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의도였다. 1993년생 젊은 아티스트 스톰지는 상징적인 힙합 / 가스펠 무대를 통해 브렉시트와 빈부격차로 신음하는 영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투영했다. 


Stormzy - Crown (Glastonbur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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