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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r 04. 2017

문라이트

달빛은 말이 없다.


< 문라이트>는 과묵한 영화다. 백 마디 말보다 1초의 표정이, 장황한 설명보다 짧은 몇몇 공간의 광경이 훨씬 중요하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미국 마이애미의 아프로-아메리칸을 주제로 한 동화책이다. 한 장 한 장 아름답고, 슬픈, 황홀한, 우울한, 숨이 멎을 듯한 삽화로 채워진 동화. 마법 같은 일상의 장치와 음악, 아우라와 미장센 앞에 말의 힘은 부수적으로만 남게 된다. 그런데 이 얼마 되지 않는 대사조차도 가슴에 남는 한 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보편적 감성이 기적과도 같은 영롱함을 품고 있다는 걸 자꾸만 확인시켜주는 이 영화의 경험은 새롭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익숙하지 않은 흑인 영화인 데다 그 배경과 주요 소재 등 낯섦 투성이인 이 이야기에 곧바로 적응하는 건 쉽지 않다. < 문라이트 >에 적응하기 위해선 많은 마음을 열어야 한다. 미국 교외의 삶, 빈민층의 삶, 그러면서도 유색 인종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게다가 성소수자인, 그런 아이 '리틀(Little)'(알렉스 히버트 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편견과 싸워나가는 길이다. 과묵하고 소심한 꼬마 샤이론의 빛나는 눈을 바라봐준 건 마약상 '후안'(메허샬레하쉬바즈 엘리 분)과 그의 연인 '테레사'(자넬 모네 분), 그리고 말을 걸어와주는 친구 '케빈'(안드레 홀랜드 분)뿐이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리틀이 '샤이론(Chiron)'(애쉬튼 샌더스 분)으로, '블랙(Black)'(트레 반테 로데스 분)으로 성장하는 가장 밑바닥의 바탕이 된다.  



마약과 범죄가 일상인 마이애미의 흑인 동네는 소년이 살아가기에 냉혹한 사회다. 차별이 차별을 낳고, 마약이 중독자를 낳고, 중독자는 삶을 상실하는 이 구역에서 어린 리틀, 그리고 샤이론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한 채 성숙해간다. 사랑받아야 할 때 약에 취해 돈을 뺏던 엄마, 성 정체성을 놓고 고민해야 할 때 Faggot이라 괴롭히던 불량배들,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자아는 자꾸 비뚤어지기만 한다. 이 와중에도 절친 케빈과의 애틋한 관계, 후안이 죽고도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테레사 등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지만, 영화는 그 뒤에 바로 냉혹한 현실을 이어 붙여 인생의 굴곡을 여지없이 투영한다.


시간이 흘러 '블랙'이 된 샤이론. 블랙은 오직 케빈만이 그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그는 저 세상 사람이 된 후안처럼 강하고, 호화로우며, 불안한 삶을 라이터 불꽃에 태우는 마약 딜러가 되었다. 아픈 기억의 마이애미를 벗어나 애틀랜타에서 일을 벌이던 그를 다시 부른 건 반성한 엄마가 아닌, 감옥에서 출소한 케빈이 걸어온 10년 만의 전. 무뚝뚝하게, 별 일 아닌 듯 전화를 받는 블랙이지만 마음의 이끌림을 어찌할 수 없어 요리사가 된 케빈을 찾는다. 


이후 10분 간 이어진 식당 씬은 무어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생생한 체험과 경험으로 우리를 옮겨놓는다. 작은 쿠바 식당, 테이블, 요리, 그리고 음악,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어우러져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이 느낌은 경험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나도, 세월이 지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사람과의 그곳, 그 시간, 그 음악, 그 향기. 이 마법의 공간에서 '블랙'은 비로소  소심한 리틀도, 불완전한 샤이론도, 금니와 큰 차로 본모습을 숨기는 현재 아닌, 온전한 그를 대면한다.



누군가의 인생이 이토록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편견과 겪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문라이트는 매 장면마다, 매 대사마다 우리를 계속해서 시험한다. 만약 여기 나온 사람들이 메허샬레하쉬바드 엘리, 나오미 해리스, 자넬 모네가 아니라 앤드루 가필드, 에이미 아담스, 게리 올드먼이었다면? 만약 배경이 평범한 캘리포니아 백인 중산층 동네였다면? 사춘기 샤이론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는 친구가 여자아이라면? 그러면 이 영화가 낯설지 않을까? 


영화는 따지지 않는다. 조용히 물을 뿐이다. 일상에 충실한 장면들, '달빛을 받으면 흑인들도 푸르게 보인다'는 희곡의 제목, 눈을 뗄 수 없는 강렬한 영상을 통해. 


인간으로 태어나 마땅히 누려야 할 삶조차도 굴곡지고 비뚤어져 제대로 겪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피부색, 인종, 젠더, 사회 계급, 계층. 문라이트는 평범을 비범으로 만드는 도전적 설정과, 그를 납득하게 하는 아름답고도 슬픈 장면들로 인간 가치에 질문을 던진다. '타인의 삶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삶은 얼마나 와 있는가?', '너의 삶은 나의 삶만큼 충분히 주어졌는가?'. 


푸르스름한 달빛 아래의 인생은 아무 말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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