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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r 04. 2017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끝까지 살아가야 하는 것.


자신을 잃어버린 남자가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끔직한 실수를 저질렀고 만회할 기회도 없이 모든 걸 빼앗겼다. 죽으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삶을 끊을 수 없어 영혼 없는 무의미한 일상을 보낸다. 친절하지 못하고 항상 날 서 있는 그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런 데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고향 맨체스터를 떠나 보스턴에서 건물 잡역부로 하루하루 일하는 '리'(케이시 애플렉 분)의 하루는 건조하다 못해 바스러져버릴 것처럼 위태롭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러운 형 '조'(카일 챈들러 분)의 죽음이 찾아온다. 임종을 지키지 못해 잠깐 혼란스러워하지만 이내 무가, 무신 경적인 태도로 모든 걸 빨리 처리하려는 생각뿐이다. 형의 운구를 실어 나르는데 드는 비용이 중요하고, 일 처리가 제 때 되지 않아 짜증 날 뿐이다.  이런 동생을 위해 이미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형은 생전 리의 마음을 다시 열만 한 선물을 남겨두고 갔다. 바로 혈기왕성한 십 대 아들 '패트릭'(루카스 헤지스 분)의 후견인으로 리를 지목해놓은 것. 어처구니가 없는 리에게 맨체스터에서의 악몽 같은 기억이 다시금 그의 마음속을 매서운 칼바람처럼 벼려놓는다.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는 무심한 척하면서 집요하게 내면의 고통을 파고든다. 을씨년스러운 겨울 바닷가는 땅도 얼어 매장조차 미뤄지고, 조의 시신은 냉동고에서 싸늘히 식어만 간다. 그 추위보다 더 꽁꽁 얼어붙은 리의 마음은 보는 이들이 더 답답하고 안타까울 정도다. 케이시 애플렉의 '영혼 잃은' 표정과 힘없는 말투, 공격적인 싸늘함이 더해져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어쩔 수 없어 받게 된 패트릭의 안위도, 형의 가장 큰 자산인 보트 등 유품을 정리하는 데도 관심이 없는 그에겐 하루빨리 맨체스터를 벗어나고픈 마음뿐이다. 한 때 행복했던 일상을 자기 손으로 불 질러 버렸다는 죄책감이 악몽처럼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메마른 땅에 희망의 싹이 돋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옥 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아무리 끔찍하다 해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고통과 같은 무기력함에 찌들어도 결국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만 한다. 철부지에다 사고뭉치에 당장 내일 어떤 여자 친구를 만날까 가 중요한 패트릭도, 남남이지만 연락하지 않을 수 없는 전 처 랜디 (미셸 윌리엄스 분)와의 악몽 같은 기억도, 리의 사연을 아는 이웃 '조시'(리암 맥네일 분)도 직접적인 어떤 계기나 반전을 종용하지 않는다. 일상의 지루한 반복은 악몽을 점차 잊게 하고, 무뎌진 예민함은 다시 또 새로운 무언가를 꿈꾸게 한다. 티격태격하다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패트릭과의 관계가 특히 큰 힘으로, 리의 마음을 유일하게 안아준 형 조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생은 희미해질 뿐 지워지지 않는다. 리의 생애도 마찬가지라 끝까지 완벽한 구원, 홀가분한 감정 해방 따위 감정 해방 따위의 감동은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지난날과 현재의 침체는 리를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압박해온다. 고향 동네 맨체스터는 그에게 너무도 차갑고, 무자비한 공간이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새 살이 돋고 새로운 청춘들이 미래를 그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게 우리네의 삶이다. 절망하고 흐리다가도 기쁘고 활기차다가 포기해버리고 싶은데 또 힘이 나고.


겨울 바다는 아무 말이 없다. 과묵한 리의 입가에도 웃음은 좀체 피지 않는다. 우아한 바흐의 클래식과 함께 흘러가는 맨체스터의 풍경은 아주 심오하면서도 엄청나게 간단한 진리를 새삼 다시, 묵묵히 느끼게 한다.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 버티지 못한 만큼 괴롭고 고독하더라도, 살아갈 것. 살아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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