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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Oct 04. 2019

‘너 자신을 사랑하라’ 묵직한 메시지

Truth Hurts로 빌보드 5주 연속 1위 거머쥔 리조(Lizzo)


Lizzo ‘Truth Hurts’


카우보이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가 19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온갖 기록을 휩쓸고 간 빌보드 싱글 차트를 5주 연속 점거하고 있는 노래가 있다. 리조(Lizzo)의 'Truth hurts'가 바로 그 주인공. 9월 7일부터 10월 5일까지 한 달 동안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라있는 이 노래는 2년 전 2017년 발표된 곡이나, 최근 틱톡(TikTok)에서의 유행과 넷플릭스 시리즈 <썸원 그레이트(Someone Great)> 수록에 힘입어 뒤늦은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케이팝 그룹 에이비식스(AB6IX)와 함께한 리믹스 버전으로 국내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리조는 'Truth hurts' 한 곡으로 벼락같이 성공한 아티스트가 아니다. 2011년부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 리조는 2014년 프린스(Prince)와 협업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2016년부터 팝 씬에서 독특한 개성으로 두각을 드러냈으며 올해 3월 세 번째 정규 앨범 <Cuz I Love You>를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앨범 발매와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대형 음악 축제 코첼라와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고, MTV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신인' 및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쾌거를 거듭하다 'Truth hurts'로 정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리조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다채로움과 당당함이다. 리조는 자신의 몸과 재능, 검은 피부, 성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모든 선입견과 고정관념, 차별 의식을 과감히 부숴버린다. 플러스 사이즈 젠더리스 흑인 여성의 캐릭터는 이 자신만만한 아티스트에게 훈장과 같다. 리조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 몸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Cuz I Love You>로 본인의 지향을 분명히 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며,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가두지 말라는 것이다.

 


리조의 세계엔 제약이 없다.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휴스턴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미네아폴리스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리조의 음악은 팝과 가스펠, 디스코와 힙합을 자유로이 포용한다. 2013년 데뷔 앨범 <Lizzobangers>는 완연한 트랩 앨범이며, 현재 차트에 오른 ‘Truth hurts’ 역시 피아노 루프와 트랩 비트 위 선 굵은 목소리로 여성상을 노래하는 곡이다. ‘Good as hell’ 같은 팝, ‘Cuz I love you’처럼 가스펠에도 능하며 첫 리드 싱글 ‘Juice’는 1970년대를 연상케 하는 펑크/디스코 트랙이다.

자유로운 음악 세계에 방점을 찍는 것은 그가 훌륭한 가수임과 동시에 훌륭한 플루트 연주자 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휴스턴 음악 대학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리조는 2016년 <Coconut Oil>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연주 실력을 발휘했고, 래퍼 퓨처(Future)의 히트곡 ‘Mask off’와 켄트릭 라마의 ‘Big shot’의 커버 영상으로 SNS에서 화제를 몰고 왔다. 리조는 비욘세의 앨범 <I am... Sasha Fierce>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그의 플루트를 사샤 플루트(Sasha Flute)라 명명했고, ‘지루한 재즈 음악’을 연주하기보다 최신 힙합 히트곡을 커버하는 사샤 플루트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13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이런 다양한 재능으로 무장한 멀티 플레이어의 무대가 즐겁지 않다면 오히려 그것이 신기한 일일 테다. 당당한 풍채와 폭발적인 성량, 과감한 랩으로 무대를 휘어잡으며 그와 같은 플러스 사이즈 백댄서들과 함께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니 지루할 틈이 없다. 여기에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인 트월킹(엉덩이를 흔드는 춤)을 선보이며 감각적인 플루트 연주까지 들려주는 모습은 놀랍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대단하다. 지난 2월 엘런 쇼(TheEllenShow)에서 선보인 ‘Juice’ 무대와 6월 BET 어워즈(BET Awards)에서의 ‘Truth hurts’는 그 백미다.
 


리조가 선사하는 원초적인 즐거움은 그 아래의 묵직한 메시지로 더욱 의미를 갖는다. 사실 그의 존재 자체가 기성과 편견에 맞서는 강력한 반항이다. 마르고 인형 같은 몸매의 연예 산업계에서 플러스 사이즈의 리조는 더욱 크게 엉덩이를 흔들고 살집 있는 몸매를 뽐내며, 개방적인 성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성소수자 지지 메시지를 숨기지 않는다. 흑인 여성 대중음악가가 클래식 악기를 능숙히 연주하며 유색 인종, 음악 산업의 편견을 깨트린다. 리조는 이미 만들어진 사회의 기준을 거부하고, 그에 사로잡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당당히 고개 들 것을 요구한다.

동시에 리조는 ‘바디-포지티브(Body-Positive)’의 프레임으로 자신이 규정지어지는 것 또한 경계한다. 신인 시절 몸 담았던 애틀랜틱(Atlantic) 레이블은 리조를 ‘뚱뚱하고 굉장한(Fat-a-bulous)’, ‘세상을 바꿀 바디 포지티브 래퍼’로 홍보했다. 미국 매거진 <더 컷(The Cut)>과의 인터뷰에서 리조는 이에 불쾌감을 표하며, ‘나는 정치적인 아티스트도 아니고 용감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나를 사랑한다. 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다 해도 나는 계속 흑인이고 뚱뚱한 편을 택하겠다.’라 대답하며 또 다른 언어의 틀에 자신을 가두길 거부했다.

‘나는 그저 나를 사랑한다’는 강한 선언에서 볼 수 있듯 리조의 핵심은 충만한 자기애다. 최근 음악 시장에서 리조만큼 자기애 충만하며 그것을 거리낌 없이 표출한 아티스트는 없었다. 리조의 시선에서 사람들은 사회가 확립한 미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판단할 뿐,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 리조가 트월킹 춤을 추고 더욱 큰 목소리로 자신감을 설파하는 이유도 ‘두껍고 뚱뚱한 나의 엉덩이를 사랑하기에’, 살집 있는 자신의 몸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왜 ‘Truth hurts’가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는지를 돌아보자. ‘왜 남자들은 대단해지기 전까지만 대단할까?’라는 도발적인 메시지로 포문을 연 다음, 리조는 삶에 방해만 되는 남자들을 내치며 ‘DNA 검사를 해보니 난 100% 완벽한 여자라네’, ‘너의 세컨드가 될 생각은 절대 없어’, ‘거짓말은 질색이야. 작별 인사도 기대하지 마.’라는 당당함으로 의존적인 자아의 각성을 촉구한다. 대중은 그의 몸보다 그의 멋진 메시지에 열광하고 있다.

카디 비(Cardi B)는 흑인 여성 스트립 댄서도 억만장자 래퍼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자넬 모네(Janelle Monae)는 영화와 음악 양 쪽에서 찬사를 받으며 유색인종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깨트렸다. 비욘세는 팝 역사에 길이 남을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를 통해 블랙 프라이드(Black Pride), 그중에서도 흑인 여성의 위대함을 온 세상에 선포했다. 이제는 리조의 차례다. 그리고 그를 수식하는 데는 긴 말이나 장황한 설명이 필요 없다. 간결하고도 굵직한 한 마디면 충분하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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