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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r 22. 2020

테임 임팔라 <The Slow Rush>

시간은 빠른 것 같으나 더디게 흐르고 유행은 반복된다.


2010년대 케빈 파커와 테임 임팔라의 승리는 과거에 전복된 현재를 상징한다. 1960년대 사이키델릭을 재기 발랄하고 치열하게 복각한 < Lonerlism >, 여기에 1980년대 알앤비와 디스코, 신스팝의 그루브를 탑재한 < 

Currents > 모두 새로운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대중음악사에 통달한 젊은 고고학자, 케빈 파커의 탐구와 연구 결과물이었던 덕이다. 특정 시간대, 특정 장르의 유행을 그대로 가져오는 복고가 아니었다. 역사의 흐름을 꿰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통사(通史)를 서술하며 테임 임팔라는 대중으로 하여금 그들을 2010년대 최고의 밴드라 평하게 했다.


5년 만의 새 앨범 < The Slow Rush >는 그 '과거의 잔향'을 더욱 짙게 가져간다. 앨범 속지에는 2020년도와 동일한 날짜와 요일을 가졌던 1992년의 달력이 들어있다. 붉은 방 안, 창 밖으로 쏟아져 들어온 모래에 사막이 되어버린 앨범 커버는 어떤가. 1970년대 예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부터 1980년대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선명한 흔적이다. 앨범을 시작하는 'One more year'의 첫 선언은 더욱 노골적이다. '로봇 합창단의 그레고리오 성가'라 이름 지은 보컬 샘플 위 디스코 리듬과 사이키델리아를 차례차례 쌓아 올리더니, “기억해? 우린 작년에도 지금 이 곳에 서있었어.”라 읊조린다. 레트로 마니아들의 환호 소리가 들린다.


이들의 음악 세계는 여전히 견고하다. 사이키델릭의 몽환적인 잔향 아래 치밀하게 구성된 소리와 리듬 변주를 삽입하고 곡의 메인 멜로디를 얹은 뒤 선명한 보컬을 조립하는 치밀한 구성이다. 여기에 케빈 파커가 예기치 못한 변주를 더하며 긴 호흡의 흐름에 진부함을 덜어낸다. 핵심 선율을 먼저 제시하고 뿌연 잔향의 사이키델리아 안개를 펼치는 'Instant destiny'는 후반부 실로폰과 신시사이저 변주로 아트 록 적 접근을 취하며, 이는 프로콜 하럼과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레드 제플린을 통해 1970년대의 향취를 가져오는 'Posthumous forgiveness'나 'Tomorrow's dust' 등으로 확장된다. 앨범을 닫는 7분 13초짜리 대곡 'One more hour'는 그중 단연 백미다.


전작의 'Let it happen', 'The less I know the better'처럼 리드미컬한 곡들 역시 그 팔레트가 더욱 화려해졌다. 사이키델릭 댄스 팝이지만 인트로의 유연한 기타 리프가 홀 앤 오츠의 블루 아이드 소울을 숨기지 않는 'Breathe deeper', 슈퍼트램프의 'The logical song'로부터 가져온 인트로를 후반부 트립합으로 휘저어놓는 'It might be time' 등이 그렇다. 비지스가 겹쳐가는 'Is it true'와 이탈로 디스코 트랙 'Glimmer' 역시 케빈 파커의 화려한 디깅 전력을 짐작케 한다. 과거에 매몰된 삶에 대한 엇갈린 평가를 노래하며 앨범의 핵심을 짚은 'Lost in yesterday'도 역시 티어스 포 피어스의 베이스 라인을 바탕으로 진한 뉴웨이브의 색채를 더한 곡이다.


시간은 빠른 것 같으나 더디게 흐르고 유행은 반복된다. 테임 임팔라는 수준급의 새 앨범으로 레트로 시대 그들의 의미를 다시 각인했다. 그들은 단순한 따라 하기 및 흉내내기를 넘어 '팝의 고전'을 탐독하고, 이를 바탕으로 먼 과거처럼 여겨지는 치열한 대중음악의 작법을 계승할 뿐 아니라 신세대 마니아들의 지지까지도 확보하는 거의 유일한 팀이 되어가고 있다. < Currents > 만큼 놀랍지는 않으나 2020년대 복고를 좇는 모든 마니아들에게 당위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 The Slow Rush >의 의미 역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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