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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Dec 16. 2020

백예린 <tellusboutyourself>

성과도 분명하나 개선점도 많다.



‘Square’의 기적은 취향의 결집 및 승리였다. 음악 감상의 주요 수단을 유튜브로 삼은 신세대, 그들에게 어필하는 알고리즘과 플레이리스트 채널의 유행이 솔로를 꿈꾸던 백예린을 단단한 꽃망울로 틔워냈다. 감성을 자극하는 제목 아래 시티팝이라 호명되는 퓨전과 AOR 음악,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몽롱함과 1990년대 밴드들의 멜랑콜리한 멜로디, 여기에 로파이(Lo-Fi)의 예민한 틴에이저 감성까지. 백예린은 < Every letter I sent you. >에 그 정서를 빼곡히 눌러 담았고, 익숙한 세대와 낯선 세대 모두가 그에게 적극 호응했다.


이상의 배경을 짚고 있다면 1년의 텀을 두고 발표한 신보 < tellusboutyourself >의 구성이 더욱 선명해진다. 기초 재료는 그대로 두되 딥하우스와 알앤비, 얼트 록 등 전작보다 너른 장르를 포괄한다. ‘Lovegame’과 ‘Ms. Delicate’처럼 한 곡 내에서 변주를 가져가며 실험적인 면모도 획득한다. 동시에 전체적으로 튀는 곳 없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프로듀싱이 두드러지고 몽글몽글한 사운드 디렉팅은 드림 팝과 칠(Chill)의 교집합을 의도하며 보컬은 조곤조곤 편안히 말을 건다.


숱한 유튜브 인기 선곡표들이 그러하듯 국내의 감각보다는 신진 팝 싱어송라이터들의 취향이 가깝다. < 네이버 NOW > 라이브 내용처럼 ‘처음에는 한글로 가사를 썼지만 영어가 이 음악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곡들이다.


앨범은 하나의 독립된 작품보다 백예린이 큐레이팅한 일종의 플레이리스트처럼 들린다. 본인이 상징하는 특정 유행과 취향의 흐름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을 발췌하여 체득하고 완성한 열네 곡이 짜임새 있게 맞물려있다. 과거 리뷰에서 우려한 지점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듯 다양한 장르 탐색과 오밀조밀한 코드 변주 및 사운드 활용으로 번득이는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플레이리스트 성격이 < tellusboutyourself >의 단점이다. 백그라운드 뮤직으로의 기능은 충분하나 그 이상 깊이 마음에 들어오게 하는 힘이 약하다.


백백예린 (Yerin Baek) 'Hate you' M/V


활용하는 장르와 그 이해도가 결코 허술하지 않음에도 평범함으로 다가오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다. ‘You’re so lonely now, so you need me back by your side again’은 공간감 있는 보컬 및 코러스라인, 거친 질감의 베이스와 기타 연주를 교차하며 나아가지만 지나치게 단출한 선율이 텐션을 떨어트린다. ‘Hall&oates’ 속 레전드 팝 듀오의 잔향은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로만 얕게 남아있고, 가사 또한 과거의 좋았던 인연을 단편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친다.


안정감을 위한 프로듀싱은 강하게 쏘아붙여야 할 ‘Hate you’의 분노를 희석하고 차분한 사랑 노래 ‘I’m in love’를 너무도 투명하게 만든다. 일렉트로닉을 더한 ‘“HOMESWEETHOME”’, ‘0415’가 약간의 리듬감을 더해주나 싶지만 무난함으로 일관하여 가벼운 터치에 스쳐가고 만다.


지나치게 평탄한 전개 중 언어의 문제도 발견된다. 장르 무드에 어울리는 발성이 영어임은 분명하지만 그 활용이 예쁜 소리, 감각적인 분위기 구현에 편중되어 가사 전달 및 메시지의 무게감은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가사에 집중할 곡이 많지 않고 혹 살펴봐도 ‘Hall&oates’처럼 단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로 인해 꿈결 같은 잔향의 드림 팝 ‘I am not your ocean anymore’에는 앨범에서 가장 세련된 멜로디의 곡임에도 기시감이 드리워져 있다.


때문에 마지막 곡 통통 튀는 리듬과 촘촘한 비트 위 ‘사랑은 거품 / 거품의 모양’을 읊조리는 ‘Bubbles&mushrooms’가 아주 반갑다. 하지만 영역 확장을 한 발자국 앞두고 영어 가창에 머무르며 주저하는 모습이다. 긴 호흡의 전작에서 ‘Datoom’이 유독 환했고, < Our Love Is Great >의 곡들이 은은히 빛났던 이유를 깨닫는다.



그럼에도 귀를 기울여 들으면 비범한 지점이 있다. 간결한 리프가 단조로워질 때쯤 등장하는 베이스 라인과 이질적인 신스 솔로로 지루함을 탈피하는 ‘Lovegame’은 또래 여성들에게 전하는 현실적인 메시지까지 더해져 매력적인 트랙이 된다.


뉴웨이브와 그루비한 알앤비를 훌륭히 블렌딩한 ‘Ms. Delicate’ 역시 놓칠 수 없다. 현대의 카펜터스를 그리는 인트로에서 부드러운 알앤비로 연결되는 ‘Loner’는 연약한 외로움의 정서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포근한 위로를 전하는 ‘I’ll be your family!’는 기분 좋은 청량감을 더한다. 운신의 폭을 넓히면서도 개인의 강점은 확실히 인지하고 지킨다.


성과도 분명하나 개선점도 많다. 의도된 모호함, 편안한 일상 청취를 의도했더라도 그중 귀에 들어오는 순간이나 곡 제목을 확인하게 되는 매력은 필요한데 ‘Square’와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혹은 그에 준하는 결정타가 없어 오래 머무르기 어렵다.


수많은 이들의 취향으로부터 싹을 틔운 백예린이 언뜻 활짝 꽃을 피운듯 보이나 아직 완전히 만개하지 못했음을 느낀다. 본인은 지금을 즐기고 있어 보이지만, 더 화사하게 피어나기 위해선 열광과 찬사의 일회성 소비 대신 긴 호흡을 위한 재정비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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