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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May 03. 2017

라붐의 눈물

'음반 사재기 논란', 아이돌 서바이벌의 비극


라붐이 대체 뭘 잘못한 걸까? 데뷔 3년 차에 접어든 이 6인조 걸 그룹은 지난주 금요일 그토록 고대하던 음악방송 1위를 차지했다. 아이돌 그룹에게 음악방송 1위는 어느 정도 고생길 청산하고 꽃길 걸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니 칭찬받을 일이고 또 좋은 일이지만, 이 날 이후로 라붐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는 듯하다. 이른바 '음반 사재기 논란'으로, 그것도 우리 대단한 아이유를 꺾었다는 이유로, 첫 1위에 오열하던 멤버의 인스타그램에는 악플이 쏟아지고 그룹 이미지는 엉망이 되어가는 중이다. 


첫 주 음반 2만 장을 프로모션 용으로 팔아서라도 음반 판매 점수를 올려야 할 만큼 1위가 중요한 걸까? 셀 수 없이 많은 걸 그룹들을 모니터링하다 보면 그런 류의 말이 꼭 나오긴 한다. 아이돌 그룹에게 인기 있어진다는 것의 척도는 음원 사이트 1위보다 음악 방송 1위다. 그들이 가장 자주 나오는 TV 프로그램이고, 그들이 가장 목숨을 거는 홍보 수단 중 하나니까. 소위 '메이저 걸 그룹' 라인이 아닌 '마이너', '2군' 걸 그룹들에게는 음악방송 1위 후보라도 오른다는 게 일정 인기 궤도에 올랐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라붐과 같은 해 데뷔한 걸 그룹으로는 마마무, 소나무, 러블리즈 등이 있다. 정상 위치에 올라간 마마무, 안정적인 팬덤을 구축해나가는 러블리즈와 비교하면 소나무와 비슷(...) 하면서도 조금 떨어지는 위치가 라붐의 자리였다. 이 팀이 메이저 차트 100위권 내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작년 '푱푱'부터였고 그전까지는 사실 아는 사람만 아는, 음악 방송의 처음 20분쯤에 등장하는 그런 그룹이었다. 그래도 '푱푱' 이후 '겨울동화'가 선전하면서 천천히 인지도를 높여가고, 건실하게 활동하며 앞으로 오 마이걸, 우주소녀, 다이아 정도의 걸 그룹 2군 지역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듯했다. 물론 중요한 앨범 판매량은 상대가 안 됐지만.


군대에서나 이들 걸 그룹에 관심이 있지 실제 대중의 반응은 마니아 팬 층을 제외하면 미미하다. 뭐 그런 애들이 있다더라, 저런 애들이 데뷔했다더라... 하나하나 다 챙겨보고 신곡 체크하고 게다가 돈까지 들여서 직접 앨범을 사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라붐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그나마 솔빈이 다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약간의 인지도를 쌓긴 했지만 그 외 인지도는 있을 듯 말 듯에 가깝다. 사정이 이러하니 포털 사이트 뉴스란에 하루라도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음악방송 1위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었다. 



'라붐 뮤직뱅크 1위'가 더욱 혹독한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거대 기획사가 아닌 이상 신인 걸 그룹이 대번에 데뷔곡으로 히트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마니아틱한 콘셉트를 갖고, 완성 대신 성장을 중심에 두며 팬들도 그들을 응원하면서 '육성'하고 결국엔 잘 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당장 우리 아기들이 1위 하지 못해도, 방송에서 3분짜리 노래가 2분만 나오더라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그 날까지 열심히 활동하자~ 우리가 앨범 사고 콘서트 갈게! 2017년 아이돌 산업에서 일상 하나하나를 밀착 취재하여 콘텐츠화하는 V앱, 개인 방송, 개인 SNS가 중요한 홍보수단으로 자리한 이유다. 이렇게 공든 탑을 쌓는 그룹이 많은데 누군가가 그 탑을 초고속으로, 이상한 방법으로 쌓아버린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가 가져다준 트로피지만 라붐과 그 멤버들에게 질책할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가 다시금 되새겨야 할 것은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이 인기를 얻기 위해 이런 류의 작업이라도 해야 한다는 슬픈 사실이다. 열심히 활동하고, 신곡 내고, 콘셉트를 짜도 소수 층만이 반응할 뿐 전국민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추가 미디어(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 전용 예능)의 힘이나 그 이상의 무언가 (직캠, 개인방송, 기타 예능 등등...)가 필요하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멤버들에게 '음악 방송 1위 한 그룹'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 연습생 때부터의 그 갖은 고생, 노력, 그리고 3년 동안의 활동에 대한 보상을 어느 정도라도 줄 수 있었을 테니... 그러나 그 방법을 몰라서 안 하는게 아니다. 


라붐의 뮤직뱅크 1위는 잘못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아이돌 서바이벌 시장의 부끄러운 민낯이었다. 

기뻐서, 어안이 벙벙한 채로 흘리던 그 눈물조차 질책하게 되는, 잔혹한 서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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