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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Apr 25. 2021

아이유와 함께 돌아본 나의 20대

'러브 포엠'과 '라일락' 사이, '에잇'의 시간 위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통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서로에게 연결되기보다 마음의 문을 닫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저는 음악이 서로의 마음을 이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대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지금, 무게감 있는 이야기나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우리 곁의 음악을 이 나이에만 볼 수 있는 시선으로 담백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저의 '이십전심'이 많은 분들을 이어주었으면 합니다. 



아이유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 '라일락(Lilac)'이 나온 3월 29일, 소문난 '유애나(아이유 팬 통칭)' 친구와 앨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지만 음식과 야구를 빼면 스타일이 전혀 다른 친구인데요. 의외로 '라일락'에 대한 첫인상이 같아서 놀랐습니다. 좋긴 좋은데, 2019년의 미니 앨범 '러브 포엠(Love Poem)'만큼 와 닿지 않더라는 겁니다. 


'라일락'이 잘 만든 앨범임은 분명합니다. 문을 닫는 앨범이라는 주제 아래 20대의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돌아보는 콘셉트가 선명했죠. 살랑거리는 기타 톤과 함께 아이유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자 젊은 날의 청춘이란 꽃말을 담고 있는 '라일락'도 참 좋았고, 국힙 원탑(한국 힙합 최고)으로 만들어준 '코인(Coin)'도 재미있었죠.


소외된 이들을 따스하게 위로하는 '셀레브리티(Celebrity)'와 악동뮤지션 이찬혁의 재치가 돋보이는 '어푸', '러브 포엠'을 생각나게 한 기승전결 뚜렷한 발라드 '아이와 나의 바다'도 감동입니다. 소울, 발라드,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만큼 보컬 스타일도 새로웠고요.


IU(아이유) 'Blueming(블루밍)' 라이브��(밴드ver.) | 가사 | 스페셜클립 | Special Clip | LYRICS [4K]


하지만 제게 '라일락'이 '러브 포엠'만큼 감동적인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2019년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 공개된 아이유의 다섯 번째 미니 앨범 '러브 포엠'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스물일곱 아이유의 소중한 고백을 담은 앨범입니다.


2009년 '미아'부터 평생 팬이 되기로 다짐한 그 친구에게도, 음악을 진지하게 들으려 애썼던 저에게도 '러브 포엠'의 울림은 큰 충격이었거든요. '러브 포엠'과 '라일락'의 우열을 나누려는 것은 결코 아닌데 말입니다.


왜 그럴까 고민하며 차근차근 아이유의 20대를 돌아봤습니다. 2012년 '스무 살의 봄'부터 당시의 반응과 오늘날의 위치를 비교해갔죠. 그렇게 '라일락'까지 다다르고 나니 나름 답이 보였습니다.


'러브 포엠'이 스물일곱 강렬한 순간을 포착해 만든 앨범이라면, '라일락'은 아이유가 처음으로 현재 진행형의 20대가 아니라 회상으로의 20대, 아이유가 살아온 20대 전체를 관통하는 앨범인 탓입니다.



'하루 끝'과 '복숭아'로 소중한 첫 나이테를 새긴 후 아이유는 해마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경험과 감정을 새겨나갔습니다. 좋아하는 옛 노래를 하나하나 골라 부른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로 의외의 취향을 들려주기도 했고요. 때로는 '스물셋'처럼 세간의 관심에 날을 세울 때도 있었고요. 동화 속 꼬마 아이를 노래한 '제제'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아이유는 슬퍼하는 대신 차분한 '밤 편지'로 스스로를 치유했습니다. 그리고 '팔레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자신을 마주하게 됐죠.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이라는 고백과 함께 시작한 앨범의 첫 곡 제목은 이지은이 아닌 '이 지금'이었습니다. 이후 세련된 투정의 '삐삐'로도, 지코와 함께한 '소울메이트(Soulmate)'로도 아이유는 과거의 나, 미래의 나가 아닌 지금, 스물 N살의 이지은을 노래했습니다.



저는 아이유보다 한 살 아래입니다. 거의 같은 시간, 같은 세대를 살고 있다고 느끼지만 아이유의 이야기 속에서는 한 살의 차이가 생각 이상으로 크다고 느껴집니다. 스물두 살의 저는 '스물셋' 아이유의 혼란과 날 선 감정을 오해했습니다. 


'팔레트(Palette)' 속 "아임 트웬티 파이브(I'm twenty five)" 가사를 노래방에서 "트웬티 포"라 노래해도 날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엄지손가락으로 장미꽃을 피워" 낸 '블루밍'(2019년)의 가사가 마음속 깊이 들어온 때는 스물여덟의 아이유가 '에잇'(2020년)을 발표한 때였습니다. 


아이유는 저보다 항상 한 발자국 먼저 20대를 살았고, 저는 그 경험의 기록을 따라잡고자 애썼습니다. 아이유의 세계와 저의 경험이 거의 동일 선상에 다가왔던 앨범이 '러브 포엠'이었죠. 동세대의 공감과 감정을 온전히 다 끌어안은 이 앨범의 잔향은 '라일락'이 나온 지금까지도 여전히 짙습니다.


방황하던 우리에게 '러브 포엠'의 사랑 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 다시금 우리를 살아있게 해 주었고, '너랑 나'에서 "시계를 더 보채고 싶지만"이라 노래하던 아이유가 "시간의 테두리 바깥에서 과거를 밟지 않고 선다면 숨이 차게 춤을 추겠어"('시간의 바깥')라 노래하는 부분에선 벅찬 성장의 감동을 느꼈습니다.  



반면 '라일락'은 인간 이지은의 20대를 톺아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워커홀릭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을 "알잖아 내가 한번 미치면 어디까지 가는지"로 압축한 '코인', 화려한 스타의 삶을 살면서도 항상 경계하며 미묘한 긴장감을 유지한 경험을 경쾌한 '어푸'로 풀어냅니다. 언뜻 경쾌하지만 어딘지 모를 아련한 슬픔이 담긴 '라일락'도 입체적인 곡이고요. 


나도 아이유처럼 20대를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같은 걱정을 하다 보면 난 20대에 뭘 했지 싶어 우울해지곤 합니다. '아이와 나의 바다'에서처럼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맘이 가난한 밤"이 되는 거죠. 하지만 이어지는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라는 메시지에 다시금 힘을 얻습니다. 


신비로운 '에필로그'를 끝으로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다음으로 가요"라 훌훌 모든 것을 털고 떠나는 아이유의 모습에서 1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게 됩니다. 아직 저는 20대가 남아있는 (그렇게 믿고 있는) 위치인 탓이죠. 



저의 20대는 나이에 맞게 살고 싶지 않았던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십 대 시절의 조바심은 몇 번의 술자리와 대학 생활 후 빠르게 시들었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대우받고 싶어 어른 흉내 내기 바빴습니다. 겪지 못한 일들을 경험한 것처럼 묘사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넘기며 무덤덤해졌죠. 당장 내 눈앞에 일어나는 일,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 설익었을지라도 솔직했던 말에 더 진심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성실히 적어나가던 아이유처럼 말이죠. 

저는 스물두 살이 되는 해 테일러 스위프트의 '22'를 들었고 25살에는 아델의 '25' 앨범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제 매년 1월 1일마다 23살이 되는 친구들은 아이유의 '스물셋'을 챙겨 듣는다고 하네요. 아이유가 나이를 노래한 첫 가수는 아니지만, 그 시기의 감정을 친근하고 가깝게 전달하는 것 중 노래만 한 것이 없는 건 분명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의 노래가 먼 미래의 이야기일지도,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아이유에게 고맙습니다. 아이유가 나이를 노래하기 전까지 20대는 과거에 대한 향수로 회상되거나, 단순히 청춘 혹은 젊음의 단편적인 이미지로 소비되어왔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목소리로 듣지 못했던 거죠. 


[MV] IU(아이유)_LILAC(라일락)


인생의 한 챕터를 화사하게 마무리한 아이유의 노래와 함께 저도 얼마 남지 않은 20대에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에잇') 보려 합니다. 


내년 이 순간, 환하게 웃으며 '꽃 지는 날 Goodbye!'('라일락')이라고 외칠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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