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와 '뮤직 큐레이터'의 21세기 음악
옛날 팝 음악에 사람들이 이만큼 관심 가졌던 적은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이전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뮤지컬 < 맘마미아! >의 대성공, 마이클 잭슨의 부고가 있었으니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캣 스티븐스, 조지 해리슨, 샘 쿡, 팔리아먼트, 그리고 아무도 모를 법 한 제이 앤 더 아메리칸스(Jay & The Americans), 스위트 등의 인디 밴드들의 음악을 찾고 듣는 건 낯선 광경이다.
SNS 소통을 즐기는 1970년생 감독 제임스 건은 소문난 음악 마니아다. 이미 그 특유의 쾌활함과 장난스러움, 진지하지 않은 히어로물을 만들어보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쳤던 전작에서부터 피터 퀄의 < Awesome Mix Vol. 1 >은 영화의 흥취를 더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지구를 (반강제적으로) 떠나며 어머니가 물려준 유품 중 하나인 이 카세트테이프는 숱한 외계인들 속에 '지구인'으로의 피터 퀄을 정의하며, 센티멘탈한 장면을 장식하고 위기의 순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구원하기도 한다.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가 시사하는 건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듣게 하려면 미디어의 힘이 필요하다는 (믿기 싫은) 사실이다. 우리 같은 음악 마니아들은 모른다. 사람들이 다 우리처럼 노래를 듣고, 아티스트들에 열광하고, 밴드의 꿈을 키우는 건 절대 아니다. 물론 음악의 힘은 강력해서, 우주를 멸망시키려는 악당에게 맞설 시간을 벌어주기도 하고 아버지와 같았던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정신적 성숙의 계기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올드 팝을 듣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당장 유행하는 팝도 잘 듣지 않는 마당에.
현재 한국에서 제일 인기 있는 팝 스타라면 에드 시런, 샘 스미스, 체인스모커스, 마룬 파이브, 브루노 마스 등이 있다 (내가 정한 게 아니라 차트 상위권에 있는 아티스트들이 그렇다.). 이들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팝 스타기에 자발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좋은 외국 노래' 추천 리스트의 맨 앞을 손쉽게 장식한다. 그럼 나 같은 음악 마니아들이나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옛날 노래는? 사실 관심도 없을뿐더러 너무도 생소한 세계다. 이런 외계 행성을 조금이라도 찾아보게 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다. 영화, 드라마에 나오거나 유명인이 좋다고 추천하면 된다.
음악 자체가 생활의 일부분이자 배경이 된 현대 사회에서 예전처럼 노래 하나하나에 공감하면서 그걸 찾아들을 정성을 쏟기란 쉽지 않다. 그 리스트를 짜주는 큐레이터들은 바쁘겠지만 그게 주목받는 사회도 아니다. 그래서 미디어가 음악을 장악하기는 더욱 쉬워졌다. 예전엔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반항심이 있어야 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아니, 미디어에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 >를 본 250만 명이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와 조지 해리슨의 노래를 들었다. 아마 사람들은 제프 린이 비틀즈를 위시한 수많은 아티스트들 중 최고의 반열에 올라있다는 것을, 조지 해리슨이 '하레 크리슈나'를 노래하게 된 배경도 잘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걸 글로 쓰면 아무도 안 보는 게 당연하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그 자리는 지루해진다. 음악은 이제 '제공되는 것'이다. 음악이 '공감하는 것'이라는 건 물론 맞는 말이지만 소수의 그런 사람들을 빼면 더 이상 공통적인 경험이라 보긴 어렵다.
음악을 흘러가는 것, 일상의 장식으로 소비하는 요즘 시대에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 > 같은 영화는 '음악의 힘'을 간절히 믿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꽤나 절실하고 흥미로운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사람들이 그런 노래들을 듣게 되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이너 한 선곡을 알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평론가들보다 이 시대에 필요한 건 그런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예전같았으면 레코드샵을 뒤지고, 밤 새가며 카세트로 라디오를 녹음하고 CD를 굽고 mp3를 다운받아야 했던 음악 입문의 길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해져버린 지금, 중요한 건 미리 아는 것보다도 어떻게 분류하느냐다. 그 핵심 부분에 미디어가 있고, 1960~70년대 옛날 노래를 2017년에 듣게 만든다. 미디어의 힘이 '너무' 강한 한국에서는 영화와 드라마, 연예인들의 한마디가 음악 산업 전체에 영향을 끼치니 문제지만.
이 영화를 보고 음악적으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음악 많이 아는 게 자랑거리가 아닌 시대가 됐다는 거다. 시대는 이렇게 일상 속 깊이 파고든 음악의 감성을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도움이 될 창조자들을 원하고 있다. 차라리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가 우리 같은 사람들보다 훨씬 음악 산업과 사람들의 감성에 훨씬 이바지하고 있다. '가디언즈 오브 뮤직 인더스트리'같은, 미디어들의 끊임없는 큐레이팅 작업이랄까. 물론 여기 나온 노래를 다 안다고 무릎을 탁 치는 꼰대도 세상에 있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