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가 타일러 쉐리던의 정적인 서스펜스
싸늘하다. 적막하다. 그리고 천천히, 새하얀 눈에 뒤덮인 끔찍한 현실이 모습을 들춘다. 멕시코 국경 지대의 카르텔 복수극 < 시카리오 >, 황폐화된 텍사스의 형제 < 로스트 인 더스트 >의 각본가 타일러 쉐리던은 감독 데뷔작 < 윈드 리버 >로 '꿈도 희망도 없는 21세기 아메리카 3부작'을 완성한다. 잔혹하고 황망했던 과거의 서스펜스는 그대로 가져오되, 따뜻한 시각을 불어넣으며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타일러 쉐리던은 일찌감치 21세기 아메리칸 인디언의 현실을 담고자 했다. 유년기 인디언 보호구역의 친구들을 통해 땅을 빼앗기고 좁은 구역으로 내몰린 그들의 실종된 미래와 타락한 현실을 직접 목격했던 그는 드넓은 와이오밍 주의 보호구역 '윈드 리버'에서의 잔혹한 범죄물을 설계하며 적자생존의 21세기 미국을 싸늘하게 조망한다. 가도 가도 끝없는 설원과 눈폭풍, 퓨마와 코요테, 늑대들만이 전부인 황량한 땅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어간 인디언 소녀 나탈리(켈시 초우 분)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힘없는 피해자가 되고, 맹수를 사냥하는 야생동물 관리국의 코리(제레미 레너 분)와 신참 FBI 요원 제인(크리스토퍼 올슨 분), 인디언 보호구역 담당 경찰 벤(그레이엄 그린 분) 만이 억울하게 살해된 나탈리의 한을 풀기 위해 설원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영화는 의문의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수사물의 형태를 취하지만 전체 스토리는 코리와 제인의 대비를 통해 전개된다. 냉정한 맹수 사냥꾼 코리는 인디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잃고 어린 아들과 함께 건조한 삶을 살아간다. 장인어른의 소를 해친 퓨마를 사냥하기 위해 윈드 리버에 발을 들인 그는 눈 속에 얼어버린 소녀의 사체를 처음 발견하고, 한 순간의 실수로 다시 볼 수 없게 된 딸의 단짝이었던 나탈리에 연민을 느끼며 범인을 추적해나간다.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능숙히 몸을 숨기고 '살아남거나, 당하거나'의 법칙에 충실한 코리지만 묵묵히 아메리칸 인디언의 현실을 이해하며 맹수와 싸우면서도 황량한 현실 속 인간의 가치를 잊지 않는다.
근방 요원이 자기뿐이라 뜨거운 라스베이거스에서 차가운 와이오밍으로 급하게 파견된 제인은 반대로 모든 것이 서툴다. 첫 사건에 대한 의욕만 앞설 뿐 혹한의 날씨에 대한 대비, 인디언 가정에 대한 이해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그는 나탈리의 아버지 마틴을 의심하며 상처를 주고, 부검의에게 결과를 재촉하며 수사의 중심으로 인정받고자 한다. 그러나 윈드 리버의 혹독한 환경과 약에 찌든 아메리칸 인디언 청년들을 겪고, 딸을 잃은 코리의 이야기를 듣게 되며 법과 원칙보다 즉각 처분과 현실이 먼저인 곳에서의 공감을 배워나간다.
사건을 추적해나가며 점점 범죄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그들의 과정은 상징적 장면들로 채워진다. 결정적 단서를 향해 혼자 추적을 지속하던 코리는 그를 인도하게 된 퓨마 굴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들을 쏘아 죽이려는 찰나 바로 옆 스노모빌 자국을 통해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된다. 가축을 해치는 퓨마는 동물의 본능으로 사냥을 하지만, 나탈리를 해친 인간들은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잔혹한 짓을 저질렀고 코리는 그들을 잔혹하게 '사냥'한다. 방랑 인디언 청년들의 소굴을 침범했다 큰 코 다치고 생사의 기로에 놓일 뻔한 제인은 결정적 순간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더 큰 위기를 막는다.
이처럼 정적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는 긴장에 긴장, 힌트에 힌트를 쌓아 올려나가다 마지막 10분 폭발하고야 만다. 고립된 외지에서 맨발로 질주하는 나탈리의 오프닝 씬부터가 강렬한 이 영화는 하얀 눈밭처럼 끝까지 때를 기다리다 교차 편집으로 이 모든 질문을 해소해버림과 동시에 최후의 설원 대격전 씬으로 관객이 채 대처하기도 전에 완벽한 복수극을 마무리짓는다. < 시카리오 >의 베나치오 델 토로가 시종일관 멱살을 잡고 숨쉬기조차 힘든 압박을 불어넣는다면 < 윈드 러너 >의 서스펜스는 치밀하면서도 인내심 강하게 결정적 쾌감으로 한 발자국씩을 내딛는다. 오프닝 씬과 흡사하게 '맹수'들을 사냥하는 코리의 총탄에는 자비가 없다.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 '고통은 피하는 것이 아닌 직면하는 것'이라는 위로를 통해 타일러 쉐리던은 피폐해진 2017년의 미국에 버텨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넌지시 암시한다. 그저 재미로, 심심해서, 답답해서 저지르는 신 기득권의 논리에 대항하는 방법은 묵묵히 정의를 수호하며 불공정한 룰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이다. '온 세상과 싸우고 싶다'라고 말하는 나탈리의 오빠에게 코리는 '난 세상과 싸우지 않아. 세상은 이길 수 없더라고. 대신 나 자신과 싸우지.'라며 성숙의 가치를 전한다. 사건 그 자체에만 집중하던 신참내기 제인은 사건이 마무리되고야 누구도 없었을 설원에서 맨발로 달려 도망쳐야 했던 나탈리의 고통을 깨닫고 눈물을 쏟는다. 약육강식 정글 속에서도 인간이 짐승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의지하고 연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뿐이라는 사실. 타일러 쉐리던이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외치고 싶던 결정적인 한 마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