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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an 04. 2022

착한 남자들에게 너는 독배 같은 것

SM의 여성 그룹 프로젝트 걸스 온 탑의 첫 유닛 갓 더 비트



케이팝의 에이포스(A-Force : 마블 여성 슈퍼히어로들로 구성된 팀)가 2022년의 시작을 힘차게 알렸다. 동시에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SM엔터테인먼트가 공개한 프로젝트 걸스 온 탑(Girls On Top)의 첫 번째 유닛 갓 더 비트(GOT the beat)가 올해 1월 1일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에스엠타운 라이브 : SMCU 익스프레스@광야(2022 : SMTOWN LIVE 2022 : SMCU EXPRESS@KWANGYA)에서 첫 번째 곡 '스텝 백(Step Back)' 무대를 가졌다.


GOT the beat 'Step Back' Stage Video


걸스 온 탑?


걸스 온 탑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여성 아티스트들을 테마별로 조합하여 다양한 유닛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보아의 2005년 히트곡 '걸스 온 탑'에서 제목을 따왔다.


과거부터 SM엔터테인먼트는 자사 아티스트들의 순환과 교체 시스템을 고민해왔다. H.O.T. 때부터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가 기획했던 로테이션 기획은 졸업과 입학 시스템을 도입하여 데뷔했으나 팬들의 반대로 고정 그룹이 된 슈퍼주니어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수만 프로듀서의 꿈은 2016년 4월 9일 '무한 개방'과 '무한 확장'을 모토로 내세운 보이그룹 엔시티(NCT)를 통해 이뤄졌다.  



2019년에는 미국 캐피톨 뮤직의 케이팝 그룹 프로듀싱 요청을 받아 SM 소속 보이 그룹에서 멤버들을 추출한 7인조 슈퍼그룹 슈퍼엠(SuperM)이 등장했다. 걸스 온 탑 프로젝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그룹 멤버들을 차출해 결성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슈퍼엠은 정규 앨범을 발표한 정식 데뷔 그룹인데 반해 걸스 온 탑 프로젝트 유닛들은 단발성 이벤트로 활동을 마무리한다는 점이 차이다.


2020년 9월 슈퍼엠과 엔시티를 통해 힌트를 제시한 SM은 에스파의 데뷔와 함께 본격적으로 컬처 유니버스(Culture Universe)를 천명하며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 '광야'를 소개했다. 지난해 6월 SM엔터테인먼트가 개최한 SM 콩그레스 2021(Congress 2021)에서 SM은 자사 아티스트들을 '광야'의 일원으로 소개하며 그들의 활동이 우주를 연결하는 데이터와 운명이라 강조했다.


보아가 심은 작은 씨앗이 동방신기, 샤이니,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엑소, 레드벨벳, 에스파로 이어지는 흐름을 강조했다. 방대한 자사 콘텐츠들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하나의 체계로 일원화했다. '걸스 온 탑'에서 제목을 따온 프로젝트와 역사를 포괄하는 갓 더 비트 유닛은 차곡차곡 쌓아 올린 아카이브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SM의 도전이다.



갓 더 비트


갓 더 비트 멤버들은 화려하다. 보아, 소녀시대의 태연과 효연, 레드벨벳의 슬기와 웬디, 에스파의 카리나와 윈터가 모여 퍼포먼스와 보컬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무결점의 유닛이 탄생했다.


SM 스타일을 상징하는 SMP 사운드의 아버지 유영진과 라이언 전, 해외 작곡가들이 만든 '스텝 백' 역시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으로 충분한 곡이다. 공격적인 힙합 비트 위 웅장한 샘플을 불협화음처럼 변주하여 에너지를 더했다. 2018년 비욘세와 제이지가 결성한 부부 슈퍼그룹 카터스(CARTERS)가 떠오르는 자신만만하고 강렬한 선언이다.



1월 1일 '스텝 백' 무대에서 보여준 갓 더 비트 멤버들의 퍼포먼스는 현재 SM 최고의 정예들이 출동한 만큼 훌륭했다. 보아와 효연이 팔짱을 끼고 카리나가 랩을 더하며, 태연과 웬디, 윈터가 고음 대결을 펼치고, 슬기와 효연, 보아가 댄스 브레이크를 펼친다. 멤버 간의 완벽한 호흡과 아름다운 신구조화가 기대 이상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다만 걸 크러쉬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가사가 논란이다. 지난 1일 처음 노래가 공개됐을 때부터 "엔간히 끼를 좀 부렸겠니", "내 남잔 지금 Another Level" 등 가사가 갑론을박을 불렀으며, 곡에 참여한 작곡가 라이언 전이 가사를 썼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많은 비난을 받았고 곡이 발표된 3일 유영진의 가사로 밝혀지자 한동안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유영진 작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팬들은 주체적인 여성상을 강조한 보아의 '걸스 온 탑'에서 가져온 프로젝트, 강인한 콘셉트의 멤버들에게 연인을 치켜세우며 타 여성들을 깔보는 듯한 가사를 준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다. 소속사는 '연인과의 사랑에 있어 자존감 높은 여성의 모습을 직설적인 표현들로 담았다'라고 설명했지만 "내 거에서 손 떼 너", "착한 남자들에게 너는 독배 같은 것, 마실 수록 외로워" 등의 내용은 시대에 뒤쳐졌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저명한 미국의 가사 제공 사이트 지니어스(Genius)는 '스텝 백'을 조명하며 '이 곡의 가사는 구시대적이고 안티 페미니즘적 관점을 제시하여 반발을 일으켰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서머 여사 단단히 뿔 났다 / Summer Walker - Bitter (Narration by Cardi B) [가사해석]


'스텝 백'같은 서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알앤비 신성 서머 워커는 지난해 유명 프로듀서 런던 온 다 트랙과의 사랑과 불화를 담은 두 번째 정규 앨범 '스틸 오버 잇(Still Over It)'를 발표하며 수록곡 '비터(Bitter)'에서 '스텝 백'보다 높은 수위의 가사로 연인의 바람 상대 여성을 조롱한 바 있다. 하지만 서머 워커에게 '비터'는 자신을 방치하고 바람을 핀 런던 온 다 트랙의 만행을 고발하며 상처 입은 자신을 위로하는 앨범 속 다양한 감정 표현 중 일부일 뿐이다. 디지털 싱글로 공개된 '스텝 백'에는 맥락이 없다.  


'스텝 백'의 여성들이 치켜세우는 남성을 케이팝 팬 혹은 SM의 가치로, 그를 유혹하는 여성들을 경쟁사 및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비유하면 '내 남자는 어나더 레벨'이라는 외침이 얼추 이해는 간다. 물론 굉장한 의역을 했을 때 일말의 가능성이다. 많은 이들이 직설적인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아쉬움을 표하며 시대를 후퇴하는 노랫말이라 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SM을 상징하는 보아의 그룹 활동, 기획사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이 모인 '스텝 백' 실황 영상은 공개 후 4일째 유튜브 인기 급상승 음악 1위에 오르며 화제를 입증하고 있다. 다만 "그늘에 갇혀 사는 여자를 기대하지 마"를 노래하던 2005년 보아의 '걸스 온 탑'을 생각했을 때 "내 꺼에서 손 떼 너 / 다시 태어나도 안될걸"이라 노래하는 '스텝 백'은 분명 아쉽다. 의미와 멋은 챙겼는데 의외의 곳에서 발목을 잡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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