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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Aug 28. 2017

워너원 열풍 속의 그림자

미디어 논리, 도외시된 음악, 그리고 무비판.


워너원이 '에너제틱'으로 가요계에 공식 데뷔한 지도 벌써 20일째다. 대선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했던 < 프로듀스 101 2 > 대 경쟁을 거쳐 < 스탠바이 아이오아이 > 같은 론칭 리얼리티 < 워너원 고 >, 타이틀 곡 선정 투표까지. 긴 여정 동안 이들은 지하철 역 광고판, TV 광고, 커피숍, 화장품 가게, 과자봉지, 말 그대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자 모든 음악 차트와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했다. 워너원으로 시작해서 워너원으로 수렴하는 한 달을 보낸 셈이다.


대세가 되면 좋은 부분만 부각되기 마련이기에 현재의 '워너원 현상'은 거의 무비판적으로, 아니 그 어떤 강력한 기성 보이 그룹 팬덤보다도 강력한 '국민 프로듀서님'들의 여론을 통해 받아들여지고 있다. 알아도 모르는 척 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워너원의 그림자 세 가지.



1. 살인적 스케줄, 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상 남친 프로젝트.

워너원은 8월 3일 데뷔일부터 지금까지 21회 분의 예능 프로그램, 7건의 광고 촬영, 12건의 음악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케이블 예능에 엄격했던 지상파 방송국 무대도 8월 27일 SBS 인기가요에 출연하며 모든 벽을 뚫었다. 그토록 데뷔를 간절히 원하던 이들에겐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지난해 아이오아이가 4월 22일부터 6월 22일까지 출연한 TV/라디오/인터넷 예능 수가 22개였다. 국민 프로듀서들의 수요는 < 프로듀스 101 2 > 방영 때보다 훨씬 불타오른다.


멤버들은 예능에 나와 그들의 모든 것을 쏟아낸다. 유행어부터 애교, 어깨(...), 춤, 퍼포먼스, 나이 등 모든 것이 공개 대상이 된다. 연습생 시절엔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국민 프로듀서들만이 알고 있는 무언가를 방송에서 샅샅이 공개하고, 있는 그대로를 넘어 거의 날 것의 모든 것들을 보여준다. (그래도 국민 프로듀서들은 그 이상의 것을 알고 있다.). 각자의 선택이 조립한 열한 명이기에 각 개인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다르고, 그 하나하나를 모두 충족하기 위해 멤버들은 미디어의 훌륭한 도구가 된다. 말 그대로의 '랜선 남자 친구', '가상 남자 친구'가 된 워너원이다.


Wanna One (워너원) - 에너제틱 (Energetic) MV


2. 음악이 사라진 음악 산업

'에너제틱'은 주요 가요 프로그램 11관왕을 차지했고 차트 상위권을 장악하며 올해 가장 성공한 싱글 중 하나가 되었다. 최신 트렌드의 딥 하우스를 장착하고 잔잔한 도입부로부터 단계적으로 후렴까지 뻗어나가는 구조가 선명한 이 타이틀 곡은 무난한 선택의 결과이고, 호평받을 법한 퀄리티를 보여준다. 하지만 워너원이 거대한 인기를 누리는 과정에서 '에너제틱'이 기여한 바는 10% 정도나 될까? 워너원이 낸 노래기 때문에 국민 프로듀서들이 대대적인 '스밍 인증(스트리밍 인증)'까지 해가며 들었던 것이고, 생방송 문자 투표를 독려해서 기어이 트로피를 안겨주는 것이다. 이들의 산업에 음악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에너제틱'에서 논란은 노래 비평이나 타이틀 곡 투표가 아니라, 득표수 1등으로 센터를 약속받은 강다니엘의 파트가 적다는 데서 발생했다.


미니앨범 판매량은 50만 장을 향해 가고 음원 수익도 어마어마하게 증가한다. 이 과정에서 미소 짓는 쪽은 미디어, CJ E&M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많은 이들에게 '가상 남자 친구'와 '유익한 취미생활'을 제공하면서 '음악'이라는 간판을 내걸기만 하면 문화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가뜩이나 말라가는 음원 시장에 미디어의 도움 없이는 살아나기도 어렵다.



3. 무비판적 자세

가장 최악의 문제. 누구도 이 흐름에 대해 비판하거나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지 않는다. 지난해 < 프로듀스 101 >이 첫 시즌을 보내고, 아이오아이가 데뷔하였을 때만 해도 많은 언론사와 비평가들이 무한 경쟁 속 아이돌 연습생들의 현실과 데뷔한 이들의 고충에 대해 다루고자 했다. 그러나 2017년 워너원이 데뷔하고 나자 그런 평가는 쏙 들어가고 모두가 강다니엘의 어깨, 박지훈의 윙크, 황민현의 인생 역경, 그리고 멤버들의 청량한 다짐과 의지, 열정을 홍보하는 데 바쁘다. '꽃길만 걷게 해주겠다'는 국민 프로듀서들의 마음에 감복해서 다 같이 카펫을 깔아주고 있는 격이다. 아이오아이는 우려스럽고 워너원은 전혀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워너원은 보이 그룹이라서? < 프로듀스 101 > 포맷이 너무 익숙해져서? 이미 이런 유형이 아이돌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서?


우습게도 사람들은 거의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학교의 포맷을 이식한 < 아이돌 학교 >에 대해선 거세게 비판한다. 어린애들 데리고 무슨 짓이냐, 성 상품화 아니냐, 아이돌 산업의 폐해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그들이나 워너원이나 아이오아이나 사실 별 차이는 없다. 아이돌은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고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연습생들이 고난의 길을 걸으며 한 순간 한 순간의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고자 오늘도 날을 지새운다. 워너원의 성공은 또 다른 거대한 우상의 이미지를 심어준 것과 같다. 너희도 열심히 하다 기회를 잡으면, 국민 '육성 회원님'들과 '국민 프로듀서'님들에게 사랑받는 아이돌 스타가 될 수 있어! 게다가 미디어는 이런 예능이 돈이 된다는 걸 진작에 깨달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오디션, 경선 프로그램 출신 아이돌들이 등장할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문제다.


전통적인 팬-가수 관계와 팬덤, 운영 방식을 모두 격파하고 새로운 길을 걷는 워너원이라도 근본적인 아이돌 산업의 틀은 똑같다. 결국 '꽃길만 걷게 해주겠다'는 내 새끼 우선주의는 아이돌-미디어 공생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며, 그럴수록 꿈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열정을 태워 10대 시절을 던져버리고 싶어 하는 어린 지망생들은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는 일단 방송 프로그램에 잘 나오는 법을 배워야 하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호감을 얻고 재능 대신 무난하게 만인에게 사랑받는 법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꿈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그때부터는 무시무시한 규모의 사랑 속에서 튀지 않고 또다시 모든 에너지를 던져 나를 믿어준 그 사람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된다. 거대한 다람쥐 쳇바퀴다.



워너원의 인기는 어떤 류에서든 새로운 형태의 성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숨어있는 문제들이 이제껏 우리가 항상 고민해온 선상에 고스란히 놓여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난제를 대하는 제일 좋은 태도는 무관심이라고 하지만, 단 하나 브레이크 없이 달려 나가는 저들의 꽃길이 과연 10년, 20년 후에도 정말 '꽃길'로 기억될지, 또한 어느 때보다도 팬들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이 시장이 정말 '꽃길'만 걷게 될지는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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