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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Oct 06. 2017

볼빨간사춘기의 선전, 결국은 음악!

한국 인디와 음악계가 주목해야 할, 깜찍한 사춘기들의 진지함.


'썸 탈거야'에서 볼빨간사춘기는 '밀가루 못 먹는 나를 달래서라도 너랑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닐 거야'라며 수줍은 소녀의 데이트를 노래한다. '난 그대 품에 별빛을 쏟아 내리고 / 은하수를 만들어 어디든 날아가게 할 거야'의 신비로운 고백 '우주를 줄게', '내 긴 교복 치마가 부끄러워 초라해 / 네 곁엔 항상 키 크고 예쁜 애들이 넘치는데'라며 귀여운 질투를 보였던 '좋다고 말해'와 '홧김에 던져 망가진 내 폰 마치 날 보는 것 같아'의 '남이 될 수 있을까'의 보편성은 볼빨간사춘기를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고, 그 순간순간을 투명하게 포착해내는 안지영의 보컬은 건조한 일상에 설렘 한 줄기를 비춘다.


볼빨간사춘기의 사춘기 감성은 너무 진지하거나 자기파괴적인 인디와 강성한 틴 파워를 강조하는 메이저 아이돌 씬이 놓치는 그 사이를 제대로 짚었다. 설익었지만 신선하고, 마냥 귀엽다가도 독특한 진지함을 보여주는 이들은 유치하다는 미명 하에 드러나지 않았던 10대의 설렘과 풋풋함,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20대의 아련함을 대변한다. 언제나 활발한 안지영과 진지한 우지윤의 평범한 여성 듀오의 편견을 깨고 캐릭터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방송 출연도 활발했지만 그들의 라이브, 안지영의 귀여운 율동, 앨범 수록곡이 주목받은 곳은 TV가 아닌 스마트폰 속 SNS였다. 격려가 아니라 세대 속으로 들어가 복잡한 사춘기 속내를 노래로 대신 옮겨주는 경우랄까.


무엇보다도 안지영의 '고막 남친' 보컬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주를 줄게'의 독특한 영어 발음으로 주목받았던 그의 목소리는 달콤하게 귀를 파고들어 일상적이면서도 작은 로망 같은 수줍은 이야기를 전하는 데 최적이다. 개성을 갖췄음에도 과하지 않아 그룹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썸 트랙들부터 '나만 안 되는 연애'의 서늘한 감성까지를 아우르고,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친한 후배 혹은 여동생의 포지션을 확립해 범대중적인 인기의 가장 큰 축을 형성한다. 여러 라이브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언제나 생기발랄하고, 관객들과 대화하며 즐겁게 춤추는 귀여운 모습은 덤이다.



이미 예측할 수 있었던 범위 내에서 색을 펼친 < Red Diary Part. 1 >가 차트에서의 성공과 무난한 호평을 동시에 획득하는 이유다. '썸 탈거야'와 '고쳐주세요'의 소녀스러운 고백은 그들을 대표하는 곡으로 핵심 멜로디 라인의 힘은 떨어지지만 그 생동감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나만 안 되는 연애'에서 리듬감을 더한 'Blue'의 우울은 다른 폭의 감정선으로도 세련된 풀이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고, 솔직한 문장으로 사춘기를 노래하는 '나의 사춘기에게'는 '볼빨간'을 넘어 '사춘기'에도 충실하면서 너른 공감을 획득한다. 곡 하나하나에 일상의 솔직함을 옮겨 담았고, 간결한 멜로디 라인으로 이지 리스닝을 가능케 하며, 거부감 없는 캐릭터로 접근성도 용이하다. 


최근 주류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좋은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주 수용층인 20대의 다양한 감정 수요에 응답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외로움과 이별의 감성을 비의 테제로 노래하는 '비도 오고 그래서'의 헤이즈, 유독 남자들의 로망 애절한 이별 발라드를 충족하는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의 버즈, '매일 듣는 노래'의 황치열, 메가 히트 '좋니'의 윤종신, 가장 '느낌 있는' 트렌드를 추종하는 'Really really'의 위너와 'DNA'의 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 그룹, 현실 밀착적인 고뇌의 표현으로 < 쇼미더머니 6 >의 유행을 이어간 우원재의 '시차'가 위시하는 힙합. 확실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이들 '좋은 노래'는 소셜 네트워크와 미디어로부터 거대 자본이 채워주지 못하는 감정의 틈새를 메우고 있다.


볼빨간사춘기는 이 너른 수용층들을 모두 포용한다.  10cm, 스탠딩 에그 류의 인디-메이저 씬이 배출한 아이돌이지만 마냥 마이너하거나 인디로의 정체성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 웰메이드 팝이고, 힙합, 발라드, 록 등 다양한 장르 팬들에게도 편안한 어쿠스틱 밴드 기반의 사운드와 상큼하고 순수한 듀오의 매력은 싫어하기가 더 어려울 만큼 밝고 해맑다. 



힙합과 일렉트로 하우스 유행에 고전하는 록이기에 인디의 대중화는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감성 어쿠스틱' 몇 팀이 달콤한 목소리로 '가상 남자 친구'가 되어주는 정도가 그나마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아주 기술적인 영역으로 파고들어 가사 없는 사운드를 쏟아내거나 심오한 개인적 고뇌와 과거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팀들은 빠르게 한계점에 도달한다. 경북 영주에서 노래로 성공하겠다는 열망을 품고 상경한 두 소녀의 성공은 비단 인디뿐 아니라 음악을 꿈꾸는 많은 지망생들에게 잊고 있던 한 가지를 일깨워준다. 좋은 음악은 기술이나 통계 분석이 아닌, 진심과 노력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움에서 등장한다는,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평범한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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