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BET 힙합 어워즈(BET Hip Hop Awards) 싸이퍼
슬림 셰이디(Slim Shady)는 살아있다! 한때 거침없는 독설과 조롱을 통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에미넴이 오랜만에 칼을 빼들었다. 대상은 지난해 8분짜리 'Campaign speech'와 올해 빅 션(Big Sean)과의 'I decide'로 꾸준히 디스해 온 바 있는, 미국 공식 최고의 악당, 도널드 트럼프다. 생각보다 훨씬 나빴던 취임 첫 해의 후반부에, 에미넴은 고향 디트로이트의 공용 주차장에서 그야말로 신랄하게 트럼프를 '씹어버린다.'
'폭풍(The Storm)'으로 명명된 이 4분짜리 프리스타일 싸이퍼는 트럼프 취임 후 9개월에 대한 가장 과격한 형태의 브리핑이다. 10월의 호전적이면서도 아무런 맥락을 찾을 수 없었던 '폭풍전야(It's the calm before the storm right here)'발언을 비꼬며 출발하는 에미넴은 전쟁광적 면모, 허울뿐인 자국우선주의, 푸에르토리코와 네바다의 비극, 인종 차별과 자본의 위선을 한데 묶어 트럼프 행정부를 조목조목 부숴 놓는다.
북한 정권에 대해 유례없는 폭탄 발언을 일삼으며 전쟁의 위협을 키우는 외교 정책에 대해서는 '카미카제, 핵 대학살'이라 평하며 정작 전쟁 발발 시 세계에서 8번째로 비싼 개인 전용기에 기름이나 채우고 있을 것이라며 대책 없는 강경주의를 공격한다.'변화와 단결'을 기치로 삼았음에도 사상 최악의 인종 차별과 백인우월주의를 은근히 지지하는 트럼프에게 '그가 제일 잘 하는 일(the only thing he's fantastic for)'이라며 일침을 가하고, 이민자들을 내쫓으려 하며 이의 일환인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도 신랄하게 조롱한다. 국가에 대해 경례하지 않은 쿼터백 콜린 캐퍼닉을 보고 격노한 트럼프가 NFL에 'Get the son of the bitch off the field'라며 스포츠를 압박해왔고, 에미넴은 허리케인으로 초토화된 푸에르토리코와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대신 애먼 선수를 걸고넘어지는지를 지적하며 캐퍼닉에 대한 헌사를 바친다.
에미넴은 우리가 예상하는 그 이상을 넘어 잔인하다. 세금을 줄이겠다는 그의 발언에 대해 '너의 골프장과 대저택, 호화 여행비는 누가 내주나?(who's gonna pay for his extravagant trips / back and forth with his fam to his golf resorts and his mansions?)'라며 대부호 트럼프의 일면을 까발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한술 더 떠 그의 아버지까지 건드린다. KKK단에 가담했다는 설이 끊이지 않던 도널드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Fred Trump)를 '우리의 역사와 부끄러웠던 사건을 무시하는 놈(who keeps ignorin' out past historical, deplorable factors)'라고 낙인찍는다. 심지어 애국자도 아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포로 생활을 한 존 매케인에 대해 '그는 전쟁 영웅이 아니다.'며 조롱했던 과거까지도 친절하게 랩으로 알려준다. 물론 마무리는 'Fuck That'이지만.
이 숨 가쁜 칼부림 속에서 기가 막힌 도발까지 숨겨져 있다. 백인 쓰레기 슬림 셰이디 시절 히트곡은 'Just don't give a fuck'과 'Still don't give a fuck', 즉 'X도 관심 없어'였다. 에미넴은 여기서 자기 자신과 트럼프와의 공통부분을 찾는다. '엿 먹이는 데 관해선 너랑 나랑 비슷해(when it comes to givin' a shit, you're stingy as I am)'라 트럼프를 상정하고 나서 그는 곧바로 '나랑 맞서서 즐기는 건 못하잖아? 나처럼 미친놈은 아니니까(Except when it comes to havin' the balls to go against me, you hide'em / 'cause you don't got the fuckin' nuts like an empty asylum)'라 평한다. 수많은 트위터 글, NFL 사태, 대중의 반응, 푸에르토리코 시장의 전화, 타국의 반발 등 단 하나도 대꾸하지 않는 'don't give a Fuck' 마인드가 총체적 무지이자 권위주의적 불통임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말 많은 트럼프도 에미넴에겐 한마디 한 적이 없다.
노련한 베테랑 에미넴은 슬림 셰이디 시절엔 없었던 진중함과 단호함을 통해 단순한 조롱 그 이상을 넘어 안티-트럼프의 깃발을 높이 올린다. 이 매서운 불호령에 스눕 독, 피 디디 같은 레전드와 제이 콜 같은 신예는 물론 르브론 제임스와 엘런 드제너러스 등 각계 유명인사들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으며, 유튜브 업로드 하루 만에 8천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CNN 방송에까지 등장하며 어느 때보다도 전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And any fan of mine who's a supporter of his
내 팬인데 트럼프를 지지한다면
I'm drawing in the sand a line, you're either for or against
모래 위에 선 그어줄게, 넘어오든지 나가든지 해.
And if you can't decide who you like more and you're split
누굴 더 좋아하고 정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나눠지겠지.
on who you should stand beside, I'll do it for you with this : Fuck you!
니 옆에 누가 서있다면, 널 위해 한 마디 해줄게... Fuck You!
The rest of America, stand up!
미국의 나머지들이여. 일어나라!
We love our military, and we love our country
우린 우리의 군을 사랑해, 우리는 이 나라를 사랑해.
But we fucking hate Trump!
하지만 우린 트럼프가 X발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