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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Apr 08. 2024

25. 좋은 사람들

<행복의 조건>

25. 좋은 사람들

배정환


은지는 은행에 출근하자마자 띠를 두르고 명함을 챙겼다. 복사기 옆에 쌓아둔 프린트 전단지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이번 달 프로모션과 이율, 보험 혜택이 가득 실린 전단지였다. 커피를 타고 있던 선배 언니가 은지에게 말을 걸었다. 

"좀 천천히 가자. 뭐 그리 바빠?"

"언니, 점심시간 걸리면 사장님들이 싫어해요. 점심 전에 몇 집이라도 들러봐야죠."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너무 열정 불태우지 말자."

"언니 빨리 준비해요. 오늘은 과장님과 우리 세명만 나가는 거니까 서둘러요."

"그나저나 넌 가방도 바꿨다."

은지는 가방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 이거요? 전단지 빼기 좋잖아요. 벌리면 바로 꺼내서 줄 수 있어야 좋죠."

"못 말려..."

은지는 주변 상가부터 열심히 들어갔다. 책에서 배운 대로 인사하고, 명함 주고, 전단지를 줬다. 


"이거 아침부터 이런 거 돌리면 어떻게 해!"

두 번째 집 사장님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전단지를 던졌다. 은지는 전단지를 주우며 사장님 손에 다시 쥐어드렸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사장님... 제가 물건 파는 거 아니잖아요. 사장님 돈을 안전한 곳에 넣으시라는 거니까. 잘 읽어보시고 연락 주세요."

그래도 거절의 연속이었다.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읽었지만, 막상 거절을 계속 받으니까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때 과장님이 아이스커피를 한잔 건네주었다.

"은지 씨 힘들지?"

"네.. 처음 하는 거라 어리둥절하네요."

"내가 직원들과 많이 나왔는데 다들 거절 때문에 나오기를 꺼리지. 그만둔 여직원도 있었고."

"그럴 거 같아요. 사실 저도 더는 못 다닐 것 같아요. 지금 기분은 그래요."

"그런데 말이야. 한 달만 그냥 논다는 마음으로 다녀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야."

"한 달이요? 오늘도 이렇게 힘든데요?"

"날 믿어봐. 사람들은 오늘 명함 줬다고 신뢰를 주지 않아. 그런데 자주 눈에 띄면 조금씩 믿기 시작하거든... 진짜야!"

은지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전단지를 가지고 돌았다. 일주일쯤 지났을  처음 갔던 과일가게 사장님이 걸어가는 은지에게 손짓을 했다. 

"네~ 사장님 뭘 도와드릴까요?"

"일단 커피 한잔해."

"감사합니다."

은지는 종이컵 믹스커피를 받아들었다. 이것만 오늘 네 잔째였지만, 예비 고객이 주는 성의를 마다할 수 없었다. 

"우리 아들이 나를 돕고 있는데 말이야. 그 녀석이 돈을 모을 줄을 몰라. 그래서 그 녀석 이름으로 적금을 하나 들어주려고 하는데 이런 것도 도와주나?"

개인 적금은 큰돈이 되지 않았지만, 은지는 마다할 수 없었다. 

"그럼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은지는 바쁜 시장 상인들을 위해 통장을 만들어 전해 드렸다. 적금은 두개로 이어지고, 옆집 소개로 이어졌다. 그리고 가게 입출입 거래 통장도 얻어냈다. 현금이 수천만이 오가는 통장이라 나름 좋은 실적을 거두었다. 한 달이 지나고 은지가 만든 통장만 해도 30개가 넘었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도 5건이나 올렸다. 지점장이 은지를 방으로 불렀다. 

"윤사원! 전에 뭐 했어? 왜 이렇게 잘 팔아? 덕분에 우리 지점 실적이 많이 좋아졌어."

"과장님께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시킨다고 다 해내면 무슨 걱정이야. 아무튼 오늘 우리 지점 회식하려고 하는데 다 은지 씨 포상 차원으로 하는 거야."

지점장은 은지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회사 차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금일봉을 넣었어. 비록 약소하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은지는 소리 지를 뻔했다. 실적을 내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지만, 부수입이 생긴다는 것이 좋았다. 더 좋았던 것은 시장에 좋은 인맥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시장에 나가면 인사 나누는 고객이 많아졌다. 비록 아직은 거래 트지 않는 고객이 더 많지만, 앞으로 시장을 보면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이후로 은행들이 많이 통폐합되었다. 은지가 다니던 은행도 이제는 다른 이름을 걸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뱅킹 서비스들이 나와서 은행도 위기라 했다. 어떤 일이든 앉아서 기다린다고 되는 일은 없었다. 먼저 나가서 영업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인 위기가 적다는 것을 알았다. 빵 공장을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도 그때 영업전선에서 뛰었던 기억 때문이다. 





은지는 고생하는 직원들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했다.

"자, 오늘 공지한 것처럼 회식이에요. 6시까지 마무리하고 준비하세요."

"사장님 어디로 가나요? 고기?"

"고기 좋아해요? 오늘은 호텔 뷔페로 예약했어요. 거기서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드세요. 오늘은 참치 해체를 한다고 하니 먹을게 많을 겁니다."

"와아!! 정말요!!"

은지는 직원들에게 먼저 최상의 서비스를 해줘야 한다고 믿었다. 고객보다 직원이 먼저였다. 비록 아직은 4명의 직원이지만 그들과 식사하고 와인을 먹는 일이 즐거웠다. 은지는 와인을 채우고 건배를 제안했다. 

"자, 우리 공장 식구들 수고 너무 많으십니다. 앞으로 우리 회사가 직원 100명이 되면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각 부서의 장이 되실 분들입니다. 그때까지 잘 키워봐요. 저를 믿고!!"

"사장님 저 부장되는 겁니까?"

반죽을 맡고 있는 막내 소영 씨가 잔을 들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그럼요. 소영 씨도 얼마든지! 이사가 될지도 모르지!"

그래도 가장 먼저 입사한 민정씨가 물었다. 

"사장님은 빵 질리지 않으세요? 웬 빵을 그리 가지고 오셨어요?"

포크로 빵을 해체하던 은지는 속 내용물을을 맛보고 있었다.

"음... 연구하고 있어요. 여기 호텔 베이커리가 맛있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직원들은 손사래를 치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우리 사장님 못 말려."

그때 눈치 빠른 수영 씨가 사진을 찍고 가져온 지퍼팩에 빵을 넣었다. 

"우리는 이제 시작한 회사라서 신메뉴 발굴이 중요해요. 다른 곳도 하는 제품으로는 승산이 없어요. 남들이 안 하는 거 해야 해요. 원장님에게도 연구를 부탁했으니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바로바로 건의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네 명은 디저트로 모두 빵을 가지고 왔다. 은지는 직원들이 한마디 하면 열 마디를 알아듣는 것 같아 내심 기뻤다. 


그때 학원 원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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