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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Apr 15. 2024

26. 내 사람

<행복의 조건>

26. 내 사람

배정환


베이킹 학원 원장이 은지 빵 공장에 찾아왔다. 

"애들 아빠랑은 잘 해결됐어?"

"네, 이젠 이혼조정 기간도 다 끝났어요. 이젠 각자의 길을 가는 거죠."

"괜찮겠어? 그래도 태성 씨 자기 생각 많이 해주던 사람인데."

"알아요. 그래서 더 답답해요. 매번 가족, 가족, 가족... "

"수민이 안 보고 살 수 있겠어?"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로 했는데요."

"은지 너도 대단하다. 일 때문에 가족까지 내려놓기 쉽지 않은데."

"언니마저 그렇게 이야기하면 나 더 힘들어."

"그래, 알았다. 알았어."

"태성 씨는 너무 물러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직장에서 나오면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에요. 나라도 열심히 벌어야 되는데... 그걸 이해해 주지 못하니."

"모르는 건 아닐 텐데 말이야. 그래도 기댈 언덕이라도 있는 것과 혼자 하는 건 다를 거야.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그래도 언니가 옆에 있으니 든든하다."

유일한 피붙이 언니마저 미국에 있으니 한국에서 이제 기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원장은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은지가 뭐라도 하려고 하면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두던 언니 같은 사람이다. 

"언니가 내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알아요. 저 지독하다는 것도 알고요."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내가 너를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5년 전, 은지가 제빵 학원에 다닐 때였다. 저녁 늦게까지 연습하겠다고 남아서 일을 거들었던 모습에 원장은 은지가 궁금해졌다. 같이 술 한잔하며 은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혼자 일어선 원장은 은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은지는 원장이 언니 같았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열 때도 이왕이면 이름 걸고 시작해 보라고 조언해 준 사람이다. 하지만 은지가 고집을 피워 대기업에 종속되었다. 덕분에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손해를 보고 있었다. 그 뒤로 원장의 조언을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다. 


"지난번에 네가 부탁한 거 있잖아. 도와줄 사람 찾는 거. 빵은 잘 못하는데 바리스타로 괜찮은 친구가 있어. 만나볼래? 

원장은 약력이 간단히 적힌 이력서를 은지에게 건네주었다. 말끔하게 생긴 청년의 사진을 보며 이런 남동생이 있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떤 친구야?"

"빵 배우러 왔는데 커피에 더 관심을 보이더라고. 아주 성실해. 어머니 혼자 모시고 있는데 일찍 돈을 벌어야 한다더라. 요즘 청년 같지 않게 일을 잘해."

"그래? 그런 친구가 나와 일을 할까?"

"어머니를 모시느라 대학을 가지 못했어. 네가 잘 이끌어주면 좋겠는데."

"내 코가 석자야. 그 친구가 날 도와야지. 내가 이끌어야 해?"

"사람은 키워서 써야 해! 다 큰 거 데려오면 문제를 만들어. 위험해."

"지금 시작하는 내게는 위험해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해."

"조금만 가르치면 그 정도는 잘 해낼 친구야."

"그래?"

"특히 꾀를 피우지 않아. 있는 그대로 알려준 대로 진행하는 스타일이야. 그런데 거기다 키도 크고 배려심도 뛰어나. 다만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말이야."

"완벽한 사람은 없구나."

"태성 씨는 완벽했어. 그 정도면. 난 태성 씨 같은 사람 있으면 재혼하고 싶다."

"둘이 살지 그래."

"얘는 농담이라도 그게 무슨."


은지는 빵집에서 청년을 기다렸다. 문을 열고 사진에서 본 청년이 들어왔다. 예상했던 대로 키가 커서 매장을 가득 메우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면접하기로 한 김도성이라고 합니다."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요즘 청년 같지 않았다. 긴장하는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 들었어요. 여기 앉아요."

은지는 커피를 두 잔 내려 자리에 앉았다. 

"면접이라고 할 것도 없어요. 도성 씨라고 했죠. 도성 씨가 유일한 지원자니까. 할 건지 말 건지만 결정하면 돼요."

"저야.. 원장님이 소개해 주셨으면 믿습니다."

"그 정도로 원장님을 신뢰해요?"

"원장님이 제게 참 잘해주셨어요. 제게만 그렇게 하신 건 아니지만, 저는 저 정도면 믿을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제가 믿을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겠네요. 이제 졸업했으니 사회도 처음일 테고."

"그래도 카페 아르바이트는 많이 했습니다. 직원과 아르바이트는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내내 도성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은지는 이 친구면 고객 대응에 탁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성 씨, 내가 지금 빵 공장 때문에 바빠요. 일을 가르쳐 주겠지만, 나는 여기 뉴욕 바게트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사람이 필요해요."

"네 들었습니다. 열심히 한다는 말보다. 제대로 배우겠습니다."


도성은 이미 가게 운영 전반에 대해 알고 있었다. 파티셰와 아르바이트에게 인사시켰다.

"두 사람이 이끌어 가느라 수고 많았어요. 오늘부터 매장은 이 친구가 볼 거니까 나아질 거예요."

"사장님 이제야 제가 한시름 놓겠습니다."

파티셰는 그동안 불만이 많았다. 빵 만드는 것도 힘든데 가게 운영까지 하려니 이해할 만도 했다. 은지가 이끌어 가던 때에 비해 매출은 더 줄어들었다. 파티셰의 운영 능력을 믿어보고 싶었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필요했다. 매장을 책임져줄 사람.


은지는 도성에게 본사와 거래해야 할 것들에 관해 알려주었다. 설명을 듣자마자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메모했다. 일단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되는데 지금은 누구라도 믿고 싶었다. 일을 두 개나 벌여놓은 처지라 사람이 필요했다.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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